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종(仁宗)황제가 대각 회련(大覺懷璉)선사에게 묻다
인종(仁宗)황제는 황우(皇祐) 4년(1052) 12월 9일에 정인사(淨因寺) 대각회련(大覺懷璉)선사에게 중사(中使)를 보내 물었다.
"잠시 불자를 세워도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렵구나."
때마침 연선사는 대중과 새벽 죽을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일어나 은혜에 감사하고는 사신을 맞이하여 함께 죽을 먹은 후 송을 지어 회답하였다.
마디가 있는 것은 대나무가 아니며
세 별이 달을 에워 싸는데
태양 아래 한 사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구나.
有節非干竹 三星繞月宮
一人居日下 弗與衆人同
황제는 몹시 기뻐하고 다시 송을 내렸다.
최고의 선승은
인연을 잊고 생각도 내지 않네
무심의 불꽃도 식었으니
몸조심하시고, 왕래해주소서.
最好坐禪僧 忘機念不生
無心熖已息 珍重往來今
연선사가 화답의 송을 지었다.
최고의 선승은
무념조차 나지 않네
빈 연못에 밝은 달이 나타나니
그 누가 고금을 말하는가.
最好坐禪僧 無念亦無生
空潭明月現 誰說古兼今
이때 화엄사의 융(隆)선사는 "연선사의 즉심시불송(卽心是佛頌)은 허공에 말뚝을 박은 것이었으나 그가 황제와 화답한 게송은 기연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융선사의 말 또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5. 황룡 혜남(黃龍慧南)선사의 3관화두송
황룡 남(黃龍慧南)선사는 평소에 학인이 찾아오면 반드시 태어난 인연[生緣]과 부처님 손[佛手]과 나귀 다리[驢脚]를 물어보는 까닭에 총림에서는 그것을 '삼관(三關)'이라 하였다. 혜남선사 스스로 세 수의 송을 지어 그 뜻을 밝혔으나 세상에는 오직 불수(佛手)와 여각(驢脚)에 대한 송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 생연(生緣)에 대한 송은 없어졌다. 그런데 여산 원통사(圓通寺)의 민(旻)선사는 황룡선사의 법손(法孫)으로, 남악사(南嶽寺) 광변(廣辯)수좌의 처소에서 혜남선사의 친필 게송 세 수를 보았다. 그 송은 다음과 같다.
나의 손과 부처님 손을
모두 그대들에게 들어보이니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면
창과 방패를 움직이지 않고
말해내는 당처에서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으리.
我手佛手 兼擧禪人
直下薦取 不動干戈
道出當處 超佛越祖
나의 다리 나귀다리
나란히 걸어가는 걸음마다
무생(無生)을 밟아가니
구름이 걷히고 햇살 감춰지는 곳에
종횡무진한 이 도를 비로소 알리라.
我脚驪脚 並行步步 踏着無生
會得雲收日卷 方知此道縱橫
생연이란 이야기를 모든 사람 다 알건만
해파리가 언제 새우를 떠난 적이 있던가
태양이 돋는 동쪽 언덕을 바라보기만 하면
어느 누가 다시 조주선사의 차를 마시리.
生緣有語人皆識 水母何曾離得蝦
但見日頭東畔上 誰能更喫趙州茶
「임간록(林間錄)」에 기재된 불수 · 여각송(佛手驢脚頌)과 대조해 보면 11 글자나 다른 곳이 있는데, 이는 전후 수차 고쳐 쓰다보니 그처럼 된 것이 아닐런지? 또한 혜남선사가 자명(慈明)선사에게 올렸다는 조주선사의 감파(勘婆) 화두에 대한 송에도 오히려 빠진 글자가 있다. 여기서 졸작과 수작을 볼 수 있으니, 이렇게 본다면 어찌 우열이 없겠는가?
6. 주무숙(周茂叔 : 周敦頣)과 청송사(靑松社)
춘릉(春陵)지방에 염계(濂溪)라는 시냇물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주무숙(周茂叔 : 周敦頣) 선생이 그의 조상 때부터 살아오던 고향이다. 그가 여산의 그윽한 경관을 좋아하여 이곳에 집을 짓고 이 시냇물을 염계라 이름한 것은 자기 근본을 잊지 않을 줄 알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불인 원(佛印了元)선사가 난계(鸞谿)에 살았는데 그들은 서로 도를 강론하며 방외(方外)의 벗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불인선사를 청송선사(靑松禪社)의 사주(社主)로 맞아 옛날 백련사(白蓮寺)의* 고사와 짝하게 되었다.
가우(嘉祐 : 1056~1063) 연간 주씨가 감상(灨上)의 통판(通判)으로 있을 때였다. 부사(部使)에게 그를 무고하는 자가 있어 부사가 매우 엄하게 다스렸으나 그는 초연하게 이에 대처하였다. 불인선사는 이 소식을 듣고 '여산이문(廬山移文)'이라는 글을 지어 그에게 보냈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벼슬길의 풍파란 깜짝 놀랄 일인데도
그대 마음은 평탄하기만 하구려
세상의 탐리를 말하기도 전에 눈썹을 찡그리고
구름 깊은 산을 돌아보자 눈빛이 빛나구려
호숫가 집언덕엔 푸른 버들 분명하고
밭 가운데 움막엔 시냇물 소리 가득한데
청송사에서 이미 선 결사를 약속했으니
돌아올 땐 백발이 돋았다고 내쫓지 마오.
