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43. 스님은 윤회에 들어간다 / 지(智)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47

43. 스님은 윤회에 들어간다 / 지(智)선사

 

 담주(潭州) 운개사(雲蓋寺)의 지(智) 스님이 사원의 동당에 거처할 때였다. 정화(政和) 신묘년(1111) 사심(死心)선사가 황룡사의 소임을 그만두고 호남지방을 지나 입산하여 문안을 드리려 하는데 날은 이미 어두웠다. 시자승이 사심선사의 방문을 알리니 지선사는 신발을 질질 끌고 걸어 나오면서 "촛불을 가져와라. 낯짝이 어떻게 생겼기에 온 세상에 그처럼 이름이 시끄러운지 좀 보자" 하였다. 사심선사도, "촛불을 잡고 가까이 와라. 나도 진짜 사숙(師叔)인지 가짜 사숙인지 비춰봐야겠다." 하고 외쳤다. 지선사가 다가가 사심선사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니, 사심선사는 "이분이 진짜로군" 하고 드디어 절을 올리며 주인과 손이 서로 몹시 기뻐하였다.
 사심선사는 다시 황룡사를 다스리다가 정화(政和) 갑오년(1114) 12월 15일에 입적하였다. 당시 지선사는 개복사(開福寺)의 주지로 있었는데 그의 부음을 듣고 법좌에 올라 법문을 하였다.

 

불행스럽게 불법의 깃발이 부러져
그의 육신이 한 줌의 재로 변했네
어젯밤 진흙소가 한가닥 선을 틔워놓더니
황룡사 스님은 이제 윤회에 들어간다.

法門不幸法幢摧  五蘊山中化作灰

昨夜泥牛通一線  黃龍從此入輪廻

 

 시자승이 어록을 편집하면서 '윤회에 들어간다[入輪廻]'에서 입(入)자를 출(出)자로 바꿔쓰자 지선사가 이를 보고 크게 꾸짖었다. 이때 지선사의 나이 90세였으니 선문의 큰 노스님이다. 그러나 그는 사심선사를 조카처럼 생각하였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법의 깃대가 부러졌다고 탄식하였으니, 옛 선사들은 불법으로 사람을 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살아있을 땐 칭찬하지만 죽은 후엔 헐뜯으니 저자의 장사치와 다를 바 없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