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칙
청원의 쌀값[淸源米價]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사제(闍提 : 수제태자의 이야기)가 살을 베어 어버이에게 공양했으나 효자전(孝子傳)에는 들지 못했으니, 조달(調達)이 산을 밀어 부처님을 억누를 때 어찌 갑자기 우짖는 우레를 두려워했으랴?
가시덤불도 다 지나고, 전단숲도 다 베어 넘긴 뒤, 해가 다하기를 기다렸으나 초봄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부처님의 법신이 어디 있을까?
본칙 |
드노라.
어떤 승(僧)이 청원에게 묻되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하니,
-낮은 관원이 법률 걱정을 많이 한다.
청원이 대답하되 "여릉(廬陵)의 쌀값이 얼마나 되던고?" 하였다.
-노련한 장수는 졸병의 죄를 논하지 않는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길주(吉州)의 청원행사(淸源行思)선사가 처음으로 6조에게 참문(參問)하여 문득 묻되 "무엇에 힘써야 계급(堦級)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니, 6조가 도리어 묻되 "너는 일찍이 무엇을 했었느냐?" 하였다. 청원이 대답하되 "성스러운 말씀[聖諦]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6조가 다시 묻되 "어떤 계급에 떨어졌었느냐?" 하였다. 이에 청원이 대답하되 "성스러운 말씀도 하지 않았거늘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하니, 6조가 매우 갸륵히 여겨 회중에 아무리 대중이 많아도 선사를 항상 우두머리에 있게하였다. 이는 마치 2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소림(少林)은 그에게 골수를 얻었다[得髓]고 한 것과도 같다 하리로다.
그 승이 불법의 대의를 물은 것을 보건대 진짜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온 납자답게 문수를 따라서 철위산(鐵圍山)을 구경하려 했지만 청원은 과연 성스러운 진리도 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도리어 예사로이 접견하는 태도로 돌아보면서 이르되 "여릉의 쌀값이 얼마나 되는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르되 "여릉의 쌀값은 따질 바가 아니다" 하거니와, 이는 이미 곡[斛]과 말[斗]에 들어가서 팔러다닌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소리다. 이런 떼거리에 들지 않기를 바라거든 천동에게 물으라.
송고 |
태평세계의 치적(治績)은 형상이 없으니
-깃발 끝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촌노[野老]의 가풍은 지극히 순박하다.
-어찌 내가 여기에서 밭을 갈고 주먹밥을 먹는 멋에야 비기랴?
그저 시골 장단과 농주[社飮]만 있다면
-궁색한 도깨비들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됐군.
순(舜)의 덕, 요(堯)의 인(仁)이야 아랑곳 있으랴?
-비로소 충과 효가 이루어지는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당의 문종(文宗) 태화(太和) 6년(832)에 우승유(牛僧孺)가 재상이 되었는데 상(上)이 묻되 "천하가 언제쯤이나 태평하겠소?" 하니, 유가 대답하되 "태평은 형상이 없습니다. 지금 사이(四夷)가 침공하지 않고 백성이 흩어지지 않으니, 비록 지극한 치세는 아닐지라도 소강(小康)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만일 이 밖의 태평을 구하신다면 신의 힘으로는 미칠 바가 아니옵니다" 하고는 물러가서 여러 차례 사직을 주청하여 회남(淮南) 절도사(節度使)로 물러갔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이것이 이미 본보기가 되었다" 하노라. 그러므로 촌노의 가풍에는 격앙가를 부르면서 예악(禮樂)이나 문장(文章)은 도리어 유별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여릉의 쌀값은 깊고도 현묘한 것이어서 순덕과 요인의 순후한 바람에 저절로 감화하여 시골 풍류와 농가의 막걸리가 제자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밝은 달, 맑은 바람이 제각기 제 기능을 찾게 되었다 하리로다. 알겠는가?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가시다.)
'선림고경총서 > 종용록從容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용록 上 제7칙 약산이 법좌에 오름[藥山陞座] (0) | 2016.03.26 |
---|---|
종용록 上 제6칙 마조의 흑과 백[馬祖白黑] (0) | 2016.03.25 |
종용록 上 제4칙 세존이 땅을 가리키심[世尊指地] (0) | 2016.03.21 |
종용록 上 제3칙 동인도 왕이 조사를 청함[東印請祖] (0) | 2016.03.21 |
종용록 上 제2칙 달마의 확연함[達磨廓然] (0) | 201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