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칙
마조의 흑과 백[馬祖白黑]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입을 열 수 없을 때 혀없는 사람이 말을 할 줄 알고 다리를 들지 못하는 곳에 발없는 사람이 걸을 줄 안다. 그러나 그러한 거푸집 속에 떨어져 있거나 구절[句] 속에 죽어 있으면 어찌 자유로울 자격[分]이 있겠으며, 사방에서 산이 덮쳐올 때엔 어떻게 벗어나리요?
본칙
드노라.
어떤 승이 마조대사(馬祖大師)에게 묻되 "네 구절[四句]과 백 허물[百非]을 떠난 경지에서 저에게 서래의(西來意)를 곧바로 보요주소서" 하니,
-그 승이 물은 뜻을 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헛수고를 덜 수 있을까?
대사가 이르되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배 안엔 이미 달빛이 가득히 찼는데
지장(西堂智藏)에게 가서 물으라" 하셨다.
-다시 돛에 바람까지 곁들이는구나.
승이 지장에게 가서 물으니
-아차, 남의 장단에 놀아나는구나.
지장이 이르되 "어찌하여 큰스님께 여쭙지 않는가?" 하니,
-근본을 좋아하기로는 대체로 같구나.
승이 대답하되 "큰스님께서 이리 와서 물으라 하셨습니다" 하였다.
-매우 영리해서 좋구나.
지장이 이르되 "내가 오늘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해형(海兄 : 百丈懷海)에게 가서 물으라" 하였다.
-'나는 마조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승이 회해에게 가서 물으니
-쓴 오이는 뿌리까지 쓰니라.
회해가 이르되 "나는 그 문제에 관하여는 모르겠다" 하였다.
-단 참외는 뿌리까지 달도다.
승이 다시 마조대사께로 와서 이 사실을 고하니,
-짚신 값은 받아가지고 가야할걸…….
대사가 이르되 "지장의 머리는 희고[藏頭白] 회해의 머리는 검구나![海頭黑]" 하였다.
-다시 30년 더 참구하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6조께서 회양(懷讓)화상에게 이르되 "서천(西天) 27조가 예언한 바, '네 밑에서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서 천하 사람들을 모두 밟아 죽이리라' 하였는데 병통은 네 마음에 있으니 서둘러 발설하지 말라" 하였다.
나중에 벽돌을 갈고, 소를 때리고, 신기한 망아지가 마구에 드는 등의 일이 있어 마조(馬祖)라 부르게 되니 소 걸음, 범 눈짓에 혀를 뽑으면 코를 지나고 발바닥에는 둥근 바퀴무늬가 있었다. 그 법제자[法嗣]가 139인으로서 제각기 한 구역의 법주(法主)가 되었는데 지장과 해형이란 서당(西堂)과 백장(百丈)이다.
그 승의 동태를 살피건대 제법 불법을 배우는 사람이었던가? 네 구절과 백 허물을 떠난 도리를 가지고 교 밖에 따로이 전하는 종지[敎外別傳宗旨]를 가늠해보려고 했다.
「섭대승론(攝大乘論)」에 이르되 "있음[有]은 증익방(增益謗 : 덧붙이는 허물)이요, 없음[無]은 손감방(損減謗 : 줄이는 허물)이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함[亦有亦無]은 상위방(相違謗 : 서로 어긋나는 허물)이요,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님[非有非無]은 희론방(戱論謗 : 이랬다 저랬다 하는 허물)이다" 하였으니, 이 네 구절을 여의면 백 허물은 저절로 끊긴다.
황벽(黃蘗)이 이르되 "지름길로 곧장 알고자 한다면 일체가 모두 옳지 못하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려면 일체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하노라. 반복하여 생각컨대 네 구절을 여의지 않고 백 허물을 끊지 못했다해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왜 밝힐 수 없겠는가? 용수(龍樹)대사는 이르시되 "반야는 큰 불더미와 같아서 4면 어디로도 들어갈 수 없다" 하였고, 또 이르되 "반야는 서늘한 못과도 같아서 사면 어디로도 들어갈 수 있다" 하였다.
그 승이 말하기를 "네 구절을 여의고 백 허물을 떠나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장 말해 주시오" 하였는데, 제방에서는 "입을 틀어막는 질문이라" 하거니와, 마조는 서두르지 않고 이르되 " 내가 오늘 피로해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지장에게 가서 물어보라" 했으니 자기의 수고는 덜면서 그 승의 코끝을 꿰었다. 그 승이 남의 춤에 놀아나서 진짜로 물었으나 지장 또한 모의하지 않았으되 부합하는지라 "어찌하여 큰스님께 묻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 승이 눈이 트이지 않은 터라 "큰스님께서 이리 와서 물으라 하시었소" 하자, 지장이 "내 오늘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해형에게 가서 물으라" 하였으니, 과연 그 애비가 아니면 그 자식이 생길 수 없다"는 격이로다. 승이 회해에게 묻자 회해가 이르되 "내가 그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 하였으니, 속담에 후백(侯白) 뿐인 줄 알았는데 다시 후흑(侯黑)이 있구나라고 한 격이로다. 그 승이 비록 혈기는 없으나 예절은 있었던가? 마조께로 돌아와서 이 사실을 사뢰니, 마조자 이르되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구나!" 하였으니 이 한마디가 천하 사람을 의문의 구덩이로 몰아 넣어버렸다.
