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14칙 곽시자가 찻잔을 건네주다[廓侍過茶]

쪽빛마루 2016. 4. 1. 05:56

제14칙

곽시자가 찻잔을 건네주다[廓侍過茶]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탐색하는 간짓대[探竿]가 손에 있고, 그림자를 짓는 풀단[影草]이 몸을 따른다.* 때로는 무쇠로 솜뭉치를 싸기도 하고 때로는 비단으로 몽돌을 싸기도 한다. 굳센 것으로 부드러운 것을 결단낸다면 본래 옳은 것이지만 강한 자를 만났을 때 약해지는 일은 어떤 경우일까?

 

본칙

 드노라.

 곽시자(廓侍者)가 덕산에게 묻되 "옛부터의 성현들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하니,

 -그대의 콧구멍 속에 있느니라.

 

 덕산이 "무엇? 무엇?" 하였다.

 -날벼락은 귀 가릴 새도 없다.

 

 곽시자가 다시 말하되 "비룡마(飛龍馬)를 대령하랬는데 절름발이 자라말[跛鼇]이 나서는군요!" 하니,

 -살림이 부유하면 애기들이 귀엽게 보인다.

 

 덕산이 문득 그만두어버렸다.

 -요주(饒州) 사람은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다음날 덕산이 욕실에서 나오자 곽시자가 차를 달여다가 덕산에게 건네주니, 덕산이 곽시자의 등을 한 번 어루만져주었다.

 -판정해서 간짓대 위로 올려보내려는가?

 

 곽시자가 이르되 "저 노장이 이제야 비로소 반짝하는구나!" 하니,

 -엎어지는 수레마다 궤도가 같구나.

 

 덕산이 또 그만두어 버렸다.

 -범의 머리와 꼬리를 몽땅 거두었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덕산은 평소에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때리는 솜씨로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나무랬거늘 그 승[廓侍者]은 허물이 하늘을 덮는데도 어찌하여 도리어 놓쳐버렸는가? 소를 때리는 데는 채찍이 필요치 않고, 사람을 죽이는 데는 칼이 필요치 않은 줄을 전혀 몰랐도다. 몇 차례나 놓쳐버렸던가?

 노황룡(老黃龍)이 이르되 "덕산은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었으나 소리없이 편의(便宜)를 얻었는데 곽공(廓公)은 귀를 가리고 방울을 훔쳤으되 곁에서 보는 이가 추하게 여기는 것이야 어찌하랴" 하였다.

 만송은 이르노니 "어찌 방을 훔치는 일에 그치겠는가? 아홉길[九重]되는 연못 밑에서 여룡(驪龍)의 턱밑 여의주를 파낼때 때마침 용이 깊은 잠에 들었을지라도 용이 깨어나면 반드시 깨보숭이처럼 부서지리라" 하노라.

 대위 철(大潙喆)이 이르되 "만일 용문에 오르지 않으면 어찌 바다의 넓음을 알리요? 설사 파도가 천 길을 솟구치더라도 용왕은 뒤도 돌아보지 않음에야 어찌하리요?" 했으나 만송은 이르노니, "작은 고기[纖鱗] · 작은 조개[片甲]인들 괴이할 것이 못 된다" 하노라.

 불과(佛果)가 이르되 "덕산은 진짜 험악한 솜씨를 가진 스승이었던가? 그 승이 방망이[鉆鎚]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임을 보고는 그만두어버렸다" 하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옛사람이 사람을 대하고 기연에 임할 때 각각 방편이 있었다" 하리라. 덕산이 암두(岩頭)에게 이르기를 "너는 뒷날 내 머리에다 똥을 쌀 것이다" 했는데 암두는 뒷날 과연 이르기를 "알량한 덕산이여, 마지막 구절을 알지 못했다" 하였으니, 옛사람이 억눌렀다 부추겼다 하거나 놓아주었다 빼앗았다 함에 있어 어찌 득과 실, 승(勝)과 부(負)에 따라 구애되었겠는가?

 황룡과 대위는 그 개요만을 들추어냈거나와 다시 살펴보라. 천동은 더욱 깊고 세밀하게 송하였다.

 

송고

 마주 보면서 올 때에 작자(作者 : 눈 밝은 종사)는 아나니,

 -어두운 자는 깨닫지 못한다.

 

 그 도리는 돌 불[石火]과 번갯빛으로 더디다.

 -이미 신라(新羅 : 멀리)를 지나갔다.

 

 기회를 잃고 반격을 꾀하는 왕은 깊은 뜻이 있는데

 -병사를 매복시켜 전투를 익히누나.

 

 적을 속인 장수[李廣]는 멀리 생각함이 없다.

 -오랑캐의 뜰에 깊숙이 들어왔다.

 

 쏘면 반드시 맞나니

 -습관이 쌓여 익숙해졌군.

 

 다시 누구를 속이랴.

 -창자까지 움켜잡았군.

 

 뒤통수[腦後]에서 뺨[腮]을 보거니 사람들이 범접키 어렵고

 -일찍이 여러 번 뱀에 물렸다.

 

 눈썹 밑에 눈이 붙었으니 그는 편리하겠구나.

 -거짓으로 때리는 줄 모르는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부터의 성현들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하니 마치 마주보면서 크게 어긋난 것 같으나 덕산이 이르기를 "무엇? 무엇?" 하였으니, 덕산은 풀 단[影草] 속에 몸을 숨기고서 요안경(曜眼鏡)*을 드러낸 격이다.

 옛날에 일곱 현녀(賢女)가 시다림(屍多林)을 지나다가 한 여자가 이르되 "시체는 여기에 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하니 한 여자가 "무엇? 무엇?" 하매, 여자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모두가 도를 깨달아 하늘이 감동하여 꽃을 뿌려 공양하는 상서를 얻었다는데 덕산이 이 한 토막의 기연을 써서 길을 빌려 지나간 것이나 결코 그렇게 알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거기엔 돌 불과 번개 빛으로도 더디다" 하였다.

 덕산인들 어찌 시자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을 몰랐으리요마는 첩자[媒]를 놓아 소식[鴿]을 구하면서 본전에 집착해서 이익만을 도모했으니, 과연 그의 거푸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만송에게 묻되 "어디로 갔는가?" 한다면 야무지게 뺨을 때리면서 "여기에 있도다" 하여서 나는 용, 절름발이 자라로 하여금 목을 움츠리고 발굽을 감추게 할 것이며, 시자와 덕산으로 하여금 칼날을 거두고 혀가 굳어지게 하리라.

 덕산노장을 알아보려는가? 젊어서는 용과 뱀의 싸움까지 말린 적도 있건만 늘그막에는 도리어 아이들의 노래에까지 귀를 기울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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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를 잡을 때 간짓대에 풀단을 묶어 물에 띄워놓으면 그 그늘 밑으로 고기들이 유인된다. 선문에서는 이것으로 종사가 학인을 시험하는 일에 비유한다.

* 진시황이 가지고서 궁녀들의 사정(邪正)을 시험(試驗)하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