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조용히 사는 태평시대의 백성 / 청일(淸逸)거사
청일거사(淸逸居士) 반흥사(潘興嗣)의 자(字)는 연지(延之)다. 처음 덕화현위(德化懸尉)에 임명되었을 때, 같은 군(郡)에 허함(許瑊)이라는 사람이 강주(江州)군수로 오게 되었다. 청일거사는 그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허함이 예의를 갖추지 않자 명함을 다시 품에 넣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후 끝까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황룡 혜남선사에게 도를 물어 인가를 받았다.
그는 늘상, 나는 조용히 사는 태평시대의 백성[淸世之逸民]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청일거사(淸逸居士)'라 불렀다. 가우(嘉祐 : 1056~1063) 연간 후 조정의 높은 관리가 수 십 차례나 그를 천거하여 마침내 균주(筠州) 군사추관(軍事推官)으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이를 마다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예장(豫章) 동호(東湖) 위에 은거하면서 거문고와 책을 벗삼아 즐겁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혜남선사의 제자 잠암 원(潛庵淸源)선사가 그를 방문하였다가 거문고를 켜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아직도 거문고 줄을 더듬고 계십니까?"
"켜야 소리가 울리니까."
"작은 일이 아니지요."
"내 마음을 알아줄 이 몇이나 되겠소."
적음(寂音)선사가 그의 영정에 글을 썼다.
비로(毘盧)에는 남(生) 없는 창고요
진단에는 도(道) 있는 그릇이라
오묘한 뜻을 말할 때면 온몸으로 혀를 삼고
대천세계를 떠받칠 때면 손으로 땅을 삼는다
기봉이 방거사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문자선(文字禪)을 알았고
처신은 유학자를 닮았지만 세상 밝히기를 그만 두었으니
서왕의 강요로도 그를 어쩔 수 없었고
벼슬을 내려 주었지만 나아가지 않으니
이는 천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대는 어찌 여기에 그치겠는가.
毘盧無生之藏 震旦有道之器
談妙義借身爲舌 擎大千以手爲地
機鋒不減龐蘊而解文子禪
行藏大類孺子而値休明世 舒王强之而不可
神考致之而不起 此天下士大夫所共聞
然公豈止於是而已哉
아! 그는 벼슬을 마다하였고, 도를 물으며 시종 변함없는 절개를 지켰다. 그런데 적음선사가 그의 숨은 덕을 드러내 찬양하니 이를 계기로 산중에서도 비로소 사람 하나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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