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칙
마곡이 석장을 떨치다[麻谷振錫]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고 흙을 쥐어서 금을 이룬다. 혀 위에 바람과 우레를 일으키고 눈썹 사이에 피묻은 칼날을 간직했다. 앉아서는 성공과 실패를 관망하고, 서서는 나고 죽는 모습을 징험한다. 일러보라. 이 무슨 삼매인고?
본칙 |
마곡(마谷)이 석장을 짚고 장경(章敬)에게 가서 선상(禪牀)을 세 바퀴 돌고는 석장을 한 번 굴러 세우고, 우뚝 섰으니,
-선(禪)이 있음을 자랑할 만하구나.
장경이 이르되 "옳다, 옳다" 하였다.
-우선 반쯤만 믿는다.
마곡이 또 남전(南泉)에게로 가서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석장을 한 번 굴러 세우고, 우뚝 섰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초왕(楚王)에게 옥돌을 바쳐보시지!
남전이 이르되 "틀렸다, 틀렸다" 하였다.
-역시 반만 믿어야 되겠군.
마곡이 이르되 "장경스님은 옳다 하는데 화상은 어찌하여 틀렸다 하십니까?" 하니,
-널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 격이군.
남전이 이르되 "장경은 옳지만 그대는 옳지 않으니
-눈 위에 서리를 더하는군!
이는 바람의 힘으로 움직여진 것이라 마침내는 무너질 것이다" 하였다.
-사람을 죽이려면 모름지기 피를 보아야지!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날에 앙산(仰山)이 중읍(中邑)에게 사계(謝戒)*하러 갔더니, 중읍이 선상(禪牀) 위에서 손뼉을 치면서 "아야, 아야!" 하거늘 앙산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오락가락하다가 다시 복판에 섰다. 그런 뒤에 사계를 하니, 중읍이 이르되 "어디에서 그런 삼매를 얻었는가?" 하매, 앙산이 대답하되 "조계(曹溪)의 탈인자(脫印子)에게서 배웠습니다" 하였다. 중읍이 다시 묻되 "그대는 조계의 삼매가 어떤 사람을 제접했다고 생각하느냐?" 하니, 앙산이 대답하되 "일숙각(一宿覺 : 永嘉大師)을 제접하였습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묻되 "화상께서는 어디서 이 삼매를 얻으셨습니까?" 하니, 중읍이 대답하되 "나는 마대사(馬大師)에게서 이 삼매를 얻었노라" 하였다.
포주(蒲州)의 마곡 보철(麻谷寶徹)선사는 흡사 영가(永嘉)가 육조를 처음 뵈었을 때 석장을 가졌던 것같이, 장경의 처소에 이르러서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석장을 들어 한 번 구르고 우뚝 섰으니, 조계의 탈인자에게서 배워온 것같이 했다. 이는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라 하는 것으로서 모든 삼매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기에 장경이 "옳다, 옳다"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 하노라.
승묵 광(勝默光)화상이 이르되 "옳다 해도 옳을 것이 없고, 그르다 해도 참으로 그름이 없나니, 옳음과 그름이 주체가 없어서 만 가지 선이 한 곳으로 돌아간다. 올빼미와 닭은 밤과 낮을 따라 공연히 갈라지거니와 나는 세 치짜리 혀가 없도다. 자라를 거북이라 부른다면 가섭(迦葉)이 긍정치 않겠지만 그렇다면 마음대로 눈썹을 찡그려보라"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근심이 많으면 빨리 늙는다" 하노라.
마곡은 제방에 다니면서 감정해주기를 바랐으니, 일찍이 충국사(忠國寺)에게 가서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석장을 굴러 세우자, 국사께서 이르되 "이미 그 정도 되었다면 무엇 때문에 나(貧道)를 보고자 하는가?" 하였다. 마곡이 다시 석장을 구르니, 국사께서 이르되 "이 여우 혼신[野狐精]아, 나가거라!" 하였다.
이렇게 주인과 손이 만나는 모습을 살피건대 비춤[照]도 있고 용(用)도 있으며, 머리도 있고 꼬리도 있건만 실은 익힌 습기를 잊지 못해서 습관처럼 나쁜 버릇이 발동하고 말았다.
다시 남전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석장을 떨치고 전과 같이 자리에 섰는데 남전이 도리어 "틀렸다, 틀렸다" 하였으니, 마치 진작부터 장경과 더불어 입을 맞추어온 것[厮計會來]과도 같게 되었다.
