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불탄절 법문 / 만암 치유(萬庵致柔)선사
만암 유(萬庵致柔)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유규(有句) 무구(無句)는 마치 등넝쿨이 나무에 기대 있는 것과 같다 했으니, 이는 가시나무 숲속에서 살 길을 틔워주는 말이다. 그러나 나무가 자빠지고 등넝쿨이 메마르면 유구 · 무구는 어디로 돌아갈까. 무쇠 저울추에 좀벌레가 구멍을 뚫으니 진흙 쟁반을 버리고 껄껄 웃는다. 사람을 죽이는 칼인지 살리는 칼인지는, 황금털 사자새끼라면 삼천리 밖에서도 가짜를 가려낼 것이다."
불탄절(佛誕節)을 맞이하여 설법하였다.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이미 사악한 길로 들어선 일이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함은 눈뜬 자리에서 오줌을 싼 것이다. 하늘과 땅을 가리켰다 하지만 무슨 근거가 있으며,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하지만 한갓 어린애가 아닌가. 도대체 목욕은 시켜서 무얼 하겠다는건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
"산호 베개머리에 흐르는 저 눈물의 절반은 그대 생각, 절반은 그대 원망."
가을서리를 밟으며 얼음을 알고, 봄이슬을 밟으며 무더위가 다가옴을 알 듯, 위의 몇 마디로 스님을 알 수 있겠다. 밀암(만암의 은사스님)스님의 가풍은 엄하였으나 많은 학인을 맞아 지도하기도 하였다. 배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큰 물고기도 그물을 빠져나갈수 없듯이 만암 치유스님으로서도 밀암스님의 법망(法網)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8. 한 차례의 뺨따귀 / 개당 총(芥堂璁)선사
개당 총(芥堂璁)선사가 목암(木庵)스님을 시봉하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그대는 여기 있으면서 무얼 했는가? 여름결제도 끝나 가는데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에 목암스님이 뺨을 후려치면서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또다시 대답하려는 찰나에 한 차례 따귀를 맞고는 느낀 바 있어 식은땀을 흘렸다. 하직인사를 드리고 떠난 뒤로 여러 지방의 이름난 스님들을 모두 찾아 다녔다. 노년에는 오문(吳門) 성인사(聖因寺)에 주지하면서 더욱 명성을 날렸는데, 백발이 어깨 위를 덮었으므로 총림에서는 그를 총백두(璁白頭)라 일컬었다.
9. 황룡의 골수를 얻은 자손 / 진원 혜일(眞源慧日)선사
진원 혜일(眞源慧日)선사의 자(字)는 명가(明可)이며, 인품이 단정하고 준수하였다. '황룡삼관(黃龍三關)'에 대하여 송하였다.
내 손과 부처님의 손
똥치우는 쓰레받기며 빗자루
집어들자마자 떠나가니
누가 앞이며 누가 뒤인가.
我手佛手 糞箕掃帚
拈起便行 誰分先後
내 다리 당나귀 다리
걸음걸음 밟아나아가다가
허공을 밟았구나
마음 내키는대로.
我脚驢脚 步步踏着
踏破虛空 一任卜度
사람마다의 태어난 인연은
지붕 틈새로 하늘을 바라보는 격
어젯밤 진흙소가 날뛰면서
금강역사를 거느리고 발광하더구나.
人人有箇生緣 屋漏望見靑天
昨夜泥牛勃跳 帶累金剛發願
응암(應庵)스님이 이 게송을 보고서, "참으로 황룡(黃龍)의 골수를 얻은 후손이다."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또한 죽비자(竹篦子)를 송하였다.
반년 동안 출정하여 옛요새에 머무노니
장군의 말 한 마리 의기도 드높았지
겹겹이 쌓인 성은 무너졌는가
부질없이 관문만 지키며 꼼짝을 못하는구나.
半載出師當古塞 將軍疋馬意崢嶸
不知打破重城了 空把牢關不放行
대혜(大慧)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이 황룡(黃龍慧南)의 법손이 우리 양기파(楊岐派)의 이치도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진원(眞源)스님이 한번은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일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셨는데 무엇이 일대사 인연인가?"
