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와기담雲臥紀談

운와기담 下 33~37.

쪽빛마루 2015. 11. 7. 08:22

33. 임종 앞에서 자기 비문을 짓다 / 문혜공(文惠公) 진요좌(陳堯佐)

 

 진문혜공(陳文惠公)은 낭중(閬中) 사람이다. 평소 불교에 마음을 두었는데 산사에 놀러갔다가 갑자기 깨달은 바가 있어서 게송을 읊었다.

 

옛 법당엔 차가운 화로 덩그랗고

너저분한 티끌 금박에 얼룩졌는데

사람 없는 이곳에 홀로 앉아 있다가

여기에서 참 소식을 얻었노라.

殿古寒爐空  流塵暗金碧

獨坐了無人  又得眞消息

 

 경우(景祐 : 1034~1037) 연간에 재상에 임명되었고 이어 외직으로 나가 정주(鄭州)를 다스리다가 태자의 스승을 마지막으로 사직하고 정주의 농장에서 살다가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임종 때 스스로 묘지문(墓誌文)을 지었다.

 

 송나라 영천(潁川)선생의 이름은 요좌(堯佐), 자(字)는 희원(希元), 호는 지여자(知餘子)이다. 82세까지 살았으니 수명이 짧다 할 수 없고 벼슬이 일품(一品)에 올랐으니 비천하다 할 수 없고 재상의 녹을 반납했으니 욕된 일을 했다 할 수 없다. 이 세가지는 내 조금이나마 부모의 신령이 사는 곳에서 쉬어도 될 법한 일이다.

 

 아! 공은 허깨비 같은 세상에서 조금치도 여한 없이 살았고 또 스스로 참 소식을 얻었다 하니, 진실로 함께 도를 논할 만한 이가 아니겠는가?

 

 

34. 혜남선사께 법제자가 되겠다는 편지를 띄움 / 보본사(報本寺) 원(元)선사

 

 호주(湖州) 보본사(報本寺)의 원(元)선사에 대하여 「임간록(林間錄)」에 기록이 보인다.

 

 오강(吳江) 성수사(聖壽寺)에서 개당하고 황룡(黃龍慧南)선사의 법제자가 되겠다는 편지를 띄웠는데 혜남선사가 그의 이름을 보고서 '내 어쩌다 이 스님의 이름을 잊어 버렸다. 아직은 그 편지를 열어보고 싶지 않으니 직접 오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원선사가 주지를 그만두고 그날로 걸망을 메고 왔다.

 

 그러나 혜남선사의 서간집(書尺集) 가운데는 원선사에게 보낸 답서가 있다.

 

 오강 성수사 장노에게 편지를 띄우노라. 지난해 영(永)스님이 이절(二浙)에서 금불상을 맞아 왔고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대 생각이 났다. 그대는 황벽사를 떠난 지 10여년을 지팡이 하나로 이리저리 흘러다니며 외로운 자취를 아직도 정착하지 못했으니, 비록 흰 것을 알고서도 검은 것을 지킨다는 옛말이 있기는 하나 과실이 익으면 스스로 향기가 풍겨남을 또 어찌하랴? 인연이 오강(吳江)에 있으니 시대의 부름에 응하여 산을 나서라. 마땅히 성현의 규범을 따라 말씀과 같이 행동할 것이며 용렬한 무리를 흉내내어 당돌하게 함부로 지껄여대서는 안된다. 모든 주지 업무는 반드시 신중히 해야 하니 이에 관해서는 글로 다 쓰지 못한다.

 

 이렇게 자상한 편지를 보건대 어찌 혜남선사가 우연히 원선사의 이름을 잊었겠는가?

 원선사는 일찍이 세 수의 게송을 지어 학인들에게 보였다.

 

그대가 서쪽에서 온 뜻[西來意]을 묻는다면

옆 사람 뜻은 벌써 분명히 드러났다

병들면 차가운 봄기운 싫어하고

늙어가니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보네

꿈 속에서 삼계를 노닐다가

깨고나니 한낱 꿈이로다

말로는 못다할 이야기 있으니

앉아서 곰곰히 생각하여라.