대위 철(大潙喆)이 이르되 "장경이 옳다고 하였으나 마곡의 함정 속에 빠졌고, 남전이 틀렸다고 했으나 역시 마곡의 함정에 떨어졌다. 대위는 그러지 않으리니 갑자기 어떤 사람이 석장을 가지고 와서 선상을 세 번 돌고 우뚝 섰거든 그에게 이르기를 '여기에 이르기 전에 벌써 30방망이를 주었어야 했을 것이다'고만 해줄 것이다" 하였으나, 만송을 이르노니 "입으로만 인사(人事)를 행할 것이 아니라 문득 때려주었어야 할 것이다" 하노라.
마곡이 이르되 "장경은 옳다고 했는데 화상은 어찌하여 틀렸다 하십니까?" 하였으니, 그렇게 의심하는 것도 무방하겠으나 남전이 이르되 "장경은 옳으나 너는 옳지 못하다" 했으니, 상황을 보아 동작하였고, 벼랑에 임해서 사람을 밀었다 하리라.
원통 선(圓通善)국사가 이르되 "마곡은 옳고 남전은 틀렸다" 하니, 이 말은 다음의 이야기와 같다. 마치 등봉(鄧峰) 영암주(永庵主)가 심기(審寄)라는 승에게 묻기를 "그대가 오랜 동안 보이지 않았으니 무엇을 했던가?" 하니, 심기가 대답하되 "요즘 위장주(偉藏主)를 만났는데 퍽 안락한 바가 있었습니다" 하였다. 영암주가 이르되 "시험삼아 나에게 이야기해보라" 하니, 심기가 자기의 얻은 바를 진술했다. 이에 영암주가 이르되 "그대는 옳았지만 위장주는 틀렸다" 하니, 심기가 헤아리지 못하고, 돌아가서 위장주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위장주가 크게 웃으면서 이르되 "그대는 틀리고 영암주는 틀리지 않았다" 하였다.
심기가 달려가서 적취(積翠)의 남선사(南禪師)에게 물으니, 남선사도 크게 웃었다. 영암주가 이 소식을 전해듣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밝음과 어둠이 뒤섞인 / 죽이고 살리는 기개여! / 큰 사람의 경계런가 / 보현이나 알리로다 / 같은 가지에 태어났으되 / 같은 가지에 죽지는 않으니 / 암자 안의 노장[老古錐]을 / 웃다가 쓰러지게 하도다" 각범(覺範)이 이르되 "그 말의 자취를 보건대 그 당시의 법희(法喜)를 누리는 유희의 초탈한 운취를 상상해 볼 수 있도다" 하였으나, 만송은 이르노니 "마곡과 장경과 남전의 흥(興)도 또한 얕지 않으니 만일 '이는 바람의 힘으로 움직여진 것이라 마침내는 무너질 것이다' 한 말을 들었다면 더욱 좋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노라.
그 왕노사(王老師)는 건곤을 꽉 틀어쥘 뿐 아니라 겸하여 몸을 빼내는 길도 있으니, 보녕 용(保寧勇)화상이 송하되 "얼굴빛과 규모는 흡사 참된 듯하나 / 사람들 앞에서는 월광(越光 : 광채)을 염롱(拈弄)함이 새롭다 할지라도 / 불에 넣어 다시 한 번 단련함에 이르러선 / 마침내 가짜 은으로 돌아갔도다" 하였으니, 마곡이 여기에 이르러서는 와해빙소(瓦解氷消)를 면치 못했도다. 만일 얼음 강에서 불꽃이 일고, 무쇠 나무에 꽃이 피기를 요한다면 모름지기 천동이 따로이 한 말씀 한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송고 |
옳다기도 하고 옳지 않다기도 함이여,
-허리 잘록한 북은 양쪽으로 치는 법이니
함정[棬樻]을 잘 살펴야 할 것이요,
-가시가 그 속에 들어 있도다!
억누르는 듯 추켜세우는 듯함이여,
-손으로 털고 손으로 누른다.
형이라 하기도, 아우라 하기도 모두 어렵다.
-머리를 높이기도 하고 머리를 낮추기도 한다.
풀어줌[縱]이여, 그가 이미 때에 임했는데
-손을 뒤치면 구름이 일고
억누름[奪]이여, 낸들 어찌 유별나리요?
-손을 엎치면 비가 내린다.