동림 조각(東林照覺)이 송하되 "백 허물 네 구절이 끊겨 말이 없으니 / 검고 흼이 분명하여 / 사와 정이 나뉘었도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조삼모사(朝三暮四)로 공연히 희로(喜怒)를 일삼는구나" 하노라.
어느날 이 세 사람이 남전(南泉)과 더불어 달 구경을 하였는데 마조가 이르되 "이럴 땐 어쩌면 좋을까?" 하니, 백장은 "수행을 하면 썩 좋겠다" 하였고, 지장은 이르되 "공양을 하면 썩 좋겠다" 하였는데 남전은 옷소매를 털고 떠나버렸다. 이에 마조가 이르되 "경은 지장에게로 돌아갔고 선은 회해에게로 돌아갔는데 오직 보원(普願 : 南泉)만이 홀로 세상 밖[物外]으로 뛰어났다" 하였다. 여기에 관하여 흑백을 분명히 가려야 되겠기에 만송은 이르노니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음이여 / 오리의 머리는 녹색이고 학의 머리는 붉도다 / 열 그림자의 신기로운 말[十影神駒]이 해남(海南)에 섰으니 / 오색의 상서로운 기린이 하늘 북쪽을 걷더라" 하노라.
제방에서는 무엇보다도 여우의 힘만은 빌리지 말라. 천동에게 원래 참 소식이 있느니라.
송고 |
약이 병 되는 일은
-오랑캐는 우유를 마시면서도 도리어 의원을 의심한다.
옛 성인에 본보기가 있으나
-스승들은 거의 들뜬 맥이 있거니…….
병이 의원 되는 법이야
-약으로 약을 내리고 독으로 독을 제거한다.
뉘라서 알리요?
-천동 자신이 아닐런지…….
흰 머리, 검은 머리여! 가문을 이을 아들들이요.
-같은 가마에서 구어낸 것이기에
있음의 구절과 없음의 구절이여! 무리들을 무색케 하는 기지[機]로다.
-위산(潙山)의 웃음이 더욱 새로워지게 하는구나!
당당히 혀끝을 눌러 앉히니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비야리의 늙은 선생[老古錐]을 비웃음직하여라.
-다만 한 개의 말뚝만을 얻었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네 구절[사句]이란 네 가지 비방이니 마치 큰 불더미 같아서 사방 어디로도 들어갈 수 없고, 네 구절이란 네 개의 문이니 마치 서늘한 못과 같아서 사방의 어디로도 들어갈 수 있다.
만송이 지난날 대명사(大明寺)에서 서기(書記) 소임을 할 적에 담자 형(潭柘亨)화상이 대명사를 지나셨다. 저녁에 문을 두드리고 시자에게 고하되 "향을 사르어 인연을 맺고자 한다" 하였더니 담자께서 쾌히 만나주셨다. 그때 만송이 묻되 "어떤 것이 산 구절[活句]이며 어떤 것이 죽은 구절[死句]입니까?" 하니, 화상이 대답하되 "서기야, 만일 깨달으면 죽은 구절도 산 구절이요 만일 깨닫지 못하였다면 산 구절도 죽은 구절이다" 하였다. 그때 속으로 생각하되 "노련한 작가(作家)의 수단은 끝내 다르구나!" 했었다.
오늘 그 승의 질문을 보건대 또렷또렷하게 네 구절을 여의고, 백 허물을 떠난 밖에서 따로이 조사의 뜻을 지적해내라 했는데 세 노장의 두뇌가 비슷했다. 만일 그들이 선뜻 네 구절을 떠나고 백 허물을 여읜다는 생각을 했었다면 그 승과 함께 한 구덩이에 쓸어묻혀 버려짐이 좋았을 것이다.
나중에 천동이 앙산(仰山)의 꿈 속에서 백추(白槌) 한 일*을 송하되 "네 구절을 여의고 백 허물을 여읨이여, 마사(馬師 : 馬祖) 부자(父子)의 병도 고치지 못했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이 무슨 심사[心行]인고?" 하노라.
"흰 머리, 검은 머리여, 가문을 이을 아들들이라" 하니 「주역(周易)」 몽괘(蒙卦)에 "92효에 아들이 가업을 이을 것[克家]이다" 하였으니 능히 가업을 떠메고 간다[荷]는 뜻이다.
"있음의 구절과 없음의 구절이여, 무리들을 무색케 하는 기지로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겨우 맑은 물의 잔물결이 있을 뿐 하늘에 솟구치는 파도는 아니라" 하노라.
"당당히 혀끝을 눌러 앉히니, 비야리성의 늙은 선생을 비웃어줌직도 하다" 하니 비야리는 범어인데 번역하면 광엄(廣嚴)으로서 유마거사가 살던 성이다.
문수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물었는데 유마가 잠자코 있었고, 그 승이 마사 부자에게 물었는데 갈등(葛藤 : 잔소리)이 온 천지를 뒤덮었다. 일러보라. 어디가 웃어주어야 할 곳인가? 다만 금상(今上)의 휘자(諱字)를 범하지만 않아도 전조(前朝)의 단설재(斷舌才)*보다 나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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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서 제1칙 참조.
* 수대(隋代) 하약필(賀若弼)의 부친 하숙(賀孰)이라는 사람이 우문호(宇文護)에게 미움을 사서 죽게 되었는데 처형장에 당도하여 그의 아들에게 "나는 혀 때문에 죽는다" 훈계하고 혀를 끊어 입조심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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