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下 제75칙 서암의 항상한 이치[瑞岩常理]

쪽빛마루 2016. 5. 7. 05:27

제75칙

서암의 항상한 이치[瑞岩常理]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여여(如如)라고 불러도 벌써 변했다. 지혜로 이를 수 없는 곳이니, 부디 말하려 하지 말라. 여기에도 참구할 몫[分]이 있겠는가?

 

본칙

 드노라.

 서암(瑞岩)이 암두(岩頭)에게 묻되 "어떤 것이 근본답게 항상한 이치[本常理]입니까?" 하니,

 -진리는 큰 소리에 있지 않다.

 

 암두가 대답하되 "움직였다[動也]" 하였다.

 -과연 진리를 알았다 하리로다!

 

 서암이 다시 묻되 "움직일 때는 어떠합니까?" 하니,

 -다시 범하면 용납치 않는다.

 

 암두가 대답하되 "근본답게 항상한 이치를 보지 못했느냐?" 하였다.

 -물건을 보아야 값을 매기지.

 

 서암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기니

 -부끄러워할 줄은 아는구나!

 

 암두가 이르되 "긍정하면 근과 진[根塵]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는 긍정할 길도 없는데…….

 

 긍정치 않으면 영원히 생사에 빠지리라" 하였다.

 -당에 들어와서도 바르게 앉지도 않거늘 어찌 양쪽 변죽에 나아갈 리 있으랴?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태주(台州)의 서암산(瑞岩山) 사언(師彦)선사는 민(閩) 지방 사람으로 성은 허(許)씨다. 처음에 암두(巖頭)에게 참문하여 이름과 자(字)를 청했더니, 본상리(本常理)라는 호를 내렸다.

 암두는 때로는 놓쳐버리고는 그저 비추어 꿰뚫어주려는 생각만으로 이르되 "움직였다" 하였으니, 서암은 운이 좋았는지라. 30방은 맞아야 좋을 것인데 다행히도 어떻게 벗어났을까? 그는 도리어 위태로움도 돌보지 않고 이르되 "움직일 때가 어떠합니까?" 하였으니, 범의 머리를 껴안고 꼬리를 얽은 격이다. 암두는 반쯤 취하고 반쯤 깬 상태에서 또 놓쳐버리고 그저 비추어 꿰뚫어주려는 생각만으로 이르되 "근본답게 항상한 이치를 보지 못했느냐?" 하였으니, 사물을 용납하는 대가들의 아량이 이러한 것이다.

 서암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으니 여기야말로 바로 마른 나무 바위 앞에 갈림길이 많다는 경지일 것인데 암두는 이미 목숨을 아끼지 않는 터라 그에게 도망칠 길을 끊어서 양지 바른 서울길을 활짝 열어주고자 이르되 "긍정하면 근과 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요, 긍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생사에 빠지리라" 하였으니, 위산(潙山)이 이르기를 "법굴(法窟) 안의 우두머리[爪牙]라" 한 것과 같아서 산 채로 잡고 산 채로 붙들기에 전혀 부질없는 노력이 없다.

 협산(夾山)의 회상에 있던 어떤 승이 석상(石霜)에게 가서 문에 들어서자 문득 이르되 "안녕하십니까[不番]" 하니, 석상이 이르되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사리(闍梨)야" 하였다. 승이 다시 이르되 "그러시다면 안녕히 주무십시오[珍重]" 하였다.

 그 승이 다시 암두에게 가서 전과 같이 하니 암두가 "허허" 하고 두 마디 소리를 냈다. 승이 이르되 "그러시다면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고는 이내 돌아서려는데 암두가 불러 세우고 이르되 "비록 후생(後生)이지만 제법 갈무리할 줄 아는구나!" 하였다.

 승이 돌아와서 협산에게 이 일을 이야기해 바치니 협산이 이튿날 상당하여 그 승을 불러 앞의 일을 법답게 사뢰게 하고는 협산이 다시 이르되 "대중이여, 알겠는가? 만일 이르는 이가 없다면 노승이 두 줄기 눈썹을 아끼지 않고 말하리라 하고, 이어 이르기를 "석상은 살인도(殺人刀)는 있으나 아직 활인검(活人劍)이 없고 암두는 살인검도 있고 활인검도 있다" 하였는데 임제 문하에서 일곱 가지 일이 몸을 따른다[七事隨身] 한 것에서 연유한다.

 암두는 서암이 지성으로 청해 묻는 것을 보았으나 예리한 기봉(機鋒)으로 감변(勘辨)할 계제는 아님을 알고 그를 가엾이 여겨 자비를 드리워 도안(道眼)으로 만나주었는데 서암이 말을 따라 깨닫고는 뒷날 스스로가 "주인공아! 남의 속임에 빠지지 말라" 하였으니, 대체로 독수(毒手)를 만났던 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화두는 고금에 아무도 들먹이지 못했으니 천동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감상할 수 있었으랴?

 

송고

 둥근 구슬은 구멍을 내지 않고

 -어디다 손을 댈 것인가?

 

 큰 옥돌은 쪼지 않는다.

 -수고가 아깝지.

 

 도인이 귀히 여기는 바는 모가 나지 않는 것이니

 -진리 쪽에다 칼을 숨겨 진을 친다.

 

 긍정의 길을 뽑아버리면 근도 진도 공해지고

 -12처는 부질없는 그림자와 메아리가 없다.

 

 온 전체가 의지하는 데 없으면 살아서 우뚝우뚝하다.

 -삼천세계에서 맑은 광명을 놓는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세기(世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반악(潘岳)과 하후담(夏侯湛)은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이 모두 자태가 아름다웠기에 장위(張謂)가 그를 찬(贊)하되 "화씨(和氏)의 구슬은 밝아서 티가 없고, 수후(隨侯)의 구슬은 둥글며 구멍이 없는데 모난 죽장[方竹杖)을 둥글게 깎고는 붉은 융단[絨氈]을 감았고, 백옥덩이로 상아빗[象牙梳]을 만들고, 황금으로 구리젓가락[鍮石筯]을 만들고, 활시위에다 끈을 달고 바리때에다 자루를 달았다" 하였다.

 그대들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사람이 그만 못하겠는가?

 백장이 이르되 "신령스런 광채가 홀로 빛나서 근과 진을 아득히 벗어난다" 하였는데, 이미 긍정했다면 근과 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요, 긍정의 길을 뽑아버리면 근과 진이 저절로 공해진다. 6근과 6진이 공하다면 6식은 저절로 깨달음의 바다로 돌아간다.

 모든 물건이 모가 있으면 원활하게 구르지 못한다. 살아서 우뚯하여 붙은 데도 의지한 데도 없기를 바라는가. 다만 긍정하거나 긍정치 않는 곳에다 눈길을 돌리면 자연히 이쪽에도 저쪽에도 머무르지 않고 중류(中流)에도 머무르지 않게 되리라. 그러므로 동산은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치 않았으며 소산(疎山)은 "긍정하여 승락하면 온전할 수 없다" 한 것이다. 이 사람들의 속셈[歸計 :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알겠는가? 금 자물쇠[金鎖]가 달린 현관(玄關)에 붙들어도 머물지 않고 딴 길[異路]로 간다 하여도 또 윤회가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