아무 대답을 못하자 다시 비유를 들어 그에게 말하였다.
"조천문(朝天門) 앞에 밝은 구슬이 하나 떨어져 있는데 수많은 사람이 그 앞을 지나면서도 보지 못하다가 문득 어떤 이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좋다고 소리치는 것과 같으니, 이런 이치다. 알겠느냐?"
처음엔 항주(杭州) 다복사(多福寺)에, 그 뒤엔 승주(昇州) 흥교사(興敎寺)와 명주(明州) 향산사(香山寺)에 주지하였으니 이는 곧 천태산(天台山) 만년사(萬年寺) 설소 일촌승(雪巢一村僧)의 법제자이며 그가 설법한 종지는 모두 연원(淵源)이 있다. 「설소별첩(雪巢別帖)」에 이런 기록이 있다.
"인편에 너의 서신을 받고 임안부(臨安府)의 명으로 주지로 선임되어 세간으로 나가게 되었다 하니 반가웠다. 이어 우리가 헤어진 후 새로 주지가 되었고 건강 또한 무고하다 하니 깊이 위안이 되는 바이다. 그 동안 장로사(長蘆寺)로 가는 길에 한 차례 만나 보고 싶었으나 이미 절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게다가 사람들의 말에 다복사(多福寺)는 잠신성(潜新城)의 깊은 산 속에 있다하니 마음 슬프게 멀리 바라볼 뿐이다. 내 곁에는 사람이 없으니 그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나 이미 부처님의 인장을 차고 나갔으니 어찌 하겠는가. 두 가지 일을 완전히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노력하여 앞으로 나아가 도를 행하되 마음 내키는대로 자신에게 후하고 타인에게 박하게 해서도 안되니 부드럽고 따뜻하고 담박해야 하는 것을 그대도 깊이 알 것이다. 요즘 주지 중에 이런 이가 많으니 서로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 오면 나는 천태산(天台山) 만년사(萬年寺) 관음별원(觀音別院)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오래 머물 계획이니, 너를 만나볼 인연이 없겠구나. 아무쪼록 세간의 인정에 따라서 조사의 도를 빛내주기 간절히 비는 바이다."
「보등록(普燈錄)」에는 "그의 사법(嗣法)제자는 법상수좌(法常首座)이다"라는 말밖엔 실려 있지 않다.
10. 똥더미 위에 부처님 / 애당 묘담(愛堂妙湛)선사
애당 묘담(愛堂妙湛)선사는 항주(杭州) 정자사(淨慈寺)의 수암(水庵師一)스님에게 귀의하여 수두(水頭 : 물 관리 소임)와 정두(淨頭 : 변소 관리 소임)를 보았다. 어느 날 절 앞에서 부채를 펼치자 돈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크게 느낀 바 있어 팔을 움츠리는 것마저 잊어버렸는데 곁에 있던 스님이 꾸짖으며, "이 바보야! 부채 위에 돈이 있었단 말이다."라고 하니 그 말을 듣고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를 부축하고 돌아와 수암스님에게 말씀드리니 수암스님은 그를 인가하였으며 그는 게송을 지어 드렸다.
한 똥더미 위에 거룩하신 부처님
백호광이 천지에 빛나네
확탕 · 노탄 지옥에서 연꽃이 피고
얼굴을 씻을 때면 코 끝이 만져진다.
一堆屎上一尊佛 放出毫光照天地
鑊湯爐炭裏生蓮 只因洗面摸着鼻
긍당(肯堂彦充)스님의 수좌(首座)가 되었는데, 어느 날 새로 부임한 복주자사(福州刺史) 왕도(王度)가 산에 놀러 왔다가 불법을 논하던 중 그와 마음이 통했다. 왕도가 복주에 부임하자 황벽사(黃檗寺)로 묘담(妙湛)스님을 초청하였고, 그 후 오문군수(吳門郡守) 조언숙(趙彦橚)의 청을 받고 승천사(承天寺)로 가는 도중에 입적하였다.
