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11칙 운문의 두 가지 병[雲門兩病]

쪽빛마루 2016. 3. 30. 07:03

제11칙

운문의 두 가지 병[雲門兩病]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몸없는 사람이 병을 앓고, 손없는 사람이 약을 짓고, 입없는 사람이 음식을 먹고, 감정없는 사람이 안락을 누린다. 일러보라. 고황(膏肓)의 병은 어떻게 다스릴꼬?

 

본칙

 드노라.

 운문(雲門) 대사가 이르되 "광명이 꿰뚫어 벗어나지 못함[光不透脫]은 두 가지 병이 있어서이니

 -입이 마르고 혀가 땡기는 것을 느끼겠지?

 

 모든 곳에 분명치 않아서 눈앞에 어떤 물건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 하나요,

 -대낮에 귀신을 보니 눈의 헛것이 아닐는지!

 

 모든 법이 공한 경지까지 꿰뚫어 이르렀어도 은은히 어떤 물건이 있는 듯이 여기는 것이 또 하나의 광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다.

 -벌써 가슴이 막혔는데 목구멍 막히는 꼴을 어찌 감당하랴?

 

 또 법신에도 두 가지 병통이 있으니,

 -재앙은 혼자 오지 않는다.

 

 법신의 경지에 이르렀으되 법집(法執)을 잊지 못해서 자기의 소견이 남은 채 법신 편에 떨어져 있는 것이 그 하나요,

 -사(邪)가 범접했을 뿐 아니라 조상의 혼신까지 붙었구나.

 

 설사 법신의 경지를 초월했더라도 놓아버리면 옳지 못하니,

 -병을 길러서 목숨을 상하게 되었구나!

 

 자세히 점검해보아 아무 기척이 없다 해도 그것 또한 병이니라" 하였다.

 -의원이 문 밖을 나서기도 전에 또 간질병이 발작했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월주(越周)의 건봉(乾峰)스님은 동산 오본(洞山悟本)의 법을 이었는데 운문이 두루 참문하러 다닐 때, 일찍이 이 분과 조산(曹山)과 소산(疎山)을 뵈온 적이 있었다.

 지금의 이 공안(公案)은 전부터 흘러온 근원이 있다. 어느 날 건봉이 대중에게 보이되 "법신(法身)에 세가지 병과 두 가지 광명이 있으니, 낱낱이 벗어나야 하거니와 위로 향하는 한구멍[向上一竅]이 있음을 다시 알아야 하느니라" 하였다. 이때 운문이 나서서 묻되 "암자[庵] 안의 사람은 어찌하여 암자 밖의 일을 알지 못합니까?" 하니 건봉이 깔깔대며 크게 웃었다. 운문이 다시 묻되 "여전히 학인이 의심하는 경지입니다" 하니, 건봉이 이르되 "그대는 지금 어떤 심사인가?" 하고 되물었다. 운문이 이르되 "화상께서 자세히 알게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니, 건봉이 대답하되 "그렇게만 하면 비로소 평온한 경지를 얻을 것이니라" 하매, 운문이 "예" 하고 긍정하였다.

 건봉은 이르기를 "법신에 세 가지 병이 있다" 하였고, 운문은 "법신에 두 가지 병이 있다" 하였는데 만송이 행각할 때에 보니, 제방에서 따지기를 "아직 이르지 못한 자는 달리고 이미 이른 자는 머물러 집착하고, 모두를 뛰어넘은 자는 의지할 곳이 없으니, 이것이 세 가지 병이라" 하더라.

 이제 여기에서 두 가지 병이라 한 것엔 아직 이르지 못한 자는 달린다는 것 하나가 빠지고, 나중의 두 가지 병은 분명히 크게 같다.

 불안(佛眼)화상은 이르되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이 그 하나요, 나귀를 다 타고서도 내리려 들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병이다" 하였으니, 이는 앞의 두 가지 병이 있고 나중의 한 가지 병이 없는 것이다. 종사(宗師 : 師家)들이 특별한 계기에 병에 맞추어 처방을 베푼 것이어서 제각기 방편을 드리웠으니 그 두 가지 광명이란 것과 광명을 벗어나지 못함에 두 가지 병이 있다고 한 것과는 별다른 차별이 없다.

