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44. 복덕이 지혜를 못 따르는 스님 / 공(空)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23

44. 복덕이 지혜를 못 따르는 스님 / 공(空)선사

 

 임안부(臨安府) 남탕(南蕩) 숭각사(崇覺寺)의 공(空)선사는 고숙(姑熟)출신이다. 황룡사의 사심선사를 시봉하였는데 사심선사는 그의 복이 지혜에 못미침을 애석하게 여겨 세상에 나가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초당 청(草堂善淸)선사가 게송을 지어 그를 송별하였다.

 

머리를 마주하고 10년을 지내온 황룡사의 생활
진공을 한 번 깨달으니 모든 경계 한가롭네
인연 따라 가는 발길 고상히 은거하여
그대 이름 석자를 세속에 알리지 마오.

十年聚首龍峰寺  一悟眞空萬境閑

此去隨緣且高隱  莫將名字落人間

 

 그리고는 천태산(天台山)에 머무니 그의 명성이 총림에 드높아 조정의 명으로 숭각사(崇覺寺) 주지를 맡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불이 났다. 그는 복구에 힘쓰면서도 제자를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찍이 '들여우[野狐] 화두'에 대하여 송을 지었다.

 

입에 머금은 피 사람에게 뿜으면 그 입 먼저 더러워진다네
백장의 들여우가 머리를 잃고는 미친 듯 달아나는데
갑자기 불러세워 힘줄이 튀기도록 후려치리라.

含血潠人  先汚其口

百丈野狐失頭狂走

驀地喚回打箇筋斗

 

 스님은 성격이 꼼꼼하고 지견이 매우 높았으며, 계율이 엄하여 외부에서 청하여도 응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스님께 공양을 올리고 암자를 지어주겠다고 하니 스님은, "집안의 재물을 희사함은 그대의 발심이지만 대중을 등지고 밥을 먹는다면 나의 파계는 어쩌겠느냐"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스님은 이처럼 철저히 지조를 지켰다. 평소의 기개는 모든 사람을 눌렀고, 학승들에게 얼굴색이나 말을 꾸며 하지 않으니 참으로 스승다운 기풍을 지닌 높이 존경할 만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