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칙
국사의 탑 모양[國師塔樣]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허공을 쳐부수는 망치도 있고 화악(華嶽)을 때려내는 솜씨도 있어야 비로소 원래 꿰맨 자국이 없는 곳과 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리니, 누가 과연 그런 사람인고?
본칙 |
드노라.
숙종(肅宗)황제가 충(忠)국사에게 묻되 "입적[百年]하신 뒤에 필요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니,
-지금도 필요치 않다.
국사가 이르되 "노승을 위하여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주소서" 하였다.
-어디다 손을 대야 하나?
황제가 이르되 "스님께서 탑의 모양(본)을 보여주소서" 하니,
-초를 잡을 수도 없고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다.
국사가 양구(良久)했다가 이르되 "알겠는가?" 하였다.
-거기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알지 못했거든 딴 데서 구하지 말라.
황제가 이르되 "모르겠습니다" 하니,
-아차, 조금 빗나갔다.
국사가 이르되 "나에게 법을 받은 제자 탐원(耽源)이 있는데 그가 도리어 이 일을 압니다" 하였다.
-조상이 똑똑치 못해서 재앙이 자손에게 미친다.
나중에 황제가 탐원을 불러 묻되 "그 뜻이 무엇인가?" 하니,
-작가인 군왕인지라 유촉을 잊지 않았군!
탐원이 이르되 "소상강[相]의 남쪽이요, 동정호[譚]의 북쪽이니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우며, 해는 왼쪽이요 달은 오른쪽이라.
그 안에 황금이 온 나라에 꽉 찼도다.
-허공까지도 꽉 채웠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다 같이 배에 오르니
-밀밀한 황금의 칼은 쪼개도 열리지 않는다.
유리궁전[琉璃殿] 위엔 아는 이가 없더라" 하였다.
-적적히 드리운 발[簾]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서경(西京) 광택사(光宅寺) 혜충(慧忠) 국사는 심인(心印)을 전해받은 뒤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 당자곡(黨子谷)에 머무르기 40여 년, 산문을 나서지 않음으로써 도행(道行)이 황제[帝里]에까지 알려졌다.
당 숙종(肅宗) 상원(上元) 2년(761)에 중사(中使) 손조진(孫朝進)에게 조서를 보내 서울에 나오도록 청하여 스승의 예로써 예우하여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에 살게 하였다. 대종(大宗)이 즉위하자 다시 맞이하여 광택사(光宅寺)에 살게 하니, 16년 동안 근기에 따라 설법했다. 대력(大歷) 10년(775) 12월 9일 오른쪽 겨드랑이를 땅에 대고 영원히 떠나니 시호를 대증선사(大證禪師)라 하였다.
불과(佛果)가 이르되 "많은 사람이 '국사의 말없음이 그대로가 탑의 본이라' 하거니와, 만일 그렇게 이해한다면 달마의 한 종은 비로 쓴 듯이 사라질 것이요, 벙어리가 도리어 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였다. 옛날에 두 승이 제각기 암자에 머물렀는데 열흘 이상 서로 만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이때 위의 암주가 묻되 "여러 날 보이지 않으니 어디에 있었는가?" 하니, 아래 암주가 대답하되 "암자 안에서 무봉탑을 만들고 있었다" 하였다. 위의 암주가 이르되 "나도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대에게 그 본을 빌리고 싶다. 빌려주겠는가?" 하니, 아래 암주가 이르되 "어찌 진작 그 말을 하지 않았는가? 하마터면 딴 사람에게 빌려줄 뻔하였다" 하였다. 이에 법안이 이르되 "일러보라. 그에게 빌려준 것인가, 빌려주지 않은 것인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국사는 말이 없었거늘 아래 암주는 어찌하여 도리어 가닥을 지어 도리를 말했는고?" 하노라.
