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노래가락에 느낀 바 있어 / 초안사(楚安寺) 방(方)선사
초안사(楚安寺)의 방(方)선사가 대별사(大別寺) 도(道)스님에게서 공부한 지 얼마 안되어 사원이 신소궁(神霄宮)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다. 방선사는 상주(商舟)에 올라 상남(湘南)을 지나는 길에 강언덕에서 누군가 그 지방 음악을 연주하면서 큰 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듣고서 깨친 바 있어 게를 지었다.
면수의 강심에 울리는 노래 소리에
바야흐로 평생의 의심을 깨달았네
여러 해 헤어졌다 다시 만나니
많은 성인이 한 길로 돌아 가누나.
沔水江心喚一聲 此時方得契平生
多年相別重相見 千聖同歸一路行
그 후 도(道)스님이 문수사의 주지로 있을 무렵 방선사는 수좌로 있었는데 그 때 지은 송이 3수 있다.
허공이 철벽산처럼 막혀있으니
그 누가 문수관을 뚫고 간 적 있었나
금강권(金剛圈) 율극봉(栗棘棒)을 다 끄집어내도
증험은 분명한데 말하기 어렵구나
허공이 철벽산처럼 막혔는데
타인이 일찍이 으뜸 관문 밟아갔네
온몸의 손과 눈이 모두 다 창칼이라
입에 가득한 지음(지음)을 다 말하기 어렵구나
허공이 철벽산처럼 막혔는데
언어와 형상을 떠나니 겹겹의 관문이 드러났네
당시 팔을 자른 전범이 있으니
삼배를 끝내자 입 벌리기 어렵구나.
大徹猶如鐵壁山 有誰曾透文殊關
金圈栗棘都拈出 公驗分明道者難
大徹猶如鐵壁山 佗家曾踏上頭關
通身手眼全鋒刄 滿口知音吐露難
大徹猶如鐵壁山 離言離相顯重關
當年斷臂規模在 三拜纔終開口難
초안사(楚安寺)에 주지로 있을 때 걸식 떠나는 승려를 보내면서 송을 지었다.
초안사에 머문 후 뼈속에 스며드는 가난
샅샅이 찾아봐도 아무런 물건 없네
시주 길 떠나가는 그대를 붙잡지 못하니
곧바로 깊은 용굴로 들어가
검은 용의 턱밑 여의주를 훔쳐내어
마음대로 쓰면서 신출귀몰 하였다가
이 산에 돌아와 이 늙은이에게 보여 주어
나를 편안히 앉아 있도록 하여다오.
自住楚安窮徹骨 搜羅淨盡都無物
令僧未免登檀門 直須深入蒼龍窟
拏取驪龍頷下珠 任運卷舒頻出沒
歸來呈似住山翁 令我安居坐兀兀
각 화엄(覺華嚴)은 그가 바른 안목을 가지고서도 거치른 땅 작은 사찰에 머문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세인의 여론이 없음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그의 소전(小傳)을 지어 찬하였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그가 깨달은 경지는 마치 활 잘 쏘는 사람이 쏘는 족족 과녘을 맞추듯 정확했고, 그가 상황에 응하는 것은 마치 옥을 차고 서서히 큰 길을 걸을 때 그의 행동거지가 모두 법이 되는 것과 같았다. 또한 그의 게송은 마치 저자 사람들을 몰아다가 전쟁을 할 때 겁장이와 용기 있는 자를 묻지 않고 모두 빠짐없이 기용하는 것과 같았다.
세상 사람들은 각 화엄이 무언가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47. 말쑥한 산천에 한 마리 기린 / 주봉암주(舟峰菴主) 경노(慶老)선사
천주(泉州) 북산의 정상에 배모양처럼 가로 누운 바위가 있어 세상에서는 그 산을 주봉(舟峰)이라 하였다. 법명 경노(慶老)이고 자가 귀년(亀年)이라는 큰스님이 이 산기슭에 토굴을 짓고 스스로 주봉암주(舟峰菴主)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젊었을 때 도덕과 문장으로 천남(泉南)지방의 승려나 속인 모두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 참정(參政) 이한노(李漢老)가 한번은 그를 방문하였다가 만나지 못하고 시를 남겼다.
