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9칙 남전이 고양이를 베다[南泉斬猫]

쪽빛마루 2016. 3. 28. 06:00

제9칙

남전이 고양이를 베다[南泉斬猫]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창해(滄海)를 걷어차서 뒤엎으니 온 누리에 먼지다 자욱하고 백운(白雲)을 할(喝)해서 흩으니 허공이 부숴지도다. 정법[正令]을 엄하게 행하여도 오히려 반만 들추는 것이니 대용(大用)이 완전히 나타나는 일은 어떻게 시설(施設)해야 할까?

 

본칙

 드노라.

 어느날 남전의 회상에서 동 · 서 양당의 대중이 고양이 때문에 싸움을 했다.

 -사람이 평안하면 말이 없고 물이 평평하면 흐르지 않는다.

 

 남전이 보자, 들어 올리고는 말하되 "바로 이르면 베지 않겠다" 하였으나,

 -누가 감히 칼날을 맞서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매

 -재앙이 닥치기를 기다리는가보지.

 

 고양이를 베어 두 토막으로 내었다.

 -뽑았던 칼을 다시 칼집에 넣을 수는 없었겠지!

 

 남전이 다시 이 사실을 들어 조주(趙州)에게 물었는데

 -다시 팔러 온 물건은 반 푼 값도 안 되지!

 

 조주가 얼른 짚신을 벗어 머리 위에 이고 나가버리니

 -그야말로 한 칼에 두 토막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남전이 이르되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겠구나!" 하였다.

 -마음이 기우니 모르는 결에 입이 기운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법운사(法雲寺)의 원통 수(圓通秀)선사는 두 승이 나란히 서서 토론하는 것을 보고, 주장자를 들고 곁에 가서 연거푸 두어 차례 구르고는 이르되 '한 조각의 업 바탕[業地]이로다' 하였는데, 하물며 양당의 우두머리가 고양이 때문에 싸움을 벌였거늘 남전은 화해를 권하지도 않고, 벌도 주지 않은 일이겠는가?

 본색(本色 : 진짜)의 도인은 본분(本分 : 정법)의 일로써 사람들을 위하는지라, 마침내 고양이를 들어올리고 이르기를 "바로 이르면 베지 않겠다" 하였으니, 이럴 때엔 시방세계의 유정과 무정이 일제히 남전의 손아귀에서 "살려달라"고 했어야 한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서서 두 손을 활짝 펴든지, 아니면 멱살을 확 쥐어세우고 구제할 수 있었으리라 감히 보증하겠거니와, 그 굴 속의 한 패거리 죽은 쥐떼들은 이미 조그마한 기백조차도 없었고, 남전도 이미 폈던 솜씨를 오므리지 못해서 정령이 끝까지 시행되게 하였다.

 요조상인(遼朝上人) 진(敐)은 「경심록(鏡心錄)」을 지어 꾸짖되 "남전의 무리는 살생을 방자로이 해서 죄를 지었다"하였고, 문수좌(文首座)는 「무진등(無盡燈)」을 지어서 잘못을 바로잡고 허점을 돕되 "옛날 책에는 손으로 베는 시늉을 했다고 되어 있다. 어찌 한 칼에 두 토막을 내어 유혈이 낭자하게야 했겠는가?" 하였다. 이렇게 옛사람을 비판한 두 가지 주장에서 문공의 죄는 무겁고, 진공의 죄는 가볍다 하겠으나 남전은 여전히 수고우(水牯牛 : 검은 암소)의 무리 속에서 득의양양하게 고개를 흔들고 꼬리를 휘두르고 있다.

 보지 못했는가? 불일(佛日) 선사가 대중과 더불어 차를 마시고 있다가 고양이가 오는 것을 보자 소매 속에 넣어두었던 비둘기[鵓鴿]를 꺼내서 던져주니, 고양이가 얼른 물고 달아났다. 이에 선사께서 말하되 "날쌔구나! 이것을 거짓으로 하는 헛된 작동이라고 하지는 못할 것 아니냐?" 하였다.

 남전은 곡조가 높으면 화답하는 이가 적을 것이라 생각하여 앞의 화두를 다시 들어 조주에게 물었는데 조주는 문득 신을 벗어서 머리 위에 얹고 나가 버렸으니, 과연 풍각장이와 노래장이가 어울렸고 음정과 박자가 맞아떨어졌다 하리로다.

 남전이 이르기를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겠구나" 했으니, 이러한 작용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겉으로 보기는 쉬운 법이니 그대들이 그저 수저를 집고 젓가락을 놀리는 동작에서 눈치챌 수만 있다면 고양이를 벤 것과 짚세기를 머리에 이고 간 일이 차이가 없다는 도리를 쉽게 알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보라. 천동은 별달리 어떠한 재주를 부렸던가를.

 

송고

 양당의 운수(雲水 : 납자)들 모두가 격분한데

 -사리를 따지는 데는 큰 소리가 필요치 않은 법

 

 왕노사(王老師 : 남전)의 재주는 사와 정을 가려냈네.

 -밝은 거울이 경대에 있으면서 물건이 오면 바로 비춘다.