설두(雪竇)가 이르되 "숙종이 알지 못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탐원은 알았던가? 다만 한마디 '탑의 본을 청합니다' 할 줄만 알았건만 서천과 이 땅의 여러 조사들이 몽땅 그 한 수작을 만나면 모두가 남쪽을 북쪽으로 여기는 꼴을 면치 못했다 하노라. 곁에서 내 말을 긍정치 않는 이가 있는가? 있거든 나오라. 내가 그에게 물으리니 '어느 것이 무봉탑인고?' 하리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옳지 못한 말은 즉석에 이르더라" 하노라.
길주(吉州) 탐원산(耽源山) 진응(眞應)선사는 마조(馬祖)에게 공부를 했으나 오랫동안 국사의 시봉을 들었다. 국사가 입적한 뒤 황제가 탐원을 궐내로 불러 앞의 이야기를 들어 물으니, 탐원이 양구했다가 이르되 "성상께서는 아십니까?" 하니, 황제가 대답하되 "모르겠소" 하니, 탐원이 게송을 읊되 "소상강의 남쪽이요, 동정호의 북쪽이니 / 그 안에 황금이 온 나라에 가득 찼도다 /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다 같이 배에 오르니 / 유리궁전 위에는 아는 이가 없더라" 하였는데, 혹 어떤 이는 "'소상강[相]의 남쪽이요, 동정호[譚]의 북쪽이라' 한 것을 부산원록공(浮山遠錄公)이 고쳐 쓰되 '우두(牛頭)의 남쪽이요, 마두(馬頭)의 북쪽이라' 하였으니, 다만 뜻을 얻고 통발을 잊으면 옳지 못할 것이 없다" 하였거니와, 설두가 이르되 "남쪽을 북쪽이라 여기는 꼴을 면치 못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이른 말일 것이다.
어떤 승이 신라(新羅)의 대령(大嶺)화상에게 묻되 "어떤 것이 모든 곳이 청정한 것입니까?" 하니, 대령이 이르되 "옥 가지를 꺾으니 가지마다 보배요, 전단을 꺾으니 조각마다 향이라" 하였고, 단하 자순(丹霞子淳)화상은 송하되 "건곤이 모두가 황금의 나라니 / 만 가지에 완전히 정묘신(淨妙身)이 나타난다" 하였으니, 탐원(耽源)이 말한 바 "황금이 온나라에 꽉찼다" 하였고, 단하도 "나라 역시 황금이라" 했으니, 실 한 올 만치 빗나갔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다 같이 배에 오른다"고 한 것은 「주역」 약례(略例)에 이르되 "같은 배로 건너면 호(胡)와 월(越)일지라도 어찌 마음 다름을 근심하리오? 예컨대 점괘(漸卦)의 3과 4가 바탕이 다르더라도 잘 섞으면 외물이 틈을 낼수 없고 순리대로 하여 서로 잘 보존하면 마치 같은 배에 함께 탄 것 같을 것이요, 위와 아래가 바탕이 다른 것이 마치 호와 월 같더라도 잘 이용해서 도적을 막으면 어찌 마음 다름을 근심하리요?" 하였으니, 몸을 같이하고 목숨을 함께 하면 이해가 같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법진 수일(法眞守一)선사가 대중에게 묻되 "이곳 그대로가 자씨(慈氏 : 미륵)니 문도 없고 선재(善財)도 없거늘 어찌하여 유리궁전 위에 아는 이가 없다 하였을까?" 하였으나, 만송은 이르노니 "궁전을 활짝 열면 만나게 되리니 그러한 뒤에야 천동이 그대들의 얼굴 앞에다 바짝 들여대서 그대들의 콧구멍을 쥐어지르는 경지를 보게 되리라" 하노라.
송고 |
오뚝해서 아득하고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다.
둥글어서 둥글둥글하니
-모자람도 남음도 없다.
눈길이 다하는 곳에 높고도 드높아라.
-이마를 제끼고 바라보아도 미치지 못한다.
달은 지고 못은 비니 밤기운 깊숙했고
-온 시방세계가 한 병의 먹물 같다.
구름 걷힌 산 모습 여위니 가을 경치 짙었다.
-온통 그대로 가을 풍광이로다.
