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칙
청림의 죽은 뱀[靑林死蛇]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떠나는 것이 머무는 것이요, 머무는 것이 떠나는 것이다. 떠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니, 그에게는 국토가 없다. 어디서 만날 것인가? 가는 곳마다에서다. 일러보라, 이 어떤 물건이기에 그토록 기특한가?
본칙 |
드노라.
어떤 승이 청림(靑林)에게 묻되 "학인이 지름길로 질러서 갈 때가 어떠합니까?" 하니,
-발길을 들면 그대로가 도는 것이거니,
청림이 이르되 "죽은 뱀이 길에 있으니, 그대 나서지 말기 바란다" 하였다.
-진작부터 독에 맞았습니다.
승이 다시 묻되 "나설 때엔 어떠합니까?" 하니,
-그대 대담함을 허락하노라.
청림이 이르되 "그대 목숨을 잃으리라" 하였다.
-과연 그럴 것이다.
승이 다시 묻되 "나서지 않을 때엔 어떠합니까?" 하니,
-오직 그대에게 달렸다.
청림이 대답하되 "그래도 피할 곳이 없느니라" 하였다.
-척척 들어맞는구나!
승이 다시 묻되 "바야흐로 그러할 때가 어떠합니까?" 하니,
-아직은 서두르지 말라.
청림이 대답하되 "도리어 잃어버리느니라" 하였다.
-비록 죽은 뱀이지만 놀릴 줄 알면 도리어 살아난다.
승이 다시 묻되 "어디로 갔습니까?" 하니,
-믿어지지 않거든 품 속을 뒤져봐라.
청림이 이르되 "풀숲이 깊어서 찾을 수가 없느니라" 하였다.
-머리 위로도 첩첩이 우거졌고 발밑에도 그러하다.
승이 다시 이르되 "화상께서도 조심해서 지키셔야 되겠습니다" 하니,
-돌아왔구먼.
청림이 손뼉을 치면서 이르되 "한결 같은 독기로다" 하였다.
-후백(侯白)뿐이라 여겼더니 다시 후흑(侯黑)이 있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균주(筠州) 동산(洞山)의 제3세이신 처건(處虔 : 靑林, 또는 師虔)선사가 처음 협산(夾山)으로부터 와서 동산 오본(洞山悟本)에게 참문하였다. 오본이 묻되 "어디서 떠났는가?" 하매, 청림이 대답하되 "무릉(武陵)에서 떠났습니다" 하였다. 다시 묻되 "무릉의 도법(道法)이 이곳과 견주면 어떠한가?" 하니, 청림이 대답하되 "오랑캐 땅에는 겨울에도 죽순[笋]이 납니다" 하였다. 오본이 좌우에게 이르되 "딴 솥에다 향기로운 밥을 지어 이 사람을 공양하라" 하였는데 그냥 나와버리니, 오본이 이르되 "이 사람이 뒷날 천하 사람을 모두 밟아 죽일 것이다" 하였다.
청림이 동산에서 소나무를 손질하고 있는데 유옹(劉翁)이라는 이가 와서 선사(청림)께 게송을 구하니, 선사가 보여주되 "뾰쭉뾰쭉하기로는 석 자 남짓하고 / 울창하기로는 잡초를 덮는다 / 뒷날의 그 어느 사람이 / 이 소나무 늙는 모습을 볼런지" 하였다. 유옹이 이 게를 오본에게 바치니, 오본이 이르되 "유옹의 기뻐함을 하례하오. 이 사람이 동산의 제3세가 될 것이오" 하였다.
청림이 오본을 하직하고 산남부(山南府)의 청좌산(靑銼山)에 가서 암자에 머무르기 십 년 만에 홀연히 오본의 유언이 떠올라 이르되 "뭇 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어찌 작은 절개에 구애되리요?" 하고는, 수주(隨州)로 갔다가 회중들이 토문(土門)의 소청림난야(小靑林蘭若)에 머무르기를 청하매 이로 인해 청림이라 불리게 되었다.
어느날, 대중에게 이르되 "그대들 모두는 심(心) · 의(意) · 식(識)을 떠나서 참구하여 범부와 성인의 길을 벗어나야 비로소 보임(保任)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나의 자식이 아니다" 하였다. 이때 어떤 승이 나서서 묻되 "학인인 지름길로 질러서 갈 때가 어떠합니까?" 하였으니, 그 승은 대비각(大悲閣)에서 떠나 중도(中都)에 가서 자기의 지견을 다시 자랑하려고 곧장 가는 곧은 길을 물었으나 그것이 벌써 크게 돌아가는 짓인 줄은 전혀 알지 못한다.
