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2칙 달마의 확연함[達磨廓然]

쪽빛마루 2016. 3. 21. 05:43

제2칙

달마의 확연함[達磨廓然]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변화(卞和)*가 세 번 헌납했으나 형벌을 면치 못했고, 야광(夜光)을 사람들에게 던졌으나 칼을 휘두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다급한 나그네에겐 다급히 대접할 주인이 없으니 임시예법이 마땅할지언정 정통예법으로는 마땅치 않다. 갖가지 진기한 보배를 사용할 줄 모르기에 죽은 고양이를 들어보이노라.*

 

본칙

 드노라.

 

 양무제(梁武帝)가 달마(達磨)대사에게 묻되

 -첫새벽에 일어나서 장터에 나왔던 사람, 이익 본적 없더라.

 

 "어떤 것이 성스러운 말씀[聖諦]의 으뜸가는 진리[第一義]입니까?" 하니,

 -우선 둘째 것부터 물었어야 할 것을.

 

 달마가 대답하되

 "텅 비어 성(聖)이랄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배를 가르고 심장을 쪼개는구나

 

 황제가 다시 묻되 "짐(朕)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시오?" 하니,

 -콧구멍에서 어금니를 찾는구나.

 

 달마가 대답하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뒤통수에서 뺨을 보려고 하는구나.

 

 황제가 깨닫지 못하매

 -모난 나무토막은 둥근 구멍을 막지 못한다.

 

 마침내 강을 건너 소림(少林)에 이르러 9년 동안 벽을 향해 앉았다.

 -집안에 저축한 돈이 없으면 부자가 아니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반야다라(般若多羅)께서 일찍이 달마대사에게 유촉하시되 "내가 열반에 든 뒤 67년에 진단(震旦 : 중국)에 가서 크게 법약(法藥)을 베풀어 상근기에게 곧장 보일 것이나 행여라도 조급히 시행하다가 그날로 시들게 하지 말라" 하였다. 또 말하되 "네가 거기에 이르거든 남방에는 머물지 말라. 그들은 오직 유위의 공덕만을 좋아하여 불리(佛理)는 보지 못할 것이다. 네가 가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말라" 하였는데 과연 양(梁)나라를 거쳐 위(魏)나라로 가기 9년 동안 잠적하였던 일이 있다.

 근대에 자주(磁州)가 법[衣法]을 인산(人山)에게 전하려 하니 인산이 말하되

 "저는 그러한 사람이 못 됩니다' 하자, 자주가 말하되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재앙이 너에게 미치지는 않겠구나" 하였다. 이에 인산은 자주의 법을 베푸는 정[法乳情]이 깊은데 감동하여 절을 하고 받으니 자주가 다시 말하되 "그대가 이미 그렇게 하였으니, 무엇보다도 경솔하게 출세(出世 : 세상에 두각을 나타냄)하지 말라. 만일 조급하게 전진하거나 가볍게 나서면 중간에 반드시 수레가 막히는 화가 있으리라" 하였다. 이는 반야다라가 세 가지로 당부하고 달마가 9년 면벽한 것과 서로 같다 하겠다.

 삽계(霅溪, 益)가 송(頌)하되, "가을 서리 스쳐간 것을 애석히 말고 / 그저 자미(滋味)가 늘어나기만을 도모하노라 / 비록 생화를 꺾어다 놓았더라도 / 끝내 제 향취는 아닐 것이다" 하였으니 가히 후학[來者]들을 경계하는 말씀이라 하겠다. 만일 진정한[本色] 도인이라면 나서고 멈춤[出處]에 시절을 알아야 한다.

 양무제가 계합하지도 못하면서 질문을 던진 것은 기록에 남겨도 무방하거니와 요즘 제방(諸方)에서 개당(開堂)하고는 으레 백추하고 이르되 "법연(法筵)에 모인 용상(龍象)의 무리여, 마땅히 제일의(第一義)를 관하라" 하는데 그 제일의제라는 것은 관하기가 허용되는 것인가? 무제와 달마로 하여금 문답하기가 허용되는 것인가? 만송은 이르노니 "제일의제는 차치하고 그대들은 성스런 진리[聖諦]가 어떤 것이라 여기는가?" 하노라.