 그리고  "모든 곳에 분명치 않으나 눈앞에 어떤 물건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 하나라" 한 것은 동산(洞山)이 이르되 "분명하게 얼굴을 마주보면 따로이 진짜 제모습이랄 게 없거늘 머리를 잃은 자가 그림자만을 헛보니 어쩌랴 / 만일에 천지를 판가름하는 눈을 갖추어서 / 면면히 털끝만치의 소루함도 없을 수 있다면 / 바야흐로 조그만치 상응한다 하리라" 한 것과 같다.

 또 이르기를 "모든 법이 공한 경지까지 꿰뚫어 이르렀어도 은은히 어떤 물건이 있는 듯이 여기는 것은 또 하나의 광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다" 한 것은 위산(潙山)이 이르되 "한 법도 가히 마음에 둘 것이 없더라도 소견은 아직 경계에 있다" 한 것과, 「능엄경(楞嚴經)」에 이르시되 "비록 견(見) · 문(聞) · 각(覺) · 지(知)를 모두 멸하고도 안으로 그윽하고 한가함[幽閑]만 지키는 것은 오히려 법진(法塵)의 아물거리는 그림자일 뿐이다" 한 것과, 남원 옹(南院顒)이 이르되 "내가 그때 등불 그림자 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한 것과, 같으니, 그러기에 "광명을 꿰뚫어 벗어나지 못했다" 하였다.

 동산[洞上]의 종풍에서는 '고요하면 죽은 물[死水]에 잠기고 움직이면 금시(今時 : 신훈)에 떨어지는 것을 두 가지 병이라 하는데 그대들이 다만 나가되 따라 응하지 않고 들어가되 공에 머무르지 않으며, 밖으로 잔가지를 찾지 않고 안으로 선정에 머무르지 않으면 자연히 세 가지 병과 두 가지 광명을 동시에 벗어나게 되리라.

 그러한 뒤에 벗어남과 벗어나지 못함을 한쪽으로 던져두고 자세히 점검해보아 아무 기척이 없다 해도 그것 또한 병이리니, 어찌하여야 안락할 수 있을까? 다시 천동에게 진맥[診候]을 청하자.

 

송고

 삼라만상이야 제멋대로 울퉁불퉁하지마는

 -그 소리를 들은들 어찌 그대에게 장애가 될 것이며, 그들을 안다 해도 원수는 되지 않는다.

 

 벗어남에는 방위가 없으되[無方] 눈동자가 가리우도다.

 -번개같은 몽둥이가 골타(榾桗 : 옛 병기의 일종)에 부딪치도다.

 

 그 문정(門庭)을 쓸어내는 데 누가 힘이 있더냐?

 -자취를 쓸면 흔적이 남고 숨기고자 하면 더욱 드러나도다.

 

 숨어사는 이의 가슴에 저절로 정감이 생기도다.

 -마음에 의혹을 일으키면 어둠의 귀신이 생긴다.

 

 거룻배가 시골 나루터에 누워 가을 푸르름에 잠겼는데

 -죽은 물에 잠겼군!

 

 노를 저어 갈꽃으로 들어가니 눈밭[雪]의 광명이 비추도다.

 -언덕에 머물러도 미혹한 사람이지!

 

 금빛 잉어를 낚은 늙은 어부는 저자로 갈 것을 생각했는가?

 -본래 이익을 도모했었지.

 

 표표히 일엽편주로 파도 위를 미끄러져 간다.

 -흐름을 따라 묘함을 얻었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스승께서 「법구경(法句經)」의 "삼라와 만상이 한 법에 의해 찍어내진 바이다" 한 것을 들고 이르셨다.