혜원이 개울을 건넘은 육(陸)거사를 보내기 위함이었고
옥천은 절을 찾아왔건만 희(曦)를 만나지 못하였네.
慧遠過谿應送陸 玉川入寺不逢曦
그 당시 대혜(大慧)선사는 소계(小溪) 위에다 암자를 짓고 주석하였는데 많은 선객들이 그곳에 모여들었으며 주봉암주도 함께 있었다. 한번은 주봉암주가 대혜노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죽비(竹篦)'화두는 마치 민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일과 같아서 가산을 이미 몰수하고도 또 오히려 세금을 강요하는 격입니다."
"그대는 반만 말한 것이다. 세금을 바칠 수 없다면 어째서 강물에 몸을 던지거나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지 못하는가?"
주봉암주는 그 이후로 나날이 오묘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대혜선사가 경산사로 옮겨가자 주봉암주도 따라 가서 서기실(書記室)의 일을 맡아 보았는데 그의 화려한 문장은 총림에 빛을 더하였다. 일찍이 '서기얼굴[記容]'이라는 글을 썼다.
눈썹을 살펴보니 너무도 진실하고
이마 뼈가 머리에 튀어나와 정신을 나타내네
차가운 흰 수염 돋아나 늙은들 어떠하리
남루한 의복 길게 걸치고 가난을 견디자니
일생을 지샌 한 골짜기 오로지 그림자 두려운데
시방에 이제부터 몸 나누기 귀찮구려
그대 보았는가? 무수한 살덩이 어지럽게 흩어지니
어느 누가 맑은 산천의 한마리 기린과 함께할꼬.
檢點眉毛太逼鎭 伏犀搜腦見精神
霜頾漸茁何妨老 褸褐長披却耐貧
一叡平生專畏影 十方從此倦分身
君看逐塊紛無數 孰與淸源獨角麟
소흥(紹興) 계해년(1143) 초가을에 입적하니, 참정 이한노가 제문을 지어 그를 애도하였다.
내 처음 천남에 왔을 무렵 짝할 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대의 문을 찾아 가니 늙은 비구라 했었지. 내게 보여준 시와 문장은 옥소리 울리는 구슬이라 오늘날의 홍각범이며 예전의 탕혜휴였네. 서서히 두들겨 보자 해박한 지식으로 경전에도 밝았으니 그대가 만일 등용되었더라면 아무도 그대와 비길 수 없었으리. 만년에 큰스님 만났을 때 바늘에 겨자씨 던져 맞추듯 기연이 투합했고, 많은 산을 두려워 하지않고 발우 하나 들고 외롭게 노닐었네. 재주 높은 이들 그대를 싫어했고 뭇사람이 지껄여댔으나 나만은 수긍하지 않고 그들의 허물을 뽑아내니 금석은 움직이지 않는데 만물이 물결치네.
불법이 쇠퇴하여 서로 팔고 사는데 고을 관청 찾아가 하소연하니 죄인처럼 군색하기 이를데 없네. 스님은 외로운 선각자로서 도만을 생각할 뿐 두차례나 모시려 해도 나오지 않고 깊은 산골에 편안히 돌아갔도다. 내 늙어 쓸쓸할 때 그대 덕분에 시름을 잊고, 의심이 있으면 토론하고 시를 읊으면 화답했는데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미련없이 떠나셨소. 흰구름만 떠돌고 밝은 달 덧없이 흘러가는데 오가던 일 어젯밤의 꿈이련가. 물거품처럼 사라져가네. 이젠 오로지 부도탑만 남아 천추에 길이 전하리다.
48. 효종황제의 「원각경」 주석에 보인(寶印)스님이 송을 올리다
효종(孝宗)황제가 순희(淳熙) 10년(1183) 2월 을축일에 「어주 원각경(御註 圓覺經」을 경산사의 전법승(傳法僧) 보인(寶印)에게 하사하니 보인스님은 표를 올려 사은(謝恩)하고 송을 지어 바쳤다.
