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칙
조산의 탈상[曹山孝滿]
시중 |
대중에게 이르시다.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무리가 가서는 정령(精靈)이 되고, 굴욕을 당했거나 원한을 품은 무리가 와서 귀숭(鬼崇)이 된다. 부르려면 전(錢)을 태우거나 말[馬]을 바쳐야 할 것이요, 보내려면 물에다 주문을 써야 한다. 어찌해야 집안이 평온할 수 있을까?
본칙 |
드노라.
어떤 승이 조산(曹山)에게 묻되 "상복[靈衣]을 걸치지 않을 때가 어떠합니까?" 하니,
-뱁새가 겨우 알에서 깨어났으나 여전히 싸늘한 나뭇가지를 안아야 된다.
조산이 대답하되 "나는 오늘 탈상[孝滿]을 했느니라" 하였다.
-평생의 일을 저버리지 않았군!
승이 다시 묻되 "탈상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하니,
-여유있게 걷는 이는 걸음걸이가 크다.
조산이 대답하되 "나는 술에 곯아떨어지기를 좋아하느니라" 하였다.
-안 될 일도 없지.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어떤 승이 동안 위(同安威)선사에게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만나기 전의 경지가 어떠합니까?" 하니, 동안이 대답하되 "길가에 선 신령스러운 사당을 보는 이 누구나 공경하고 조심하느니라"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만난 뒤엔 어떠합니까?" 하니, 동안이 대답하되 "방 안엔 고연[靈牀]이 없고 온 집안은 효도를 하지 않느니라" 하였는데, 그 승은 묻되 "상복을 걸치지 않을 때가 어떠합니까?" 한 것이다.
동산 수초(洞山守初)가 이르되 "때에 절은 모자[灸脂帽子]를 벗고 노린내[狐臭] 나는 베장삼[布杉]을 벗어 소탈하고 시원스러운 납자가 되었다" 하였는데, 나중에 승이 묻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니, "삼 서근[麻三斤]이니라" 하였다.
만일 이 경지에 이르렀다면 "조산이 오늘 탈상을 하였느니라" 한 소식도 알았을 터인데 그 승은 공연히 오늘의 조산의 행리처(行履處)를 더 알고 싶어서 묻되 "탈상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하니, 조산이 이르되 "조산은 술에 곯아떨어지기를 좋아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각범(覺範)이 이르되 "마음은 맑은 거울 같은데 입은 술취한 놈 같다" 하였다.
어느날 어떤 승이 묻되 "제[淸稅]가 빈곤하니 화상께서 구제해주소서" 하니, 조산이 "청세야!" 하고 부르자, 승이 "예!" 하고 대답했다. 이에 조산이 이르되 "청원(淸源)의 막걸리 석 잔을 다 먹고서도 아직 입술도 축이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하였다.
또 어떤 승이 금봉(金峰)에게 묻되 "금 술잔에 술이 가득할때가 어떠합니까?" 하니, 금봉이 대답하되 "금봉은 좋은 술[酩酊]은 감당치 못하느니라" 하였는데, 불과(佛果)가 이 일을 들어 말하되 "말을 듣고 종지를 이해하거나 근기를 밝혀 두루 응하는 솜씨는 없지 않으나 금봉을 자세히 점검해보건대 매우 허물되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蔣山]게 묻기를 '금 술잔에 술이 가득할 때가 어떠합니까?' 하면, 그에게 대답하기를 '산승은 원래부터 천계(天戒)를 받았노라' 하리라" 하였다.
또 어떤 승이 조산에게 묻되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어떻게 보임(保任)하리까?" 하니, 조산이 이르되 "마치 독충이 지나간 시골의 샘물과 같아서 남에게 한 방울도 적시지 못하느리라" 하였다.
조산은 어느 때엔 취한 속에서도 또렷또렷하였고 어떤 때에는 또렷또렷하면서도 밤낮을 분간치 못했으니 그는 황량의 꿈[黃糧夢]*이 끊어졌고 규합의 정[閨閤情]을 잊었기 때문이다. 동산이 운거(雲居)에게 묻되 "일천제(一闡提)가 부모를 죽이면 효양(孝養)은 어디서 찾습니까?" 하니, 운거가 대답하되 "비로소 효양을 이루느니라" 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삼년상은 벗는 탈상이 된다.
모주꾼[顚酒底人]이라 함은 동산이 이르되 "눈에 뜨이는 곳마다의 황량한 숲에서 세월을 논하며 걸림없이 산다" 한 경지인데 천동이 일찍이 그 세계에서 오락가락 했었던지라 이렇게 송하였다.
송고 |
청백한 가문에 사방 이웃 끊겼으니
-뒤통수에서 뺨을 보니 그 집에는 내왕치 말라.
여러 해 동안 문을 닫아 먼지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사 한 점의 티끌이 있어도 묻을 곳이 없다.
