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49칙 동산이 진영에 공양함[洞山供眞]

쪽빛마루 2016. 4. 22. 04:23

제49칙

동산이 진영에 공양함[洞山供眞]

 

 

 대중에게 보이시다.

 초를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그릴래야 그릴 수도 없다. 보화(普化)는 곤두박질[斤斗]을 쳤고, 용아(龍牙)는 다만 몸뚱이 반만을 드러냈다. 필경, 그 사람은 어떠한 몰골이던가?

 

본칙

 드노라.

 동산(洞山)이 운암(雲岩)의 진영(眞影)에 공양을 올리려던 차에

 -어느 것은 거짓이라 했던가?

 

 전의 진영을 묘사한다는 화두[邈眞話]를 드니

 -한번 들 적마다 한번 새롭다.

 

 어떤 승이 묻되 "운암이 이르기를 '다만 그것일 뿐이다[祗這是]' 하셨다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잘못 알지 않은 것이 다행이로군.

 

 동산이 이르되 "내가 그때 거의 스승[先師]의 뜻을 잘못 알았느니라" 하였다.

 -자기로서 남에게 견준다.

 

 승이 다시 묻되 "그러면 운암은 알고 계셨을까요?" 하니,

 -풀을 꺾어들고 하늘을 재려는 꼴이구나.

 

 동산이 이르되 "만일 알지 못했다면 어찌 그렇게 말할 줄을 알았으며,

 -해는 산 위에 뜨고

 

 만일 알았다면 어찌 기꺼이 그렇게 말했겠는가?" 하였다.

 -달은 창문 밖에 둥글었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동산이 운암을 하직하면서 묻되 "화상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누군가가 와서 묻기를 '스님의 진영을 묘사할 수 있겠느냐?' 하면 무엇이라 대답하리까?" 하니, 운암이 양구했다가 이르되 " 다만 그것일 뿐이다" 하였다. 동산이 속으로 되씹노라니, 운암이 이르되 "개(价 : 良价) 사리여, 이 커다란 사단을 알려면 모름지기 분명하게 알아야 하느니라" 하였다.

 동산 역시 아무 말도 없이 떠났는데, 나중에 물을 건너다가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활짝 깨닫고 이렇게 읊었다. "결코 딴 데서 찾지 말라 / 아득하여서 나와는 멀다 / 내 이제 홀로 가건만 / 곳곳에서 그와 만나게 된다 / 그가 바로 지금의 나이지만 /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 응당 이렇게 이해해야 / 바야흐로 여여(如如)의 도리에 계합한다."

 동산이 대중에 있을 적에 운암의 진영에 공양하려는데 앞의 "진영을 묘사한다"는 화두를 들고 나니, 어떤 승이 나서서 물은 것이다. "듣자 하니, 운암이 이르기를 '다만 그것일 뿐이라' 하셨다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동산이 이르되 "내가 그때 거의 스승의 뜻을 잘못 알았었다" 했다. 만일 양구했다가 이르시기를 "다만 그것일 뿐이다" 하신 자리에서 알아차렸더라면 이는 바로 이름을 바꿔서 통역[通事]하는 격이리라. 그러기에 그림자를 보고 형상을 알고, 물을 건너다가 바야흐로 깨달은 것이다.

 승이 이르되 "운암은 그 도리를 알고 계셨는지요?" 하였거니와 만일 한결같이 알고 있었다고만 한다면 이는 남의 좌우에서 시중이나 드는 사람일 것이다. 듣지 못했는가? 있는 줄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소중히 받들 줄 안다고 하였다. 만일 한결같이 알고 있지 않다고만 한다면 여기에는 이익과 손해가 있으니, 전혀 알지 못하는 이도 있고, 알고 있다가 나중에 알지 못하는 이도 있고,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 아는 이도 있다. 그러므로 동산이 이르되 "만일 있는 줄 알지 못했다면 어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으며, 있는 줄 알았다면 어찌 기꺼이 그렇게 말했겠는가?" 하였다.