옛 부처님과 오늘의 부처님
모두 똑같은 장광설로
길 없는 가운데
중생을 위해 길을 열어주시니
산봉우리 구름을 헤치고
창공에 솟아오른 달같이
널리 온누리 사람을
말 한마디에 모두 깨치게 했네
깨달음에는 '원(圓)'이라 할 것도 없고
'환(幻)' 또한 사라질 것이 없어
이글거리는 화롯불 위에 한 점 눈처럼
'무(無)'마저도 없으니
머리 조아리는 모든 부처와 부처들이
글자마다 다른 말이 없어라.
古佛與今佛 同一廣長舌
於無途轍中 爲物啓途轍
撥開千嶂雲 放出一天月
普令大地人 言下悉照徹
覺亦無可圓 幻亦無可滅
只此無亦無 紅爐一點雪
稽首佛與佛 字字無異說
효종은 이경 깊은 밤에 이 송을 보고 매우 기뻐한 나머지 직접 스님을 모셔다가 물었다.
"장자와 노자는 어떤 사람이오?"
"그들은 불교로 치자면 소승 성문인(聲聞人)에 불과합니다. 소승인은 몸을 질곡(秩梏)에 매인 것처럼 싫어하며 지혜를 잡독으로 여겨서 몸을 불에 태우고 무위(無爲)의 경지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형체는 참으로 고목처럼 하고 마음은 꺼져버린 재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황제의 마음은 흡족하였으며 보인선사가 입적하자 혜변선사(慧辯禪師)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49. 백운산 대나무귀신 / 해회사(海會寺) 수종(守從)선사
백운(白雲) 해회사(海會寺)의 수종(守從)선사는 풍성 주씨(豊城朱氏) 자손으로, 마을에 있는 서용원(西龍院) 덕진(德眞)스님에게 삭발하였다. 깊은 도량과 훤출한 키에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혀는 남달리 길어서 코끝을 핥을 수 있었으며 연꽃송이처럼 붉었다. 젊은 시절에 여산(廬山)의 계남(系南)선사와 함께 담주(潭州) 도림사(道林寺) 우(祐)선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계남선사가 입적할 때 대중스님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응(應)수좌와 종(從)장주는 오랫동안 스승의 문하에 있으면서 불도를 깊이 밝혔으므로 대중들은 그를 찾아 물어보도록 하여라."
종(從)장주는 바로 수종선사이다. 얼마 후 구강(九江)을 건너 환산(皖山) 산곡사(山谷寺)에서 은둔하였다가 백운(白雲) 해회사(海會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왔는데 「백운관(白雲關)」이라는 게송이 있다.
백운관은 드넓게 법계를 감싸서
걸림없이 성인과 범부를 넘나드는데
부질없이 붙들어놓고 유래를 물어보니
이 일이 분명한데도 알지 못하네.
白雲關廣藏法界 入聖出凡無罣礙
等閒把住問來由 底事分明却不會
또한 그는 스스로 죽령수(竹靈叟)라는 호를 짓고 송을 읊었다.
백운산 죽령수는
사납기가 자호산의 개 같아서*
선승이 생각하려 들면
당장 한 입에 물어뜯고
또다시 창자까지 끄집어 내려하니
성인이나 범인이 모두 놀라 달아나네
잠깐 잠깐 머무적거리다가 기회를 타서
여인의 속곳을 벗겨 버린다.
白雲竹靈叟 獰似子湖狗
衲子擬思量 當頭著一口
更欲取腹心 聖凡皆倒走
住住住乘時 脫却娘生褲
대혜노스님이 행각할 때 그의 법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정법안장(正法眼藏)」을 편수할 때 그의 어록을 찾아 보았지만 찾지 못했기에 말씀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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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호산(자호산) 이종(이종)선사는 산문에 「재조심!」이라는 패를 걸고 학인을 지도하였는데 하루는 상당하여 대중법문을 하였다.
"내게는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위로는 사람의 머리를 물고 가운데로는 심장을 물고 아래로는 사람의 발을 문다. 머뭇거렸다가는 목숨이 날아간다." 한 스님이 있다가, 무엇이 스님의 개냐고 묻자 스님은 왕! 왕!하고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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