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단하불지유선사(丹霞佛智裕禪師)에게 드리는 글
조사의 종풍은 걸음걸이가 활달하고 원대하여 교승(敎乘)을 아득히 벗어나 정인(正印)만을 단독으로 제창하였습니다. 영산회상에서 잠시 들어보이자 음광(飮光 : 가섭)이 미소하며 알아차렸고, 용맹(龍猛)이 원상(圓相)을 보이자 제바(提婆)가 가운데를 맞추었습니다. 또 소림에서 마음을 찾자 이조(二祖)가 훌쩍 깨달았고, 노행자(盧行者 : 6조)가 게송을 읊자 대만(大滿 : 5조)이 의발(衣鉢)을 부촉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이를 가만히 전수했다고 합니다만 그 단서를 따져 본다면 낭패입니다. 어찌 지극히 오묘하고 심오한 종지로 나아감이 이 정도에 그치겠습니까. 요컨대 모름지기 높은 하늘과 같고 두터운 땅과 같으며, 고요한 바다와 같고 넓은 허공과 같다해도 비슷하지도 못합니다.
한량을 넘어 크게 해탈한 사람이 천지를 굴리고, 바닷물을 다 마셔서 말라붙게하고 허공을 소리쳐 흩어버리며, 가이 없는 향수해(香水海)의 부당왕찰(浮幢王刹) 밖에서 대기대용을 떨쳐 보이며 마군 외도의 견해를 자르고 불조의 교화방편을 끊으며, 염(拈)하여 제창할 수도 없고 제시할 수도 없는 심오함을 게양해 보인다 해도, 아직은 정확한 법칙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설봉은 오산(鼇山)에서 도를 얻고, 운암(雲巖)은 시종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는데, 이는 희론일 뿐입니다. 모름지기 심장 · 간장을 생철로 만들어 살인을 하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을 솜씨라야만 풍규(風規)를 약간 드러내 보이게 되며, 혜명(慧命)을 무궁토록 유전시킨 것을 귀하게 여겨야만 약간은 사람 뜻에 맞다 하겠습니다.
'선림고경총서 > 원오심요圜悟心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오심요 下 65. 양무구거사(楊無咎居士)에게 드리는 글 (0) | 2016.03.18 |
---|---|
원오심요 下 64. 건염(建炎) 3(1129)년 윤달 11일, 전 운거사 주지 원오선사(圜悟禪師) 극근(克勤)이 경룡학(耿龍學)에게 보낸 편지 끝에 붙인 글 (0) | 2016.03.18 |
원오심요 下 62. 원장선인(元長禪人)에게 주는 글 (0) | 2016.03.18 |
원오심요 下 61. 무주도인(無住道人)에게 드리는 글 (0) | 2016.03.18 |
원오심요 下 60. 화엄거사(華嚴居士)에게 드리는 글 (0) | 2016.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