 천황(天皇)이 이르되 "다만 범부의 망정을 다할지언정 따로이 성스러운 견해란 없느니라" 하였고,

 「능엄경(楞嚴經)」에서는 이르되 "만일 성스럽다는 견해를 지으면 곧 뭇 삿됨을 받으리라" 하였다. 달마가 이르되 "확연히 성자가 없소이다" 한 것은 번갯빛 속에서 손으로 더듬고 눈으로 판단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어늘 양무제는 주춤주춤[頑涎] 물러설 줄 모르고 다시 묻되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시오?" 하였으니 양왕의 처지로서는 역시 좋은 마음이었기는 하나 달마의 처지로서는 얼굴에다 바싹 대고 침을 뱉아 준 것과 다름이 없어서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는 대답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전혀 몰랐다. 꽃철이 이미 흘러 갔는데 어찌 눈[雪]위에 서리를 더하는 꼴을 견딜수 있었으랴?

 달마는 그의 눈동자가 멀뚱멀뚱[定動]하는 것을 보자, 당장에 몸을 추슬러 딴 길로 가버렸으니 옛사람은 나서건, 멈추건, 침묵하건, 말하건 모두가 불사(佛事)였다.나중에 무제는 과연 일이 지난 뒤에 군자(君子)를 그리워하는 꼴이 되어 스스로가 그의 비문을 지었으니, "보고도 보지 못했고 / 만나고도 만나지 못했다. / 옛날이나 지금이나 / 뉘우쳐지고 한되는도다 / 짐은 비록 한낱 범부이지만 / 감히 사후[後]에라도 모시도다" 하였다.

 양무제가 몽진(蒙塵) 한 뒤, 달마가 다시 서쪽으로 돌아간 이래, 이 제일의제를 아무도 들추는 이가 없었는데 다행히 천동(天童)이 있어 대중을 위해 드러내었다.

 

송고

 

 "텅 비어 성(聖)이랄 것이 없소이다" 하니

 -물 한모금 마시고 딸꾹질 한 번 하는구나!

 

 "한마디 던진 기봉, 상식을 넘어섰네

 -얼굴 붉은 것이 말 곧은 것만 못하니라.

 

 얻은 이여, 코를 건드리지 않고 도끼를 휘두르고

 -좋은 솜씨를 가진 이가 좋은 솜씨를 자랑한다.

 

 잃은 이여, 시루를 떨어뜨리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이왕지사는 탓하지 않는 법

 

 요요(寥寥)하게 소림(少林)에 싸늘히 앉았으니

 -늙어서도 마음을 쉬지 않는도다.

 

 묵묵(默默)히 정령(正令)을 온전하게 떨치고

 -오히려 자기가 군사기밀을 누설하는구나.

 

 가을 밤 맑은데 달이 구르니 서리의 바퀼런가?

 -눈을 높이 뜨고 보라.

 

 은하 맑은데 북두가 드리우니 밤의 표주박이로다.

 -누가 감히 사용할런지

 

 끊임없이[繩繩] 의발을 자손에게 전하니

 -망상 떨지 말라.

 

이로부터 천하의 약과 병이 생겼도다.

-천자의 행차가 이미 지났음을 사자는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확연히 성자가 없소이다" 함에 "한마디 던진 기봉, 상식을 넘어섰네" 하였으니 이 말씀은 본래 「장자(莊子)」에 이르되 "크게 차이가 나서[逕庭]*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다" 한 것에서 나왔다.