광명이 솟는 곳에 새벽 달 이울어지고
-비(否)가 극하면 태(泰)가 생긴다.
효(爻)와 상(象)이 나누어질 때에 인(寅)으로 세수[建]를 삼다.
-음(陰)이 물러가고 양(陽)이 돋아난다.
탈상을 맞자마자
-멱라수(汨羅水)*의 흔적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문득 봄을 만나서
-서로 불러 그네를 뛰는구나.
취해 걸으며 미친 듯 노래하니 복건(幞巾)이 떨어진들 어떠하며
-잘 아는 사이는 예의를 따지지 않는다.
머리를 풀고 휘청거린들 누가 관계할 것인가?
-천 번 자유롭고 백 번 자재하다.
태평하여 일이 없으니 술에 취해 뒹구는 사람이라.
-일곱 집 마을에서 그 첨지가 가장 쾌활하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눈에 모래알 하나 넣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옹고집[太局狹生]이라 하였는데, 조산(曹山)이 이르되 "끊기 어려운 세간의 거친 탐 · 진 · 치는 도리어 가벼운 편이거니와 깨끗하여 무사무위한 이것은 무거움이 더할 바 없으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동산이 이르되 "명월당(明月堂) 앞은 언제나 구하(九夏)*다" 한 것이다.
지극한 도는 형용할 수 없으므로 옛사람은 가까이는 자기의 몸에서 찾고 멀리는 사물에서 찾아 비(比)와 흥(興)으로 비슷한 사례에 연결하여 지극한 도를 깨우치려 했다. 보자(報慈)가 용아(龍牙)의 반신상(半身相)을 찬(讚)하되 "해는 첩첩 산머리에 솟고 / 달은 마주친 창문에 밝았다 / 몸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 전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였다. 이 두 노숙은 모두가 동산의 문하였다. 각범이 이르되 "그 가풍의 근기는 서열[廻互]을 귀히 여겨 존비의 지위[正位]를 범하지 않으려 했고 말씀은 끝까지 하기를 꺼려 신훈[今時]에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였는데, 보자종장의 마음이 특히 묘해서 그 말씀이 종지를 잃지 않은 것이 존귀스럽다 하겠다.
이 송고에서 "광명이 솟는 곳에 새벽 달 이울어지고"라 한 구절로 탈상하자 봄 만난 것을 비유하였으니, 「주역」 건괘구이(乾卦九二)에 이르되 "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면 이로우니라" 한 대복의 소(疏)에 이르되 "구이는 월건의 인(寅)과 축(丑) 사이에 해당된다" 하였다. 이때엔 땅 위의 싹이 처음 돋는 것이 있으니 이는 곧 양기가 발동한다는 이치로서 건괘의 상(象)에 응하는 것이다.
노두(老杜)*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가운데 "왕공(王公) 앞에서 복건이 벗어져 정수리를 드러낸다" 한 구절과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한 구절은 모두가 형식이나 예절을 잊어서 굿단을 지을 수도 검속할 수도 없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단하 천연(丹霞天然)이 어느날 천진교(天津橋) 위에 펼치고 누웠노라니, 유수(留守) 정공(鄭公)의 행차를 인도하던 사령이 꾸짖었다. 선사가 돌아보지도 않으매 사령이 연유를 물으니 선사는 천천히 이르되 "나는 무사승(無事僧)이다" 하니, 정공이 공경하고 두려이 여겼다. 또 설봉(雪峰)이 만참(晩參) 때에 대중이 다 모였는데 안뜰[中庭]에 누워 있으니 태원 부(太原孚) 상좌가 이르되 "오주(五州) 관내에 겨우 저 따위 화상이 좀 나은 편이라니……" 하니 설봉이 벌떡 일어났다. 이런 일들은 모두가 옷깃을 헤치고 머리를 푼, 일 없는 술꾼[無事酒徒]들인 것이다.
조산은 탈상을 어떻게 누렸던가? 사시가 언제나 봄처럼 풍성하고 만물은 모두가 술로써 풍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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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량몽(黃糧夢, 黃梁夢) : 허무한 꿈, 꿈처럼 덧없는 부귀공명.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노생(盧生)이라는 사람이 한단(邯鄲) 땅 주막에서 도사 여옹(呂翁)에게 베개를 빌려 베고 잠이 들었다. 꿈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깨어보니 주막주인이 짓던 조밥이 익어가고 있었다.
* 멱라수 :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빠져 죽었다는 강.
* 구하(九夏) : 여름의 3개월 90일간. 주대(周代)에 조정에서 연주하던 아홉 가지 주악. 여기에서는 후자의 뜻임.
* 노두(老杜) :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두보(杜甫)를 말함. 소두(小杜)는 만당(晩唐)의 두목(杜牧)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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