36. 하루종일 고목처럼 앉아 정진하다 / 조원(祖元)선사
안산(鴈山) 능인사(能仁寺)의 원(祖元 : 임제종 양기파)선사는 해상사(海上寺) 양서암(洋嶼庵)으로 묘희선사를 찾아갔다. 거기서 깡마른 풍채로 하루종일 반듯이 앉아 정진하니 묘희선사는 그를 '원고목(元枯木)'이라 불렀다. 어느날 "삼세제불은 있음[有]을 알지 못한다"는 화두를 가지고 서너 차례 따져보다가 훤하게 그 뜻을 깨달으니 묘희선사는 게송을 지어 그를 칭찬하였다.
만길 낭떠러지에서 홀연히 몸을 던져도
깨어보니 여전히 정신이 말짱하구나
허기지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는 일뿐인데
옛사람이니 아니니를 따져 무엇하리오.
萬仭懸崖忽放身 起來依舊却惺惺
飢餐渴飮無餘事 那論昔人非昔人
원선사는 그 후에 연강현(連江縣) 복엄암(福嚴庵)에 살았는데 대중이 너무 많아 공양을 마련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그 암자의 가람에는 토우(土偶)가 매우 많았는데 게송을 지어 그들을 깨우쳐 주었다.
작은 암자 작은 절 작은 총림에
토지신은 어이하여 70여개나 되오?
만일 차례로 돌아가며 공양 올릴 줄 안다면
한 줌 흙으로 부서짐을 면할 수 있게 해주리.
小庵小舍小叢林 土地何須八九人
若解輪審來打供 免敎碎作一堆塵
그날 저녁 산아래 마을에 사는 신도의 꿈에 산신이 나타나 일깨워 주는대로 해주기를 바랐다.
뒷날 세상에 나와 능인사(能仁寺)에 주지하게 되자 산승들에게 게송으로 설법하였다.
안산 원고목의 진실한 참선은
날카롭고 새로운 말끝에 있는 게 아니라
손 뒤집어 무심코 더듬어 보니
큰고래 달을 삼키고 물결은 하늘에 솟구치네.
雁山枯木實頭禪 不在尖新語句邊
背手忽然摸得著 長鯨呑月浪滔天
원선사는 양서암에서 배출된 열 세 사람의 선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당시엔 그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둔한 사람이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그가 자취를 감추자 토지신도 그를 따랐고 인연따라 법을 펼 때는 문도들도 더욱 그를 사모하였으니, 이는 수승한 반야에서 나온 것이지 어찌 다른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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