 

你問西來意  傍人意已彰

病嫌春冷淡  老見事尋常

 

睡裏遊三界  惺來夢一場

言應言不及  得坐細思量

 

그대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는다면

내 광남(廣南) 땅에서 태어났다고 하리

벼슬아치들은 한어(漢語)로 말하지만

백성은 사투리로 이야기하네

 

여름엔 비단 부채가 필요하고

겨울엔 갈포 옷 싫어하는 법

조계의 문이 크게 열려 있으니

사람들이 오는 것을 막지 않겠지.

 

你問西來意  余生在廣南

官人須漢語  百姓只鄕談

 

九夏須執扇  三冬厭綌衫

曹谿門大啓  應不阻人參

 

그대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는다면

이구동성으로 분명히 알라 하리라

많이 들음이 지혜가 아니며

적게 배움이 어리석음이 아니다

습득(拾得)은 불을 잘 지피고

한산(寒山)은 시를 잘하였다.

쯧 쯧! 미친 놈이여

누가 랄~라~리 노래 부르는가.

你問西來意  同聲了了知

博聞非智慧  寡學豈愚癡

拾得能燒火  寒山解作詩

咄哉顚蹶漢  誰唱羅羅哩

 

 

35. 야헌 가준(野軒可遵)선사의 시와 송

 

 중제(中際) 가준(可遵)선사의 호는 야헌(野軒)이다. 일찍부터 강호에서 시송으로 명성을 떨쳤기에 총림에서는 그를 '준대언(遵大言)'이라 하였다. 소동파가 선사의 '여산(廬山) 온천'이라는 시를 보고서 화답한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그의 명성은 더욱 빛나게 되었다.

 무위자(無爲子) 양걸(楊傑)의 자는 차공(次公)으로 선사와 교류가 있었는데 게송을 지어 선사를 조롱하였다.

 

구멍없는 철추가 너무 무거워

야헌(野軒)의 시송에 떨어졌도다

덜익은 콩엔 신맛이 전혀 없는데

곧바로 양념 독에 쑤셔 넣도다.

無孔鐵鎚太重  墮在野軒詩頌

酸豏氣息全無  一向撲入齏瓮

 

 이에 가준선사는 그의 운을 따라 화답하였다.

 

무위자! 큰 존경도 받지 못하면서

가는 곳마다 시를 읊고 게송을 지어대니

설령 백발백중 하더라도

범종을 보고 옹기라 말하는 꼴 면치 못하리.

無爲不甚尊重  到處吟詩作頌

眞饒百發百中  未免喚鍾作瓮

 

 얼마 후 어떤 스님이 무위군(無爲軍)으로 행각을 떠나가자 가준선사는 게송을 지어 전송하면서 또한 양차공을 업신여기는 글을 지었다.

 

이번 걸음은 무위(無爲)를 유정(有情)으로 바꾸자 함이나

나 야헌은 그대의 행각에 아무것도 줄 것이 없구나

만일 양걸(楊傑)의 문전을 지나가거든

나를 위해 큰 소리로 할을 한번 해주오.

今去無爲化有情  野軒無物贈君行

若從楊傑門前過  爲我高聲喝一聲

 

 양걸은 일찍이 설두(雪竇) 문하의 많은 스님에게 도를 물었고 가준선사는 보본사(報本寺) 난(蘭)선사의 뒤를 이었기에 설두선사를 조부로 삼았다.

 

 

36. 서희(徐禧)가 영원(靈源)선사에게 법을 묻다

 

 무령(武寧) 용도각(龍圖閣) 서희(徐禧)의 자는 덕점(德占)으로 일찍이 황룡사 회당(晦堂)스님 문하에서 공부하여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는 영원(靈源)선사와 법우(法友)가 되었는데 어느 날 영원선사에게 물었다.

 "예전에 한 노스님이 있었는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거꾸로 소타고 다니는 놈'이라고 불렀다. 말해 보라. 어떻게 해야 그에게서 이런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원스님은 "고삐가 내 손 안에 있다."고 대답하고는 게송을 지어 그 뜻을 풀어주었다.

