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3)
도는 말을 통해 밝혀지고 말은 덕에 의해 전해진다. 그러므로 덕 있는 자의 말은 한 시대 사람에게만 믿음을 줄 뿐 아니라, 후세까지도 의심없이 전해진다.
서중(無慍恕中 : 1309~1386)스님은 서암사(瑞岩寺)의 일을 그만두고 태백산 암자에 한가히 머물면서 스스로 도를 즐겼다. 쓸쓸한 방에는 물건들이 넉넉하지 못했는데도 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신발이 매일 문 밖을 메웠다. 그들은 밀어내도 가지 않고, 어쩌다가 한 말씀 얻어 들으면 천금처럼 귀중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감로수(甘露水)나 제호(醍醐)를 마신 듯 마음과 눈이 한층 빛났다. 이는 스님께서 평소 여러 큰스님의 문하를 참방하여 보고 들었던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실들을 마음 속 깊이 원만히 체득해서 말로 표현하였기에, 아름답게 꾸미지 않아도 자연히 훌륭한 격식을 이룬 것이리라. 총림의 큰스님과 유학의 선각자, 그리고 아래로는 마을의 어린아이들까지 그들을 격려시킬 수 있는 선한 이야기와 그들을 경계시킬 수 있는 악한 이야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들려주어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이를 기록하여 「산암잡록(山艤雜錄)」이라는 책으로 만들어냈다.
취암사 주지로 있는 그의 제자 현극 정공(玄極頂公)이 이를 간행하면서 멀리 서울까지 찾아와 특별히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나는 읽으면서 차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태평성대의 말이란 모두 바른 법을 따르므로 거친 말과 부드러운 말이 모두 진리다”한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훌륭한 의원이 다루면 모든 초목이 약이 되지만 모르는 자는 손에 약을 쥐고서도 병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하겠다.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이 불법 아닌 것이 없으므로 이치에 밝은 자가 이를 얻으면 모두가 세상에 전해지는 가르침이 된다. 덕이 있으면 말을 남기게 된다 함은 스님을 두고 이르는 말로서 스님은 약과 병을 잘 아는 자이며, 불법을 잘 말하는 자이다.
나와 스님과는 한 문중이라는 우의가 있으므로 비록 한 차례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지만 그의 명성과 행적은 몇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그가 대중을 감복시킬 만한 덕을 지녔고 세인을 가르칠 만한 말씀을 남겼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을텐데 더구나 이 책의 내용은 모두가 있었던 사실이다. 사실을 통해 이치를 밝히고 가까운 일을 들어 먼 것을 가리키는 법이니, 이 책으로 당세를 유익하게 하고 끝없이 전해주어야 한다.
홍무(洪武) 기사년(1389) 여름 6월 승록사 좌선세(僧錄司左善世) 홍도(弘道)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