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칙
지장의 친절[地藏親切]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진리 속에 들어가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셋이라 해도 넷이라 해도 무방하고 장안(長安)의 큰 거리는 가로로 가도, 세로로 가도 걸림이 없다. 홀연히 입을 열어 그 도리를 설파해버리고 발걸음을 들어 보다 높이 디딜 수 있어야 비로소 걸망과 발우를 높이 얹어두고 주장자를 꺾어버릴 수 있으리라. 일러보라. 그는 어떤 사람이던가?
본칙 |
드노라.
지장(地藏)이 법안(法眼)에게 묻되 "상좌(上座)는 어디로 가려는가?" 하니,
-공연한 사람을 얽어넣어서 무엇하려는고?
법안이 대답하되 "이리저리 행각(行脚)을 하렵니다" 하였다.
-짚신값이나 달라고 할 일이지.
지장이 묻되 "행각의 일(방법)이 어떻지?" 하니,
-과연 놓치지 않는구먼!
법안이 대답하되 "모릅니다" 하였다.
-어째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
이에 지장이 말하되 "모르는 그것이 가장 친절(가까움)하니라" 하매,
-들렀던 김에 날강도질을 하는구나!
법안이 활짝 크게 깨달았다.
-헛되이 노자만 낭비했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양무위(楊無爲)가 부용 해(芙蓉楷)화상에게 묻되 "헤어진지가 몇 해이던고?" 하니, 부용이 대답하되 "7년입니다" 하였다. 공이 다시 묻되 "도를 배우셨소? 아니면 참선을 하셨소?" 하니, 부용이 대답하되 "그러한 풍각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공이 다시 말하되 "그렇다면 공연히 산천을 돌아다닌 것이니, 전혀 이익이 없겠군!" 하니, 부용이 대꾸하되 "헤어진지가 오래지 않은지라 잘도 꿰뚫어보십니다" 하니, 공이 크게 웃었다.
남전(南泉)이 이르되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한 것이 아니니, 안다면 허망한 느낌일 것이요, 모른다면 무감각[無記]일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그것이 가장 친절하다는 말에 법안이 깨달은 것만을 보고는 문득 한결같이 생각하기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그대로가 옳다"고 여기나니, 옛사람의 한 말씀은 하늘이 두루 덮듯, 땅이 두루 받들듯함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가장 친절하다는 도리를 알지 못하니, 하택(荷澤)이 이르되 "안다는[知] 한 글자가 뭇 묘함의 문호라"고 한 것은 또 어찌하겠는가? 그대들은 그저 옳다면 몽땅 옳다고 여기거니와 옳다는 함정에도 빠져 있지 말아야 하고, 그르다면 몽땅 그르다고 여기거니와 그르다는 함정에도 빠져 있지 말아야 한다. 5위(五位)의 정(正)과 편(偏)을 겸하여 통했다면 어찌 말 구절[句] 밑에 죽어 엎드려 있겠는가?
법안이 깨달은 그곳이란 벌레 먹은 나뭇잎이 우연히 글자를 이룬 것과 같았을 뿐이니, 백산 대은(柏山大隱)화상이 이르되 "재앙으로 인하여 복을 이루는 묘는 지장이 사람을 제접하는 수단에 있으니 요점[鉤]은 의심하지 않게 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던져진 낚시에 법안이 활짝 깨달았으나 원래가 그 경지에 있었다" 하였다.
자주(磁州)노사가 이르되 "그대들이 오직 다닐 때나 앉았을 때나 딴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용맹스럽게 화두를 들어 재빨리 보아버리면 이는 곧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것이 되거니와, 일단 한쪽으로 밀어두고 그저 그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쉰다 해도 참선공부에 걸리지 않고 참구해 배운다 해도 쉼에 걸리지 않으리라" 하였다.
투자 청(投子靑) 화상은 이르되 "마치 금룡(金龍)이 물을 잃으니, 가루라[妙翅]가 황급히 채가듯, 지장은 시절인연에서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다" 하였는데, 천동은 붓 끝에 혀가 있어, 다시 늘어놓는구나!
송고 |
지금껏 흡족히 참구함이 옛시절 같으나
-내가 옛사람 같으나 옛사람은 아니다.
실밥 같은 티마저 벗어나 모르기에[不知]에 이르렀다.
-아직도 그런 것이 있는가.
짧건 길건 맡겨두어 재단질을 말 것이요
-헛수고를 했구나!
높건 낮건 인연따라 스스로 평평해지게 하라.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구나.
가문(家門)의 풍요와 검소는 형편에 따르고
-염초(鹽醋)야 빠질 수 없을 터이지.
고향길[田地]을 거닐음에는 발걸음에 맡긴다.
-다니고 싶으면 곧 다닌다.
30년 전부터 행각한 일이여.