 

길에서 주인이 되어 문 안에서 몸을 내민다

거꾸로 타고 바로 타는데 어느 것이 가장 편할까

땅바닥에 티끌이 많다고 싫어하지 말아라

백척간두에 걸음마다 새롭구나.

塗中作主  門裏出身

倒騎順騎  誰爲最親

莫嫌土面塵埈甚  百尺竿頭步步新

 

 

37. 무진거사와 대홍 은(大洪恩)선사가 선과 교의 요체에 대해 논하다

 

 대홍 은(大洪恩)선사와 무진(無盡)거사 장상영이 선과 교의 요체를 논하다가 무진거사가 선사에게 물었다.

 "「화엄경」에 옛 주석에는 제각기 장점이 있습니다. 일곱 글자의 제목(大方廣佛華嚴經)에 대해서는 청량(淸凉)대사가 그 묘한 이치를 가장 잘 터득했고, 초발심에서 정각을 이룬다는 부분은 이장자(李通玄長者)가 가장 명쾌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하여 참으로 문자와 개념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서 임제선사는 귀뺨을 후려쳤던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의 공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니 한번 말해 보십시오."

 은선사가 대답하였다.

 "청량대사와 이장자, 그리고 임제 일종(一宗)의 공안에 대한 분석을 듣고 보니 사리가 분명하니 거기에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한 가엾은 제가 거사께 한번에 감파당하고 말았습니다. 죄는 중하게 매기지 말아야 하고 지난 일은 허물삼지 말아야 하나 요컨대 그래도 30방(棒)을 때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만일 명령에 따라서 집행한다면 법은 다 집행했으나 도리어 백성은 없어지게 됨을 볼 것이며 그렇다고 한가닥 길을 틔워준다면 알고서도 고의로 잘못을 범할까 두렵습니다. 이 두 길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위에서 거론한 세 분도 이 물음엔 대답하기 어려워 아마 삼천리 밖으로 도망갈 것입니다. 이에 별지에 나의 뜻을 알려 드리오."

 은선사가 별지를 봉하여 무진거사에게 보내자 무진거사는 봉해 온 백지 위에 한 수를 써서 은선사에게 보냈다.

 

삼천리 밖으로 도주할 필요 없는데

하필 몽둥이 30대의 중죄를 매기는가

모두가 모래알처럼 수많은 보배창고라

싸늘한 밤 기운에 독서 등불을 돋우네.

不須倒走三千里  何必重科三十藤

盡是何沙眞寳藏  夜寒挑起讀書燈

 

 은선사는 4수의 게를 지어 화답하였다.

 

삼천리 밖으로 도주할 필요 없다 하나

드넓은 파도가 평지에 일어나네

백척간두에서 웃음 그치지 않는데

임제 · 덕산은 부질없이 귀 기울인다

 

하필 몽둥이 30대의 중죄가 되겠느냐 하나

잡고 놓아줌이 여기서 나오네

거사는 전해 온 그 무언가가 있을터라

솥발같은 세 봉우리는 층층이 푸르네

 

모두가 모래알처럼 수많은 보배창고라 하여

중생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 주었네

온 곳을 육조(혜능)에게 입 없이 물으니

놀랍구나, 진흙소가 큰 코끼리를 삼키니

 

싸늘한 밤기운에 독서의 등불을 돋우자 하시나

낡은 승복을 머리에 덮어 쓴 늙은 중일 뿐

정명거사의 열렬한 의기에 부끄러움 느끼며

병많은 몸 매사에 무능함을 스스로 불쌍히 여기네.

 

不須倒走三千里  浩浩淸波平地起

百尺竿頭笑不休  臨濟德山徒側耳

 

何必重科三十藤  放行把住此爲憑

居士傳來應有在  三峯鼎峙碧層層

 

盡時河沙眞寳藏  聊與人間*作歸向

來時無口問盧能  驚怪泥牛呑大象

 

夜寒挑起讀書燈  壤衲蒙頭箇老僧

慚愧淨名多意氣  自憐多病百無能

 

 은선사는 투자 청(투자청)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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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의 '問'은 '間'의 오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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