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납승 노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서림 조증(西林祖證)선사
서림사(西林寺) 조증(祖證)스님의 별명은 노납(老衲)이며 장사(長沙) 사람으로 월암(月菴善果)스님의 법제자이다. 월암스님이 도림사(道林寺)에 있을 때 조증스님은 책임자로서 몸소 형제 학인들을 위하여 명패를 걸고[掛牌] 입실하였다. 그는 지극정성으로 정중하게 학인을 지도하였는데, 비록 혼자 있을 때도 마치 큰 손님을 마주하듯 하였으며 형제들이 그를 보면 항상 정중한 모습이었다.
뒤에 스님은 서림사(西林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도를 폈는데 '운문화타(雲門話墮)' 공안에 대하여 송하였다.
부싯돌 번뜩이는 섬광 속에서 질문을 던지노니
투철히 깨닫지 못하면 얼마나 어려움이 많을지
만일 정수리에 금강눈을 갖추면
옆사람에게 낚싯대 잡히는 꼴을 당하리라.
石火光中立問端 不能透脫幾多難
頂門若具金剛眼 肯被傍人把釣竿
이러한 경지는 그가 친히 월암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또한 고정된 격식을 훌쩍 벗어났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처음 보안사(保安寺) 가봉(可封)스님 또한 월암스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는 견지(見地)가 더욱 뛰어났다. 그 또한 '운문화타' 공안에 대하여 송하였다.
세모에 거문고 안고서 어디로 가려 하오
낙양 땅 삼십육봉 서쪽으로…
일생동안 선생 얼굴 뵙지 못하여
한번도 '오야제'*를 듣지 못했소.
歲暮抱琴何處去 洛陽三十六峰西
生平未知先生面 不得一聽烏夜啼
이는 참으로 유하혜(柳下惠)를 잘 본받고도 그의 발자취를 스승 삼지는 않았다고 할 만하다. 정수리에 금강눈을 갖춘 이라면 분명히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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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야제(烏夜啼) : 악부(樂府)의 제목
11. 매천 순(罵天詢)스님과 불감(佛鑑)스님과의 문답
매천 순(罵天詢)스님은 견처가 분명한 분이었다. 일찍이 불감(佛鑑慧懃)스님 시봉을 들었는데 불감스님은 수순스님의 얼굴이 검고 모습이 추하다고 하였으며, 관상가 또한 그에게 복이 없다고 하였다. 어느 날 불감스님이 우연히 수순스님에게 말하였다.
"한 알의 보석을 너같은 거렁뱅이가 줍다니 아깝구나!"
"스님께서 단단히 거두어들이지요."
또 어느 날 그에게 말하였다.
"일체 중생이 언제 깨달은 적이 있었느냐?"
"일체 중생이 언제 미혹한 일이 있었습니까?"
그때 갑자기 한 행자승이 그들 앞을 지나가자 불감스님이 행자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불감스님이, 언제 깨달은 적이 있었느냐고 다시 묻자 수순스님이 얼른 행자를 불러세우고서 말하였다.
"방참(放參)은 하였는가?"
"방참하였습니다."*
"언제 미혹한 적이 있었는가?"
그러자, 불감스님은 버럭 성을 내며 행자에게 고함을 쳤다.
"이 축생[業種]아, 나가!"
이에 수순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소리를 좀 낮추십시오. 바깥 사람들이 우리 두 부자가 여기에서 깨쳤다느니 미혹하다느니 다투는 소리를 들을까 두렵습니다."
불감스님은 크게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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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에 '行'자가 빠진 듯하다.
12. 미치광이 중, 분암주(分菴主)의 하안거 결제법문
검문(劍門) 분 암주(菴主)는 민(閩)사람이다. 어린 나이부터 도에 대하여 스스로 깨친 바 있어 마침내 삭발하고 고향을 떠나버리자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친중이라 하였지만 분스님은 개의치 않았다. 처음엔 나암 정수(懶菴鼎需)스님을, 그 후엔 쌍경사 묘희스님을 찾아갔었는데 묘희스님은 그가 미쳤다는 말을 듣고, 끝내 참당(參堂)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분암주는 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 전당(錢塘)가에 이르러 배를 빌려 절강정(浙江亭)가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흘리며, "내, 분주히 오령(五嶺)을 넘어 묘희스님을 찾아갔었지만 대중 속에도 들어가지 못함은 전생에 반야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데 뜻밖에,
"시랑(侍郞)행차요!"하는 수행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여기서 활짝 크게 깨치고 송을 지었다.
몇 해 동안 이 일이 가슴에 걸려
여러 총림 물어봐도 눈뜨지 못했더니
오늘에야 갑자기 창자가 터져
강가에 울려오는 시랑행차요 하는 소리
幾年箇事挂胸懷 問盡諸方眼不開
今日肝腸忽然破 一聲江上侍郞來
그 길로 양서암(洋嶼菴)으로 돌아가 나암(懶菴)스님에게 귀의하니, 나암스님은 그의 깨침을 인가하였다. 그 후 얼마 안되어 갑자기 그곳을 떠나가려 하자 나암스님이 게를 지어 전송하였다.
강머리 세찬 바람 물결이 나부끼는데
남북의 많은 사람 만나도 반갑지 않더니만
오로지 안분선자 뛰어난 수단 지녀
힘들이지 않고 과거급제 하였네.