애당 묘담스님은 안길(安吉) 사람이다. 성품이 소박하여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고 이따금씩 하는 말은 마치 마른나무 같았으므로 세상사람들이 그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11. 불 행숭(佛行菘)선사의 상당법문
임안부(臨安府) 경산 소림사(少林寺)의 불 행숭(佛行菘)선사는 건주(建州) 포성(浦城)에서 태어났으며 성은 서씨(徐氏)이다. 몽필봉(夢筆峰) 등각사(等覺寺)에서 공부하고 안길(安吉) 보본사(報本寺)의 주지가 되었다. 동암(東庵)스님의 법을 이어 사방에 이름이 났으며 얼마 후 항주(杭州) 정자사(淨慈寺)에 주지를 맡았다.
상당하여 법문을 하였다.
"한 스님이 염관(塩官)에게 묻기를, '무엇이 노사나불(盧舍那佛) 본래 몸[노사나불은 천백억개로 화신하는 부처님이다]입니까?'하니 '나에게 물병을 가져 와라'하였다. 그 스님이 물병을 들고 가자, 염관스님은 다시 그 자리에 갖다 두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염(拈)하였다.
염관의 8만 4천개 땀구멍
구멍구멍이 모두 열려 있고
3백 6십 뼈마디
마디마디 모두 끊기려 하는데
애석하다. 이 중놈은 꿈을 꾸고 있구나.
塩官八萬四千毛竅 竅竅俱開
三百六十骨節 節節欲斷
可惜 這僧如夢相似
상당하여 법문을 하였다.
"동산(洞山)스님의 '여름결제가 끝나고 그대들은 이쪽저쪽으로 떠날텐데, 만리 저쪽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곳으로 가거라'하신 말씀에 대하여 후일 유양(瀏陽)암주는 '문 밖에만 나서면 모두 풀밭이다' 하였고, 대양(大陽)스님은 '문 밖에 나가지 않아도 넓고 넓은 곳이지'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려주고는 이렇게 염(拈)하였다.
"같은 소리는 함께 울리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는 법이니, 세분 노스님이 없다 할 수는 없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구렁이가 그들의 발목을 모두 칭칭 감고 있다. 자, 이해득실이 어디에 있을까?"
흰구름에 싸여 있는 일천봉 저 정상에
노소에 차가운 빗방울이 따로 있음을 누가 알랴.
誰知雲外千峯頂 別有靈松帶雨寒
상당하여 법문을 하였다.
"이 법은 보여줄 수도 없고 말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떨기떨기 피어난 봄 꽃송이에 만학천봉 겹겹이 깊기만 하다. 바야흐로 이와 같을 때 석가모니는 콧구멍[鼻孔]을 잃었는데 이 이치를 그대들은 아는가?"
할을 한번 하고서는 법상에서 내려왔다.
상당하여 설법하였다.
"대용(大用)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모든 생각[見]을 잊어댜 한다. 모든 생각이 다 사라지면 어두운 안개는 피어나지 않고 큰 지혜가 찬란할 것이다. 그렇다해서 그것이 딴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는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며 말하였다.
"보아라. 만일 보인다 한다면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셈이고,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머리를 잘리고서 살길을 찾는 일이니 도대체 어찌하겠는가?"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주각(注脚 : 注釋)을 잘못 달 뻔 했구나."
할을 한번 하고서는 법상에서 내려왔다.
선석(禪席)을 물러난 뒤에는 무강(武康) 연산(宴山)의 접대사(接待寺)에서 지
냈다. 영종(寧宗)이 더욱 불법을 숭상하여 가정(嘉定 : 1208~1224) 연간에 스님은 두 차례의 어명을 받아 남산사(南山寺)를 관리하였고 칙명을 받아 연화전(延和殿)에서 성상을 알현하였다. 영종이 불행선사(佛行禪師)라는 법호와 금란가사를 하사하였으니 은총이 지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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