仕路風波盡可驚 唯君心地坦然平
未談世利眉先皺 纔顧雲山眼便明
湖宅近分堤柳色 田齊新占石谿聲
靑松已約爲禪社 莫遣歸時白髮生
주렴계가 벼슬을 그만두기 전에 다시 달려가 시를 지었다.
호수(湖水)의 이별을 항시 생각하고
또한 여산에서의 한바탕 놀이를 더듬어 생각하니
두 곳 산천이 눈에 자주 어른거리건만
십년 세월이 덧없이 지나갔네
선가의 신선약을 그 누가 가져올꼬
불국토의 하늘 땅은 아름다운 곳인데
더구나 하늘 못에서 백련(白蓮)결사를 약속하니
어느 때 손을 잡고 봉우리 위에서 이야기 나눠볼까.
常思湖口綢繆別 又憶匡廬爛漫遊
兩地山川頻在目 十年風月澹經秋
仙家丹藥誰能致 佛國乾坤自可休
況有天池蓮社約 何時携手話峰頭
주렴계는 비록 이학(理學)을 연구하는 유교를 하였지만 불인선사를 결사의 주도자로 추천하니 그들의 도가 달랐다면 어떻게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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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진 혜원(慧遠)스님이 402년 경 주도했던 모임으로 아미타신앙을 주로 했으며 유유민, 뇌차종, 주속지 등의 거사들도 많이 참여하였다.
7. 고칙(古則)에 송(頌)을 붙이다 / 선(禪)선사
여산의 탕천사(湯泉寺)는 산남(山南) 지방의 작은 사찰이다. 희령(熙寧 : 1068~1077) 연간에 선(禪)선사가 그곳의 주지로 있었으므로 총림은 역시 편안하고도 엄숙하였다.
선선사가 한번은 거론하였다. "남전(南泉)선사가 귀종(歸宗)선사 마곡(麻谷)선사와 동행하여 충국사(忠國師)를 찾아가던 도중에 남전선사가 땅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놓고 '여기에 대해 말을 해내면 가겠다'고 하였다. 귀종선사는 그 동그라미 한 가운데 앉고 마곡선사는 여인 절을 하니, 남전선사는 '그렇다면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귀종선사가 이게 무슨 심사냐고 하자 남전선사는 소리치며 돌아왔다."
선선사는 여기에 송을 붙였다.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날 수 없지만
신령한 빛은 모두에게 원래 있었으니
시방찰해 한 끝이 일자마자
모두가 한쪽 손을 내미는구나.
獨掌不浪鳴 靈光各自有
梵刹一纔興 大家出隻手
대혜(大慧) 노스님이 두번째 경산사 주지를 지낼 때 학인들의 탁발 수행을 격려하면서 이 화두를 들어 말한 적이 있다. 선선사는 진정(眞淨)선사의 법제자이다.
8. 죽에 대하여 지은 글[粥疏] / 제이(齊已)스님
앙산사(仰山寺)의 소석가(小釋迦 : 혜적)가 예장(豫章) 관음사의 주지로 있을 무렵 제이(齊已)라는 스님이 많은 사무를 괄하였는데, 그는 '죽소(粥疏)'라는 글을 지었다.
죽을 좋은 약이라고
부처님이 찬양하셨네
그 뜻은 세 가지 보시중의 으뜸이요
그 공덕은 열 가지 이익보다 뛰어났네
명철한 분들에게 다시 바라노니
각기 원력을 이루시고
새벽죽이 준비되었으니
길이 선업에 보탬이 되시오.
粥名良藥 佛所讚揚
義冠三檀 功標十利
更祈英哲 各遂願心
旣備淸晨 永資白業
예전에 이 글을 돌에 새겨 놓았으나 건염(建炎 : 1127~1130) 연간의 병화를 겪은 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오직 예장(豫章)의 직방승(職方乘)에 "승려시인 제이가 쓴 '죽소'는 문장력이 볼만하다"라고 씌어 있을 뿐, 그 내용은 실려 있지 않다. 요즘 선림(禪林)에서는 새벽에 죽을 먹을 때 앞 부분의 네 구절만을 읊고 있으나 누가 지은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제이의 속성은 호씨(胡氏)이며 담주(潭州) 익양현(益陽縣) 사람이다. 어려서 대위사(大潙寺)에서 승려가 되어 우(靈祐)선사에게 공부하였으며 혜적(慧寂)선사와는 동문이다. 후일 그가 서산(西山) 금고사(金鼓寺)에서 살다가 입적하였는데 그곳에 부도가 남아 있다. 용반(龍盤)이란 바로 그의 서재이다. 원우(元祐 : 1086~1093) 연간에 도운관(都運官) 마순(馬醇)이 절의 벽 위에 시 한 수를 지어 붙였다.
지둔(支遁)선사 노닐던 곳을 내 만나지 못하였고
한가히 말을 내려 연화궁에서 쉬어가네
제이스님 살던 이야기를 물으려 하니
칠심 된 노승은 양쪽 귀가 다 먹었네.
支遁逍遙不我逢 等閒下馬憇蓮宮
欲詢齊已幽栖事 七十山僧兩耳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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