-헤아려 생각할 길이 없다.
분명히 한 쌍의 눈썹을 저버렸도다.
-여전히 눈 위에 있는데.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종경(宗鏡)이 이르되 "종전에는 깨달음을 미혹해서 미혹한 듯하였고, 오늘에는 미혹을 깨달았으나 또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깨닫고 나면 도리어 깨닫기 전의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다" 하였는데, 지장이 물었을 때 길 떠나는 도리를 알아야 하고 법안이 대답한 것 또한 겸양으로 양보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장이 내친 김에 한마디 던지기를 "모르는 것이 가장 친절하다" 하매 법안은 원래 모르는 그것이 도리어 친절한 줄을 크게 깨달은 것이다.
임제(臨濟)가 낙포(洛浦)에게 묻되 "어디서 오는가?" 하니, 낙포가 대답하되 "난성(欒城)에서 옵니다" 하였다. 임제가 다시 묻되 "알아볼 일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는가?" 하니, 낙포가 대답하되 "모릅니다" 하매, 임제가 말하되 "대당국(大唐國) 전체를 부숴도 진정 모르는 자를 구하기란 어렵구나!" 하였다. 임제는 항상 살인도(殺人刀)를 쓰고, 또 활인검(活人劍)도 곁들였으나 지장의 "사람을 죽이려면 피를 보아야 되고 남을 도우려면 끝까지 도와야 한다는" 자세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진실의 본체가 아득히 뛰어났으니 반드시 가느다란 실밥마저도 벗어나야만 비로소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위산(潙山)이 논을 일구는 운력[普請]을 붙였는데 앙산(仰山)이 묻되 "여기는 이렇게 낮고, 저기는 저렇게 높습니다" 하니, 위산이 말하되 "물이 능히 모든 물건을 평평케 하니, 물로써 고르라" 하였다. 앙산이 이르되 "물에도 기준이 없으니, 화상께서는 높은 곳은 높게 고르고 낮은 데는 낮게 고르소서" 하니, 위산이 옳게 여겼다.
조공(肇公)은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에서 이르되 "모든 법이 다르지 않다 하여 어찌 오리의 다리를 잇고 학의 다리를 자르고, 산을 뭉개고 구덩이를 메운 뒤에야 차이가 없다고 하겠는가?" 하였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짧건 길건 맡겨두어 재단질을 말 것이고, 높건 낮건 인연따라 스스로 평평하게 하라" 하였다.
장무진(張無盡)이 이르되 "만 가지 기준으로 공부를 쌓아 모든 일에 수순하게 되니, 좋은 방편이 이루어졌다" 하였으니, 이렇게 해서 입에 맡기어 말하고 손에 맡기어 사용하고 다리에 맡기어 걸으면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잎이 떨어지는 뜻을 알리니 이렇게만 안다면 무슨 노새 걸음 같은 행각이 필요하랴? 그러기에 현사(玄沙)가 영(嶺)을 나온 적이 없고, 보수(保壽)는 강을 건넌 적이 없고 문을 나선 적이 없는데도 천하의 일을 알았다.
각범(覺範)이 송하되 "하나의 얼굴이 접시 크기 같은데 / 눈 · 귀 · 코 · 혀가 그 안에 진을 쳤다 / 해골 속의 경지는 전혀 알지 못하면서 / 그대 밖으로 다투어 반연[捏怪]하도록 허용하누나" 하였다.
입이 코에게 묻기를 먹고 마시는 일도 내가 하고, 말도 내가 하는데 그대는 무슨 공이 있어 내 위에 있는가? 하니, 코가 응수하되 "5악(五嶽) 가운데 중악(中嶽)이 존귀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그러자 다시 눈에게 묻기를 "그대는 무슨 공이 있어서 내 위에 있는가?" 하니, 눈이 대답하기를 "나는 일월(日月)과 같아서 비추고 밝히는 공이 있다" 하였다. 또한 눈썹에게 묻되 "무슨 공이 있어 내 위에 있는가?" 하니, 눈썹이 대답하기를 "나는 공이 없는데도 위에 있는 것이 부끄럽다. 만일 나를 아래에 있게 한다면 눈이 눈썹 위에 있을 터이니 그대 보라. 어떤 몰골이 되겠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보월(寶月)선사가 상당하여 이르되 "옛 어른이 이르기를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는다' 하거니와 일러보라. 눈썹은 무엇을 한다 하겠는가?" 하고, 양구했다가 이르되 "근심스러울 땐 함께 걱정하고 즐거울 때엔 함께 즐긴다. 사람들은 모두가 작용있는 작용은 알되 작용없는 큰 작용은 알지 못하는구나. 일러보라. 빈두로(賓頭盧)존자가 두 손으로 눈썹을 쥐어뽑은 뜻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이어 눈썹을 뽑고는 이르되 "고양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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