江頭風急浪華飛 南北相逢不展眉
獨有分禪英悛手 等閑奪得錦標歸
그 후 칠민(七閩)땅에서 거짓으로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때로는 술집에 들어가고 때로는 고기전에 들어가니, 아무도 몰랐으나 함께 참례하던 목암 영(木菴永)스님만은 만날 때마다 반드시 스승처럼 그를 섬겼다. 한번은 다음과 같은 대중법문을 하였다.
"이 한 뙈기 밭을 너희들은 한번 말해 보아라.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당장에 이를 깨치면 이 안분상좌를 꼼짝 못하게 하겠지만 만일 머뭇거리거나 헤아려본다면 천리만리 날아가는 흰구름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다."
갑자기 주장자를 뽑아들고 후려치면서 대중을 모두 쫓아버렸다.
또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15일 이전엔 하늘의 별들이 모두 북극성을 향하여 돌고 15일 이후엔 이 세상의 물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간다. 이전이니 이후이니 하는 것을 뽑아버리니, 가는 곳마다 지방의 말씨가 다르더구나."
이어 손가락을 꼽으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하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 형제들이여, 말해 보라. 오늘이 몇 일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이 가게에서는 푼돈갖고 외상줄 수는 없지."
13. 이암 유권(伊菴有權)스님의 하안거 결제법문
이암 권(伊菴有權)스님은 임안(臨安) 창화현(昌化顯) 사람이며 무암 법전(無菴法全)스님의 법제자이다. 만년사(萬年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아가 9년 동안 한 자리에 머무는 사이에 법회가 크게 떨쳤다. 그러나 유권스님은 몸소 계율을 지키며 대중을 받들고 언행이 모두 법도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불지 단유(佛智端裕), 수암 수(誰菴粹)스님의 법을 따랐으며 회하에는 항상 500대중이 안주하였다.
스님은 진영에 스스로 찬을 썼다.
코는 메부리를 닮아
천리 밖의 사람과 마주하도다
만년사의 종지를 알고자 하는가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네
鼻如鷹觜 對面千里
要識萬年 只這便是
총림에서 모두 이 찬을 애송하였으며 그 후 스님은 상주(常州) 화장사(華藏寺)로 옮겨갔다. 여름결제 때 대중법문을 하였다.
"오늘 아침 포대의 주둥이를 꽁꽁 묶어 놓았으니, 눈 밝은 납승들은 이리저리 달아날 생각을 말라. 마음 작용이 꺼진 곳에서 몸을 뒤집을 줄 알면, 재채기 소리도 사자후가 되리라. 전단림(총림)에서야 마음대로 하랴마는 눈썹을 치켜세우면 정수리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집안 망신만 들통나겠구나."
14. 고종 · 효종의 미륵찬[高宗孝宗贊彌勒]
고종(高宗) · 효종(孝宗)황제는 모두 미륵대사(邇勒大士)의 찬을 썼는데 총림에서 도가 있다 하는 스님네들이 모두 이 찬에 대하여 회답을 하였으나 두 황제의 마음에 계합되는 글은 적었다.
황제의 찬은 다음과 같다.
푸른 하늘 한조각 구름
구만리 장천에 외로운 달
세간의 바깥에서 머무시니
오묘하도다. 그윽한 생활이여!
저자에 잘도 숨어사니
기이하다, 영웅 호걸이여
따르노니 주장자와 포대 하나 뿐
굶주린 배 채우는 데야 술이든 날고기든 무엇이 나쁘랴
그만두어라,
옥전누각에 흰눈이 나린다.
碧落片雲 長天孤月
能樓物外 妙兮幽絶
慣隱市廛 奇哉英傑
隨行兮 惟有挂杖布袋
充飢兮 何妨酒肉腥血
別別玉殿瓊 樓更加雪
포대 속에 천지를 담고
지팡이에는 일월을 걸었네
지독스런 장난꾸러기 성인 중에 으뜸이요
미련하고 바보같기는 스님 가운데 으뜸일세
명령 행하니 매맞는 곳마다 맷자국이 또렷하고
형틀에 묶어두니 뺨을 칠 때마다 손자국이 선명하구나
그만두어라
이글거리는 화로 위에 내리는 눈 한송이.
袋貯乾坤 杖挑日月
藞藞蕌蕌 聖中絶
憨憨癡癡 僧中傑
令行兮一棒一條痕
逗機兮一摑一掌血
別別恰似紅爐一點雪
건도(乾道 : 1165~1173) 연간에 직도인(直道者 : 庵善直禪師)이 보령사(報寧寺)의 주지로 일찍이 이 찬에 화답한 일이 있다.
도량(度量)은 허공을 감싸고
눈에는 일월이 달려있네
하늘나라 있으니 하늘에서 으뜸이요
인간세계 사니 사람 가운데 호걸이라
포대를 내려놓고 사대부주(四大部洲)에 눌러 앉아
주장자 뽑아드니
온누리를 피바다로 만들만 하네
그만두어라
분명한 이 도리를 알기 어려워라.
量包太虛 眼懸日月
往天宮兮 天中之絶
居人間兮 人中之傑
放下布袋兮 坐斷四大部州
拈起柱杖兮直得大地流血
別別明明有理難分雪
이범사(李范使)가 이 찬을 올리자 효종은 대단히 기뻐하고 돈 5백만 전과 쌀 백 석을 하사하여 대중의 공양에 보태 쓰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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