 화엄종(華嚴宗)에서는 이르되 "이치는 원만하나 말은 치우치니, 말이 나오면 이치는 죽는다" 하였다. 이는 매우 현묘한데다가 화통[叶通]함을 겸비하여, 치우쳐 메마르지도 않고 새거나 흐름도 없는 혈맥이다.

 동산이 당 대중(大中) 말년에 처음으로 신풍(新豊)의 백길(百吉)에 머물렀다가 나중에 예장(豫章)의 고안현(高安縣)의 동산으로 옮겨 제1세, 개산조가 되면서 운암의 기일에 재를 차렸던 것이다. 이때 어떤 승이 묻되 "스승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하니, 동산이 대답하되 "비록 거기에 있었으나 그의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느니라"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그렇다면 재는 차려서 무엇하십니까?" 하니, 동산이 대답하되 "비록 그렇지만 감히 등질 수야 있겠느냐?" 하였다. 다시 묻되 "화상께서는 남전(南泉)에게서 깨달았는데 어찌하여 운암에게 재를 드립니까?" 하니, 동산이 대답하되 "나는 스승의 도덕이나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점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화상께서는 스승의 법을 계승하셨으니, 그를 긍정하십니까?" 하니, 동산이 이르되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치 않느니라"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어째서 전부를 긍정치 않으십니까?" 하니, 동산이 대답하되 "내가 만일 전부를 긍정하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니라" 하였다.

 만송은 이르노니 "운암이 20년 동안 백장산에 있었으되 도리어 약산(藥山)의 법을 이었더니, 동산도 남전에게서 깨달았으되 도리어 운암의 법을 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다른 싹을 바꾸어서 번성시키면서 신령스런 뿌리를 밀밀히 굳혀, 부용(芙蓉 : 道楷)을 얻어 종파를 중흥시켰더니, 천동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문과 채[文彩]가 갖추어졌다" 하노라.

 어떤 것이 문채인가? 천동의 송을 보자.

 

송고

 어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으리요 하니,

 -어둠 속에서는 팔뚝을 휘둘러 뽐내지만…….

 

 5경이면 닭이 울어 집집마다 새벽이요.

 -해가 동쪽으로 오른다.

 

 어찌 기꺼이 그렇게 말했으리요 하니,

 -밝은 가운데서는 말문을 막아버린다.

 

 천 년 묵은 학이 구름과 솔과 함께 늙는다.

 -달이 서쪽으로 가라앉는다.

 

 보배거울이 맑고 밝으니, 바름과 치우침을 징험하고

 -일이 궁할 때에 쓰는 요법이요.

 

 옥 틀이 구르면서 방향을 바꾸니 겸해서 이름을 본다.

 -밝음 가운데 어둠이 엇바뀐다.

 

 문풍이 크게 떨침이여, 법도[規步]가 면면이 이어지고

 -서천의 영이 엄하다.

 

 부자가 변화 · 능통함이여, 명성과 빛이 끝이 없도다.

 -스승보다 나아야 겨우 가문을 이어간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동산이 조산(曹山)에게 부촉하되 "내가 운암선사(雲岩先師)에게 친히 보배거울삼매[寶鏡三昧]를 인가받았는데 사리의 극치에 이르는 확적하고 요긴한 법이었다. 이제 그대에게 전하노니, 그대는 잘 보호해서 지니라" 하였다. 보배거울이 맑고 밝아서 바름과 치우침을 징험해내니 그 어찌 닭이 시골집에서 울고 학이 구름과 소나무 사이에서 늙는 바름과 치우침의 징험이 아니겠는가? 거울은 비록 밝으나 뒷면이 있거니와 옥으로 만든 베틀만은 돌면서 방향을 바꾸어 서로서로 얽으니, 쌍으로 밝고 쌍으로 어두워 겸해 이르는 방법이다.

 「주역」 계사에 이르되 "도는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하였으니, 동산 부자의 법도가 지금까지 문풍을 크게 떨치는 까닭은 근원이 깊고 흐름이 긴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