청림이 죽은 뱀이 한길에 놓였다 하여 막았으나 그 승은 위험을 돌아보지 않고 이르되 "나설 때엔 어찌 됩니까?" 하니, 이미 독에 맞은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르되 "어찌하여 방(棒)이나 할(喝)로써 정령(正令)을 행하지 않았을까?" 하거니와, 청림 역시 놓칠세라 이르되 "그대 목숨을 잃으리라" 하였다. 그 승이 아픔과 가려움을 조금 느낀지라 벗어날 길을 찾아 이르되 "길에 나서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하니, 청림이 이르되 "그래도 피할 곳이 없느니라" 하였다. 그리하여 청림 또한 모면할 길이 없어졌고, 그 승도 힘줄이 풀리고 힘이 다하여 이르되 "정히 그러할 때에 여하튼 어쩔 수가 없으니, 어찌해야 옳습니까?" 하였는데, 청림이 이르되 "도리어 잃었느니라" 하였으니, 사람을 살리는 솜씨를 여기서 볼 수 있다. 불러들이기도 하고 내치기도 하고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고 한다. 그대에게 몽땅 넘겨주었으나 따내서 가져가지 못하는 수가 있고 그대를 위해 들어올려 주었어도 놓쳐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승이 다시 이르되 "어디로 갔습니까?" 하니, 청림이 이르되 "풀이 깊어서 찾을 수가 없느니라" 하였으니,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승은 아직도 괴이하게 여겨 이르되 "화상께서도 조심해서 지키셔야 되겠습니다" 하였는데, 청림은 한 마리의 죽은 뱀으로 그 승의 마지막 고집을 뒤흔들어 허리에다 감아주고 발에다 얽어주노라 손뼉을 치면서 이르되 "한결같은 독기들이로구나!"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하늘을 그을리고 땅을 달군다[熏天炎地]" 하노라.
무진등(無盡燈)은 이르되 "청림의 듬직한 기개가 급하고 험준하여 한 세상의 빛일 뿐 아니라 여러 대의 표준이 될 것이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봄바람에 휘날리어 끝내 쉬지 않으리라" 하거니와, 다시 천동의 꽃을 불고 버들을 흔드는 게송을 보라.
송고 |
도사공[三老]이 가만히 키[柁]를 꼬느니,
-밤중 깊은 산골에 배를 숨겨두었는데…….
외로운 배는 한밤에 머리를 돌리네.
-맑은 물 위에 돛을 올린다.
갈대꽃은 양쪽 언덕의 눈빛이요,
-너와 내가 현현하게 계합하고
안개 같은 물은 한 강의 가을 풍경이네.
-위와 아래가 가만히 통한다.
바람이 돛을 도우니 노를 젓지 않아도 가고
-흐름을 따라 묘함을 얻다.
피리소리 달을 부르니, 창주(滄州)에 내려와 비추도다.
-시름없이 앞개울에 떨어지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단하 자순(丹霞子淳)선사의 송에 이르되 "긴 강이 맑았는데 달그림자[蟾華] 비치니 / 눈앞에 가득한 맑은 광채 자기 집은 아닐런가 / 묻노라, 그 많던 어주(漁舟)들은 어디로 갔느냐 / 밤이 깊으니 으레 갈대숲에서 묵누나" 하였다.
두 노인이 다 함께 조용한 못, 맑은 물, 높은 돛대, 외로운 배를 읊었는데, 단하는 설두(雪竇)의 송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현사(玄沙)화상이 이르되 "본시 낚시배의 나그네가 / 머리만 깎고 가사를 수(受)했는가? / 불조(佛位)의 지위에 머무르려 않고 / 밤이 되면 으레 갈대밭에 묵는도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별다른 소리가 있으리라 여겼더니……" 하노라.
「고금시화(古今詩話)」에 이르기를 천협(川峽)에서는 삿대잡이와 키잡이를 일러서 장년(長年), 도사공[三老]이라 한다 하였는데, 두시(杜詩)에서는 이르되 "촉의 소금과 오의 삼[麻]을 옛부터 교역했는데 / 만곡(萬斛)의 배가 바람같이 달린다 / 장년과 도사공의 구성진 가락 속에 / 한낮의 높은 물결 위에서 돈치기[攤錢 : 일종의 놀음]를 하누나" 하였다.
이 일은 마치 배를 모는 것과 같아서 양쪽 언덕에 붙어도 안 되고, 중간에 머물러도 안 된다. 단하는 밤에 갈대밭에 묵는다 했고, 천동은 바람결에 맡겨버린다 했으니, 일러보라. 키를 꼬나서 뱃머리를 돌릴 때가 어떠한가? 밤이 깊었는데 갈대밭에 가서 묵지 않으면 중간도 양쪽도 아득히 벗어나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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