팔괘(八卦)의 위치가 바르게 되고
-천지가 그 덕에 부합되었고
오행(五行)의 기운이 조화되니
-일월이 그 밝음에 부합되었다.
이내 몸 진작부터 그 속에 있었던 줄 알고 있는가?
-도달할 이는 점검이 필요치 않다.*
남양의 부자는 오히려 알고 있은 듯하지만
-일단 반쯤은 믿어진다.
서천의 불조는 어찌할 바를 모르더라.
-천 성인이 원래부터 그 아랫줄에 섰었지.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설두(雪竇)가 이르되 "층층이 낙낙[層層落落]하고 그림자가 둥글둥글하다" 하였으니, 이는 이치에 합당한 한마디 말이요, 천동이 이르되 "오뚝해서 아득하고 둥글어서 둥글둥글하다" 하였으니, 이는 만 겁에 당나귀를 매어두는 말뚝이다.
"눈길이 다하는 곳에 높고도 드높다" 한 것은 3세의 부처님들이 보호하여서 볼 수 없는 정수리라 여긴 것이다.
설두가 "하늘과 땅이 같은 뿌리요 만물이 한 바탕이라" 한 것과 남전(南泉)이 꽃을 가리키면서 "꿈과 같다" 한 것을 송한 곳에 이르되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각기 다르지 않으니 / 산하대지를 거울 속에서 본다 말라 / 가을 하늘 달 저물자 밤은 장차 자정인데 / 뉘라서 맑은 못에 싸늘한 그림자를 비추어주리오" 하였으니, 이 게송으로 천동의 "달은 지고 못은 비니 밤기운 깊숙했다" 한 것과 비교하건대 옛사람들은 무던히도 공력을 들였다 하리라. 나중에 불감(佛鑑)이 한번은 이 게송을 주석하되 "무봉탑이뎌, 그림자가 아니니 / 확연하게 단숨에 진여의 경계에 들도다 / 삭가라(爍迦羅)의 눈에서 번갯빛이 흐르니 / 깜깜하고 아득[杳杳冥冥]해서 정수리를 볼 수 없다" 하였으니, 이 또한 눈길이 다하는 곳에 높고도 드높다 한 경지이다.
천동의 침선관통송(針線貫通頌)에 이르되 "드높은[峩峩] 푸른 산에 앙상한 가을 색이 드러났고 / 모발이 쇠잔해지니 풍골(風骨)이 예스럽다" 하였는데, 이 또한 "구름 걷힌 한 모습 여위니, 가을 경치 짙었다" 한 것과 같다 하리니, 가히 껍데기는 몽땅 벗겨져 버리고 오직 하나의 진실만이 남았다는 경지라 하리라.
이 경지에 이르면 팔괘는 이미 위치가 바르게 되고 오행 또한 기운이 조화되어, 운작(運作)과 수영(修營)에 꺼릴 바가 없거니 어찌 수고로이 저자에 들어가서 손빈(孫賓)에게 물으랴? "이내 몸 진작부터 그 속에 있었던 줄 알고 있는가?" 한 것은 천의 회(天衣懷)선사가 삼산(杉山)으로 오라는 청을 받아 원에 들어와 상당하여 이르되 "20년 동안 이 산을 즐겨 흠모했더니 오늘에야 만나게 된 인연을 우선 기뻐하노라. 산승이 이 산에 오기 전엔 몸이 먼저 이 산에 이르더니 여기에 이르고 보니 삼산이 도리어 산승의 몸 안에 있도다" 한 것과 같다.
"남양의 부자는 오히려 알고 있는 듯하지만" 한 것은 감히 그렇다고 단정해 말하지 못하고 다만 알고 있었던 듯하다 하였으니, 그대들 일러보라. 어찌하여 완전히 그를 긍정치 않았을까? 그 국사 부자를 저버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서천의 불조는 어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던가? 길거리에 부어 세운 무쇠 장승[金堠子]께 밥 때를 당하거든 무쇠 만두[鐵饅頭]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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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칙 본칙 · 착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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