 

 날 푸른 칼로 끊어 형상 모두 없애니

 -용왕의 바람이 꽤나 들었겠군.

 

 천고(千古)에 사람들로 하여금 작가(作家)임을 사랑케 했네.

 -어느 한 사람은 수긍치 않을 터인데…….

 

 이 도법이 아직은 멸망하지 않았는가?

 -죽은 고양이를 무엇에 쓸려고?

 

 속마음 아는 이가 진정 아름답구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적다는 것이지!

 

 산을 뚫고 바다를 가로지름이여! 대우(大禹) 홀로 존귀하고

 -공을 헛되이 베풀지 않았군.

 

 돌을 반죽하여 하늘을 꿰맴이여! 여와씨(女媧氏) 홀로 현명했다.

 -하나가 빠져도 안 된다.

 

 조주노장에게 딴 살림이 있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들어올려도 옳지 못한 것이 없다.

 

 짚신을 머리에 이니 비슷하게 맞았다.

 -우선 반쯤만 믿어보자!

 

 딴 종류로 왔건만 분명히 살펴냈으니

 -납자는 속이기 어렵다.

 

 순금은 모래에 섞이지 않기 때문이네.

 -참된 것은 멸망시키기 어렵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양당(兩堂)의 운수들 모두가 격분하여 지금껏 가라앉지 않았는데, 만일 천동이 남전의 예(例)를 회통하여 그 실마리를 징험해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용왕에 사(邪)와 정(正)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와 정이 분명해진 뒤엔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까? 날카로운 칼로 끊어서 한 구덩이에다 묻어버린다면 한꺼번에 공안(公案)을 모르는 무리를 끊어 제할 뿐 아니라 천고(千古)의 뒤까지 맑은 바람이 천지를 시원케 할 것이다.

 남전이 당시에 스승도 훌륭하고 제자도 강하여서 대중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문득 조주에게 들어 보인 것은 대중 가운데에도 사람이 있음을 보인 것이요, 조주가 짚신을 벗어 머리 위에 이고 나간 것은 과연 이 도법이 아직은 멸망하지 않았음이다. "속마음을 아는 이가 진정 아름답다" 함은 공자(孔子)가 이르되 "하늘이 아직은 이 문화를 죽이지 않으셨다" 하였으니 그 사제지간의 도가 부합되는 것을 보건대 노래와 박수가 걸맞는다는 말로도 비유할 길이 없을 정도이다.

 시법(謚法)에 이르기를 '샘의 근원이 흘러 퍼지는 것을 우(禹)라 한다' 하였고, 또 '왕위[禪]를 이어받아 공(功)을 이루는 것을 우라 한다'고도 하였다.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우공(禹貢)은 강을 인도하고 돌을 쌓아서 용문(龍門)에까지 이르렀다" 하였고, 「회남자(淮南子)」에 이르되 "공공씨(共工氏)의 군사가 너무나 흉포해서 요(堯)와 공을 겨루어 싸웠는데 요가 힘이 다하여 부주산(不周山)에 부딪쳐 죽으니 천주(天柱)가 그 때문에 부러졌다.

 여와씨가 5색의 돌을 녹여 하늘을 꿰맸다[天補]"고 하였고, 「열자(列子)」에 이르되 '음양이 법도를 잃은 것을 결(缺)이라 하고, 오상(五常)의 정(精)을 연마하는 것을 보(補)하 한다' 하였다.

 운개 본(雲蓋本)이 동산(洞山)화상께서 태수좌(泰首座)에게 "다과상[果棹]을 치워라' 한 화두를 염(拈)하고 이르되 "동산은 비록 허공을 쳐부수는 망치는 가지고 있으나 아직 깁고 꿰매는 바늘과 실은 가지지 못했다" 하였는데 남전은 마치 대우(大禹)가 산을 뚫고 바다를 가로지르듯 신통묘용을 드러냈고, 조주는 마치 여와씨가 돌을 녹여 하늘을 꿰매는 것같이 하여 화두를 원만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조주는 18세 때 이미 가산을 깨쳐 흩을 줄 알았거니와 얼마 만치의 살림이 남았기에 짚신을 머리에 이고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비슷할 뿐이니 아깝다[咄咄]. 갈 곳이 없구나. 왜 그런 행색을 지었을까? 하노라.

 보복 전(保福展)이 이르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짚신만 헤질뿐이다" 하였는데 남전은 높은 곳을 낮추고 낮은 데로 옮겨서 이르되 "그대가 만일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였으나, 취암 지(翠岩芝)가 이르되 "알량한 조주가 겨우 자신을 구제하기는 했으나 한 수를 놓쳐버렸다" 하였다.

 천동이 송하기를 "딴 종류로 왔건만 분명히 살피어 냈으니 순금은 모래에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이는 물을 따라 배를 미는 법만 알았을 뿐 바람을 거슬려서 귀[柁]를 잡는 법은 몰랐다.

 지금 그대들 한 무리가 몰려왔으나 고양이도 없거니와 어찌 강아지 싸움을 하겠는가?(주장자로 쫓아내는 시늉을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