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전할 수 없는 소실봉의 묘법을 각자의 그 자리에서 들어보이자니 지적해 보일 모양도 없고 가리켜 보일 모퉁이도 없으며 설명할 말도 없고 펼쳐보일 도리도 없다. 텅텅 비어 터럭 만큼도 없고 조짐조차도 떠나서 원만고요하며 진정묘명하다. 시방허공을 관통하고 법계를 둘러싸니 있다 할 수도 없고 없다 할 수도 없다. 공(空)이 이를 말미암아 공(空)이 되나 공과 섞일 수 없고, 색(色)이 이를 의지해서 색이 되나 색과 같을 수 없다. 물에 짠 맛이 녹아들 듯 미혹한 범부 속에 들어가고 아교풀에 청색을 붙인 듯 깨달은 성인과 함께한다.
설산의 큰 사문은 지혜와 말솜씨가 끝없이 깊고 넓었다. 3백여회에 걸쳐 근기들을 틔워주신 그 말씀은 심원하고도 활달하였다. 대자재를 갖추어 열었다 닫았다 폈다 말았다 하면서 비밀스럽고도 그윽하게 들춰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유독 이 일에만은 한 글자, 한 획도 그을 수 없었으니 가히 지극한 성인의 큰 생각이며 지극한 신령의 현묘한 창고라 하겠다.
원오(圓悟) 스님은 동산(東山) 법연 오조(法演五祖)스님께 법을 얻은 분으로서 안목이 밝고 틀이 활달하며 마음이 툭 트였고 말이 완벽하였다. 그는 하나의 방편만을 고집하지 않고 참선하는 무리들에게 가르침을 열었는데 그것이 흘러넘쳐 큰 책이 되었다. 그것을 '심요(心要)'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말 없는 가운데 말을 드러내고 모양 없는 가운데 모양을 드리운 것이다. 근기에 맞게 응대해서 그들의 속박을 풀어주고 그들의 짐을 놓아주되 많아도 번거롭지 않고 적어도 소략하지 않아서 어디를 가나 요점을 얻고 어디를 가나 근원을 만나게 하였다. 그 통쾌하고 빠른 점에서는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시라했던 마조스님의 면모를 높이 사고, 세밀하고 단속하는 점에서는 그저 한가로움을 지킨 암두스님이나 마음에 아무 일 없었던 덕산스님을 중히 여겼다.
초학지도에는 반드시 실참(實參)을 하도록 했다. 밥도 잠도 잊고 사랑과 증오를 다 없애며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놓아서 한구석도 막힌 데 없이 기륜(機輪)을 활짝 벗어나게 하였다. 태엽을 돌리듯 얼굴을 바꿔 한입에 물어뜯고 앉은 자리를 홱 틀어버리니 거기에 어찌 머뭇거림을 용납하겠는가. 마치 커다란 구름이 홀연히 변화하면서 천지를 다시 짜듯, 단비가 내려 초목을 고루 적시고 흘러서 강물로 퍼지듯 하였다. 잠깐 사이에 안개가 걷히듯 하니 오고 간 흔적을 찾으려 하나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법을 얻어 자재한 이가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법을 설한 한 분의 종사라 하겠으니 비록 임제, 덕산이라 해도 이 앞에서는 옷깃을 여며야 할 것이다. 그는 반야종지를 맛보아 적겁토록 훈습단련을 쌓았으므로 이러한 걸림 없는 원만자재를 얻은 것이리라.
감복 속에서 이 책을 두번 세번 읽고는, 깊숙이 절하고 이 글을 쓴다. 진정코 원오스님께서 대적정문(大寂定門)에서 행여라도 고개 끄덕여 주기를 감히 바랄 수는 없겠지만 그의 가르침이 외롭게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원(元) 천목(天目) 중봉선사(中峰禪師) 명본(明本) 제(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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