금 석장을 한번 떨칠 땐 매우 당당[孤標]하더니,
-티끌을 벗어나고 세속을 여의었다.
선상을 세 바퀴 도는 것은 부질없는 장난일세.
-걸음을 걷는데 팔이 흔들린다.
총림에 요란스레 시비가 생기니
-난쟁이가 굿 구경을 하도다!
공상하면 해골 바가지[髑髏]에서 귀신을 본다.
-집에 백택(白澤)의 그림이 있으니 반드시 그러한 요괴는 없을 터인데.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이 공안(公案)은 완전히 옳으냐 그르냐에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모두가 말하되 "마곡이 장경과 남전의 조롱을 받았다" 하거니와 오직 대위 철만은 이르되 "장경이 옳다고 했으나 마곡의 함정에 빠졌고, 남전이 옳지 못하다 했으나 역시 마곡의 함정에 빠졌다" 하였으니, 마치 금강보배가 햇살에 놓였을 때, 광채가 일정치 않은 것과 같다.
천동이 이르되 "함정[棬樻]을 잘 살펴야 한다" 하였으니, 마곡이 함정에 빠졌는가, 남전이 함정에 빠졌는가? 억누르는 것 같기도 하고 추켜세우는 것 같기도 하여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아우라 하기도 어렵다.
천동의 말을 얼핏 보건대 억누르는 것 같기도 하고, 추켜세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피건대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아우라 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동한(東漢) 때의 진원방(陳元方)의 아들 장문(長文)은 진군(陳群)이라 불렀는데 계방(季方)의 아들 효광(孝光)과 더불어 제각기 그 아버지의 공을 자랑하다가 다툼을 결단치 못하여 태구(太丘)에게 가서 판단을 구했으니, 태구의 이름은 진식(陳寔)으로서 원방과 계방의 아버지였다.
이때 태구가 대답하되 "원방은 형이라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라기 어렵다" 하였으니, 이는 장경은 왼쪽 눈이 반 근이요, 남전은 오른쪽 눈이 여덟 냥이라는 말이 된다.
"금 석장을 한번 떨칠 땐 매우 도도하다" 한 것은 영가(永嘉)의 「증도경(證道經 : 증도가)」에도 이르되 "형상만 표현키 위해 헛되이 가진 것이 아니라, 여래의 보배로운 지팡이 자취를 친히 따르려는 것이다" 한 것과 같다. 설두(雪竇)가 이르되 "옛사람의 시책이 격조가 높아 열두 문이니, 문마다 길이 있어 공연히 소슬하다" 하였고, 「석장경(錫杖經)」에 이르되 "열두 고리가 있는 것은 12인연을 염(念)해서 12문의 선을 닦기 위함이다" 하였으니 12인연은 알기 쉽거니와 12문의 선이란 4선(四禪) · 4무량(四無量) · 4무색정(四無色定)을 이름이니, 옛 시책이 격조가 높다는 것이 곧 "매우 도도하다[太孤標]"에 해당한다.
육조께서도 이르시되 "대저 사문은 반드시 3천 위의(威儀)와 8만 세행(細行)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큰 아만을 내는가?" 하였는데 천동이 이른 뜻은 겉모양을 표방키 위한 것도 아니요, 또한 아만도 아니어서 승상을 세 바퀴 돈 것은 그저 공연한 장난이 되었다는 것이다.
장경은 옳다 하고 남전은 옳지 못하다 하여 총림이 온통 시비 속으로 말려들었으니, 만일 건곤을 꽉 잡아 좌정시키는 안목이 아니면 모두가 해골 바가지 앞에서 낮도깨비나 보게 된다는 것이다.
보지 못했는가? 어떤 승이 구봉(九峰)에게 묻되 "어떤 것이 건곤을 꽉 잡아 좌정시키는 눈입니까?" 하니 구봉이 대답하되 "건곤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니라"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건곤의 눈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구봉이 대답하되 "바로 그것이 건곤의 눈이다"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그러면 아까는 왜 건곤이 그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까?" 하니, "만일 그렇지 않거든 해골바가지 앞에서 무수한 도깨비를 볼 것이다" 하였거니와, 만송의 여기에는 주술사[禁師]가 있느니라 하고는 주장자를 한번 굴러 세우고 이르되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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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계를 감사하는 의식.
* 원래는 관청에서 띄우는 급한 공문으로, 빨리 명령대로 시행하라는 뜻. 후에 도교에서 신장을 부려 사악한 귀신을 쫓는 주문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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