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칙
임제의 눈 먼 나귀[臨濟瞎驢]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한결같이 남을 위하기에 자기를 잊어버리고, 법령을 다 시행하기에 백성이 없어짐을 관계치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모름지기 목침을 꺾어버리는 엄격한 수단을 쓰는 사람이라야 되겠거니와, (그런 이가) 임종길을 떠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꼬?
본칙 |
드노라.
임제(臨濟)가 열반에 들려 할 때, 삼성(三聖)에게 유촉하되
-노파가 죽음에 임하여 세 번 하직을 한다는데
"내가 죽은 뒤[還化後]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멸하지 않게 하라" 하니,
-무슨 기급한 짓인가?
삼성이 이르되 "어찌 감히 화상의 정법안장을 멸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거짓으로 고분고분한 자가 짐짓 배짱은 큰 법인데
임제가 이르되 "혹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꼬?" 하니,
-호랑이 입에다 웃통을 벗고 들이대는구나!
삼성이 얼른 할을 하매,
-기회를 만나면 아버지에게도 양보치 않는군.
임제가 말하되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나귀에 의해 멸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다?" 하였다.
-무거운 상을 주는 곳엔 반드시 용맹스러운 사나이가 나온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임제가 삼성(三聖)에게 유촉하되 "나의 정법안장을 멸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는 흥화(興化)가 극빈 유나(克賓維那)에게 이르되 "그대는 오래지 않아 창도사(唱導師 : 도법을 전함 또는 포교사)가 될 것이다. 벌전으로 대중 공양[罰饡飯]을 낸 뒤에 원(院)을 떠나라" 한 것과 기용(機用)이 똑같다 하겠다. 그러나 사실 이 일은 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더라도 더하지 않고 천 성인이 열반에 드신다 해도 줄지 않거니, 그 어찌 삼성(三聖) 따위 한 사람이 능히 멸망시킬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임종을 당하여 이 일을 드러내어 발표하고, 또 모임 가운데 사람이 있다는 것을 표시하려 했는데 과연 삼성이 나서서 이르되 "어찌 감히 화상의 정법안장을 멸하겠습니까?" 하였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꾸지람을 받았을 때 달게 여기지 않으면서 도리어 승복[承頭]한 것과 같다. 그때 문득 진짜 공부법[本分草料]을 주었더라면 정법안장이 이처럼 멸망하기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인데, 도리어 이르되 "갑자기 누군가가 그대에게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할꼬?" 하였으니,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아서 도리어 재앙을 부른 격이 되었다.
"삼성이 문득 할을 했다" 하니, 윗대[上代]와 아랫대[下世]를 통하여 종문 안에서 출세한 자 중에 3일 동안 귀먹은 자*가 있은 이래 지금의 그 할과 같은 것은 없었거늘, 임제는 이르되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나귀에 의해 멸망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하였으니, 그때 임제의 문풍에는 원래 정령(正令)이 있어왔거늘 아깝게도 놓쳐버렸다. 그렇다면 천동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송고 |
신의(信衣)를 밤중에 노능(盧能 : 혜능)에게 전하니,
-도적은 도적의 지혜를 가졌다.
황매산의 7백 대중이 수선을 떨었다.
-상량(上梁)이 바르지 못했군!*
임제의 한 가닥 정법안장을
-반쯤은 밝고 반쯤은 어둔 것들이 온전히 이참[今時]에 있구나.
눈먼 나귀가 멸해버리니 남의 미움을 사도다.
-마음은 단데 입은 쓰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이어짐이여,
-야미소금을 파는 첨지들.
조사와 조사가 법등을 전하도다.
-남의 벽을 뚫고 빛을 훔치는 짓.
바다와 산이 평평해짐이여,
-주먹으로 황학루를 쳐부수고 발길로는 앵무주를 차 뒤집으리라.
곤계[鵾]와 붕새[鵬]로 변화하도다.
-손을 뒤치면 구름이요 손을 엎치면 비로다.
이름과 말만으로는 짐작조차 어려우니
-아직도 조금 모자람이 흠이다.
진짜 수단은 허공에서 벅구놀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정법안장이 아직 있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황매(黃梅)가 남몰래 의발을 전한 지 20년에 남북이 분쟁을 하였고, 임제가 분명하게 전한 뒤 지금까지 알아듣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이러한 수단은 바로 곤어와 붕새의 변화요, 바다와 산의 평평함이라 하겠다.
대위 수(大潙秀)가 이르되 '옛사람이 죽음을 참아가면서 학자를 제접[待來]했는데 어찌하여 정법안장이 도리어 눈먼 노새에 의해 멸했을까?' 하였다. 임제는 임종길 떠날 계교가 졸속했고, 삼성 또한 전송이 소홀했다. 이로 인하여 부자(父子)의 정을 잃고 마침내는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실망케 하였으니, 만일 개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산불이 다시 다른 산으로 번질 뻔한 격이 되었다.
본록(本錄)에는 "삼성이 문득 절을 했다 하였으니, 좋은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요, 임제가 게송을 보이되 '흐름따라 머물지 않는 도리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 참된 관조는 끝없는 것이라 말해주리라 / 모양도 이름도 없어 사람들이 전해받을 수 없으니 / 취모검(吹毛劍)을 썼거든 빨리 걷어두어라'하고는 엄연(儼然)히 가셨다"고 되어 있는데 천동은 이 공안을 알맞는 곳에 이르러 문득 멈추었거늘, 삼성은 절을 하고 임제가 게송을 읊은 일은 지나쳐버렸거나 경솔히 놓친감이 없지 않다. 누군가가 옛사람의 숨통을 틔워줄 자가 있겠느냐? 험(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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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벽과 백장의 기연.
* '상량부정 하량(上梁不正下梁)' 즉 윗 대들보가 바르지 못해 아래의 대들보가 비뚤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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