 한 법이 만상이고 만상이 한 법이어서 이 물건 그대로이지 딴 물건이 아니다. 울퉁불퉁하든 깔끔하든 그대로 두라. 묵밭에서는 잡초를 뽑지 않는 법이니 깨끗한 곳이 도리어 사람을 미혹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벗어남에는 방위가 없더라도 그것이 바로 눈동자를 가리우는 곳이 된다" 한 것이다.

 「원각경(圓覺經)」에 이르시되 "모든 허망한 마음도 쉬어 멸하지 않는다" 하였고, 동산(洞山)이 이르되 "신령한 싹과 상서로운 풀을 농부는 근심스러이 김을 맨다" 하였거니, 어찌 구태여 문정을 쓸어 모든 법을 비우려 하겠는가?

 운문이 이르기를 "모든 곳에 분명치 않으나 눈앞에 어떤 물건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 하나다" 하였으니, 이는 그대들로 하여금 허환한 경계를 제하고 허환한 마음을 멸한 뒤에 따로이 벗어날 곳을 찾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3조가 이르되 "6진(塵)이 나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각(正覺)과 같다" 하였고, 또 「원각경」에서는 "허환인 줄 알면 곧 여의는지라 방편을 지을 필요가 없고, 허환을 여의면 곧 깨닫는지라 또한 점차(漸次 : 순서)도 없다" 하였으니, 지음[作] · 그침[止] · 맡김[任] · 멸함[滅]이란 것이 마치 금강이 진흙장승의 등을 긁어 주는 격임을 보게 되리라.

 천동이 또 이르기를 "숨어 사는 이의 가슴에 저절로 정감이 생긴다" 한 것은 "은은히 어떤 물건이 있는 듯이 여긴다" 한 것을 송한 것이니, 이는 곧 「원각경」에서 "'나'를 남겨 두고 '나'를 깨달으면 가만히 이어지는 것이 목숨과 같다" 하여, 네 가지 병을 자세히 분별한 것이다.

 그러므로 보각(普覺)보살이 이르되 "대비하신 세존께서 선병(禪病)을 쾌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였다.

 "거룻배가 시골 나루터에 누워, 가을 푸르름에 잠겼다"한 것은 "법신의 경지에 이르렀으되……"란 부분을 송한 것이니 배가 맑은 못, 고요한 물에 매어졌기 때문이다.

 소산(疎山)은 법신을 말뚝[枯椿]이라 하였는데 이야말로 마귀 매는 말뚝[繋驢橛]이라 하겠다. 설사 배를 돌려서 운전한다 하여도 "노를 저어서 갈꽃으로 들어가니, 눈밭의 광명이 비추는 경지"를 면치 못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맑은 광명이 눈을 비추매 집에 가는 길잃은 사람 같고, 분명히 몸을 돌리나 역시 길잃은 지위에 떨어질 뿐이리니, 이는 "설사 법신의 경지를 초월했더라도 놓아버리면 옳지 못하니……" 한 것을 송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운문의 말도 다했고, 천동의 송도 끝났다. 그러한 뒤에야 운문의 의지(意旨)와 천동의 안목(眼目)을 보려고 해야 하나니, 여기가 바로 이해를 계산해볼 곳이다.

 어떤 것이 운문의 의지이겠는가? 그의 말을 보지 못했는가? "자세히 점검해보건대 무슨 기척이 있으리요? 하면 또한 병이다" 하였으니, 운문은 단지 병을 지적해내기만 하였고, 그 치료법은 말하지 않았다.

 어떤 것이 천동의 안목인가? 운문의 치료하는 방법을 읊되 "금빛 잉어를 낚은 늙은 어부는 저자로 갈 것을 생각했는가? 표표히 일엽편주로 파도 위를 미끄러져간다" 하였으니, 운문의 대의(大意)은 장터에 들어가서 팔을 드리우고 기다리되 풍파까지도 피하지 않으려는 데 있으니 이야말로 자기의 병을 제거한 뒤에야 다시 남의 병을 가엾이 여긴다 한 정명(淨名)의 마음이다. 알겠는가? 병이 많으니, 약의 성질을 짐작하고, 효험을 보고는 그 처방을 남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