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31칙 운문의 노주[雲門露柱]

쪽빛마루 2016. 4. 11. 06:01

제31칙

운문의 노주[雲門露柱]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뒤로 향하는 한 기틀은 학이 창공으로 치솟듯 하고, 양지 바르게 트인 한길은 새매가 신라를 지나듯 했다. 설사 눈길이 유성(流星) 같더라도 입이 짐바구니 같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일러보라. 이 무슨 종지런가?

 

본칙

  드노라.

 운문(雲門)이 대중에게 이르되 "옛 부처님과 노주(露柱)가 한판 붙었으니, 이는 몇 번째 마당[機]인가?" 하니,

 -일곱째에 떨어지고 여덟째에 떨어져버렸다.

 

 대중이 말이 없으매

 -도리어 노주와 더불어 동참했구나.

 

 스스로 대신 말하되 "남산에 구름이 이니, 북산에 비가 내리도다" 하였다.

 -장영감이 술을 먹는데 이영감이 술에 취하도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본록(本錄)에 실린 바에 의하건대 운문이 승에게 묻되 "옛 부처님과 노주가 한판 붙었으니, 이는 몇 번째 마당인가?" 하니, 승이 대답이 없었다. 운문이 다시 이르되 "그대가 나에게 물으라. 내가 대답해주리라" 해서, 승이 물으니, 운문이 대답하되 "실 한 타래에 30푼[文]이니라"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실 한 타래에 30푼이란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운문이 이르되 "한판 붙어버렸구나" 하고는, 앞의 말을 대신 이르되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하였다.

 이는 갈고(羯鼓)와 노래를 잘 하던 당나라 때 송개부(宋開府) 경(璟)이라는 이가 이르되 "남산에 구름이 이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한 것을 빌려 쓴 것인데, 이는 흡사 관세음보살이 돈을 가지고 와서 호떡[餬餠]을 샀으나 손을 터니 원래가 만두(饅頭)였다는 것과도 같고, 또 목주(睦州)가 기봉(機鋒)으로 "잔(盞)을 땅에 떨어뜨리면 접시가 일곱 조각이 된다" 한 것과 꼭같거니, 어찌 주석이나 설명을 용납하겠는가?

 천동은 능히 주석할 수 없는 자리에 주석을 내고, 설명할 수 없는 자리에 설명을 했다.

 

송고

 한 가닥의 신기로운 광채여!

 -위로는 하늘을 버티었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었다.

 

 애초부터 덮거나 숨길 수 없나니,

 -붉어서 벗은 듯하고 맑아서 씻은 듯하다.

 

 견연(見緣을 초월한지라 옳되 옳은 바가 없고

 -거센 불길 속에 눈만 껌벅이지 말고

 

 정량(情量)에서 벗어난지라 마땅하되 마땅함이 없도다.

 -칼날 회오리 밖에서 고개를 돌리지 말라.

 

 벼랑의 꽃가루여, 벌통에 꿀이 만들어지고

 -신통이 광대하고

 

 들풀의 자양분이여, 사향 배꼽에 향기가 싹트도다.

 -변화가 무궁하도다.

 

 근기에 따라 석 자로도, 열여섯 자로도 나투심이여,

 -뒷산은 높고 앞산은 낮으며, 주장자는 길고 불자는 짧다.

 

 분명하여 어디서나 당당하게 드러난다.

 -얼굴을 문질러 깨트리니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도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운문이 이르되 "사람마다 모두가 큰 광명을 가지고 있으나 볼 때에는 보이지 않고 어두움만 자욱하다" 하였고, 또 이르되 "허공으로도 다 싸지 못하고, 땅으로도 다 싣지 못한다" 하였다. 「능엄경」에는 이르시되 "이 견(見)과 견연(見緣)이 원래가 보리의 묘하고 밝은 본체이거늘 어찌 그 가운데 옳다 그르다 함이 있을 수 있으리요?" 하였다. 조공(肇公)의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에 이르되 "대저 마땅함이 없으면 어떤 사물에도 마땅치 않음이 없을 것이요, 옳음이 없으면 어떤 사물에도 옳지 않음이 없으리니 사물에 옳지 않음이 없으므로 옳되 옳지 못하고, 사물에 마땅치 않음이 없으므로 마땅하되 마땅함이 없다" 하였고, 경에 이르시되 "모든 법을 끝까지 보았으되 본 바가 없다" 하였다. 이 송은 겉보기에는 한 경과 한 논에 의하였음을 밝혔으나 속으로는 망정과 소견을 초월하여 사람과 경계가 사귀어 섞이는 도리를 암시한 것이니 옛 부처가 이미 노주와 한판 붙었다면 자연히 남산에 구름이 이니 북산에 비가 내릴 것이다. 벌은 꽃을 따다 꿀을 만들고, 사향노루는 풀을 뜯어먹고 사향을 이루나니 높고 낮은 산과 물이 함께 근본법륜을 굴릴 것이며, 크고 작은 물고기와 들짐승들이 두루 색신의 삼매를 나타낼 것이다.

 구시라(劬尸羅) 장자는 석 자를 보되 다함이 없었고 무변신(無邊身)보살은 윗세계를 궁구했으되 남음이 있었으니 언제고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고, 어디고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분명하여 어디서나 당당하게 드러난다" 하였다.

 스승께서 다시 "보이는가?" 하시고, "할(瞎)!"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