 초조(初祖)가 그때 약간의 방편이 부족했으니 약이 아찔하지 않으면 그 병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시작할 때에 문득 벽력 같은 수단을 썼더라면 지금엔 벌써 사사로이 묻고 따르는 일이 멈춰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얻은 이여, 코를 건드리지 않고 도끼를 휘두른다" 하였다. 장자가 남의 장사[送葬]에 갔던 길에 혜자(惠子)의 묘를 지나다가 종자(從者)를 돌아보고 이르되 "영인(郢人)이 자기 코끝에다 진흙을 파리날개만치 발라놓고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깎아내라 하니 장석이 도끼를 휘두르는데 윙! 하고 바람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들리자 진흙이 깎여지는데 눈을 감고 손 가는 대로 맡겼으되 진흙은 몽땅 깎이고 코도 상하지 않았고 영인도 선 채로 까딱도 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부자(夫子 : 혜자)가 돌아가신 뒤에 나는 그 사실을 질문할 곳이 없느니라" 한데서 나온 이야기이다.

 "잃은 이여, 시루를 떨어뜨리고도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한 것은 후한(後漢) 때의 맹민(孟敏)이 태원(太原)에서 객지생활을 했는데 한번은 시루를 지고 가다가 땅에 떨어뜨리고도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곽임종(郭林宗)이 이를 보고 그 뜻을 물으니, 대답하되, "시루는 이미 깨어졌거늘 돌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였다. 임종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널리 유학(遊學)하기를 권고했다는 이야기이다.

 뜻은 무제가 스스로 알아들었더라면 달마도 자기를 굽혀 남을 따르지 말았어야 할 것이요, 무제가 만일 알아듣지 못했거든 소매를 털고 훌쩍 떠나야 한(恨)이 없었을 것인데 황금 대궐에서 체면을 무릅쓰고 겨우 반말씀쯤만 하더니 소림으로 가 9년 동안 입을 벽에 걸어 두고서야 비로소 여덟푼 쯤을 성취하였으니 마치 "가을 밤 맑은데 달이 구르니 서리의 바퀴 같다"는 것이다. 이는 법안(法眼)의 "서리내린 밤 휘영청 밝은 달이 스스럼없이 앞개울에 비쳤구나[到頭霜夜月 任運落前溪]"라 한 구절을 은근히 인용해서 진리가 극한 자리는 어떤 비유로도 견줄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은하 맑은데 북두가 드리우니 밤의 표주박이로다" 한 것은 천동(天童) 자신이 상당하여 이르되 "한 점의 고리에서 극미(極微)까지 / 지혜에 공용(功用)이 끊긴 자리에 / 도리어 지각[知]이 남아 있다 / 반연하는 생각이 다하여 다른 일 없으니 / 밤중의 은하에는 북두가 자루를 드리웠네" 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두 구절은 마치 벙어리가 어떤 사연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으나 말을 토해낼 수 없는 것 같으니 어찌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을 수가 있겠는가? 약과 병이 서로 싸우니 더욱 멀어질 뿐이다.

 어찌하여야 조사의 정령(정령)을 온전하게 제거(提擧)할 수 있을까? 허공꽃은 많은 거북털실을 써야 하거늘 석녀(石女)는 공연히 낭탕(䕞薚 : 실체가 없음)의 바늘만 들도다. 돌(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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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말(殷末) 주초(周初)에 있던 사람. 형산(荊山)에 갔다가 보석을 얻어 영왕(靈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모두 돌이라 꾸짖고 뒤꿈치를 끊는 벌을 주었는데, 문왕은 왕공(王工)에게 감정을 시켜 보물임을 확인하고 비로소 상을 주었다고 함. 그 유명한 연성지벽(連城之璧)이 생긴 고사.

* 전국(戰國) 때 축원창(祝元暢)이 제(齊) 나라로 가는 도중에 목에 가시가 걸린 뱀을 구제해 주었는데, 그날 밤 뱀이 숙소로 야광을 물고 왔으나, 축원창은 검을 빼들고 치려 했었다는 고사.

* 한 스님이 조산스님에게 묻기를 "어떤 물건이 가장 귀합니까? 하니 조산스님은 "죽은 고양이가 가장 귀하지" 하였다.

* 경(逕)은 좁은 길, 정(庭)은 넓은 뜰로서 차이가 심하다는 뜻. 상식을 초월했다는 뜻으로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