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下 제84칙 구지의 한 손가락[俱胝一指]

쪽빛마루 2016. 5. 26. 05:36

제84칙

구지의 한 손가락[俱胝一指]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닫고 하나를 풀면 천이 따른다. 상등의 선비[上士]는 하나를 결단하면 일체를 결단하고, 중등과 하등은 많이 들어도 대부분 믿지 않나니 꼭 맞게 해당하는 경지를 드러내보라.

 

본칙

 드노라.

 구지(俱胝) 화상은 물어오는 이를 만나면 언제나 다만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그 숱한 헛수고를 해서 무엇하자는 것인가?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무주(婺州) 금화산(金華山) 구지선사는 일찍이 천태산에다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어느날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와서 삿갓을 쓰고 석장을 든 채 선사를 세 바퀴 돌고는 이르되 "바로 대답하시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하였다. 이렇게 세 번 물었으나 구지가 전혀 대답을 않으니 실제는 그냥 떠나려 했다. 구지가 이르되 "날도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가라" 했더니, 실제가 대꾸하되 "바로 이르면 묵어가리다" 했으나, 구지가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제가 떠난 뒤, 구지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나는 비록 대장부의 모습은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가 없도다" 하고는 암자를 버리고 제방으로 다니면서 참문할 것을 결심했는데, 그날 밤 꿈에 산신이 이르되 "스님은 여기를 떠나려 하지 마십시오. 머지 않아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이 되어 설법해주실 것입니다" 하더니, 과연 열흘쯤 지나 천룡(天龍)화상이 이르렀다.

 구지가 정성을 다해 영접하고 앞의 일을 자세이 사뢰니 천룡이 손가락을 세워보이매 당장에 크게 깨달았다. 이로부터 무릇 승이 와서 물으면 오직 손가락 하나를 세울 뿐 달리 제창하는 바가 없었다. 기르고 있던 동자가 밖에서 사람들에게 "화상께서는 어떤 법요를 말씀하시는가?" 라는 질문을 받자 동자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였다. 돌아와서 구지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니 구지가 칼로 그 손가락을 끊어버리매, 동자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는데 구지가 부르니 동자가 고개를 돌리자 구지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이니, 홀연히 깨달았다. 구지가 임종할 때 대중에게 이르되 "내가 천룡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은 뒤 일생 동안 써도 써도 다 쓰지 못했다" 하고는 열반에 들었다. 이에 만송은 이로노니 "그 손가락을 끊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노라.

 장경(長慶)이 대중을 대신하여 이르되 "아름다운 음식이 배부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향기로운 미끼[香餌]를 탐내지 않으니 가히 푸른 못 속의 용이라 하리라" 하노라. 현사(玄沙)는 이르되 "내가 그때에 보았더라면 손가락을 꺾어버렸을 것이다" 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그렇게 했더라면 동자의 원수를 갚아주었을 뿐 아니라 후인들의 숨통까지 뚫어주었을 것이다" 하노라. 현각(玄覺)이 이르되 "일러보라, 현사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이겠는가?" 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과연 의심스러웠다" 하노라. 운거 석(雲居錫)이 이르되 "현사가 그렇게 말한 것은 긍정한 것인가, 긍정치 않은 것인가? 만일 긍정했다면 어찌하여 손가락을 꺾어버린다 했으며, 만일 긍정치 않은 것이라면 구지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고?" 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허물은 긍정하느니, 긍정치 않느니 하는 데에 있다" 하노라. 선조산(先曹山)이 이르되 "구지가 알아들은 것은 흐리터분[莾鹵]해서 다만 한 기연과 한 경계만을 알았다. 한 종류의 선사들이 손뼉을 치고 손을 비비는 것을 남원(南園)도 이상하게 여긴 적이 있느니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물에 섞인 우유만을 골라내는 것은 모름지기 거위[鵝王]라야 한다" 하노라. 현각이 또 이르되 "일러보라. 구지가 깨달았는가? 만일 깨달았다면 어찌하여 알아들은 것이 흐리멍덩하다고 말했으며, 만일 깨닫지 못했다면 어찌하여 '일지두선을 평생 써도 써도 다 쓰지 못했다' 말하였을까? 일러보라. 조산의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곡조가 높아 응답하는 이가 적으니 뒷날 소리 알아주는 이[知音]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하노라.

 나중에 가산 내(嘉山來) 선사가 진부(鎭府)의 서천녕(西天寧)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묻되 "철우(鐵牛)화상의 탑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가산이 손으로 가리키자 홀연히 깨닫고 게송을 읊었다. "철우여, 철우여 / 다시 딴 곳에서 찾지 말라 /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는다면 / 손가락을 세우리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비록 알아듣기를 흐리멍덩하게 했으나 남의 것을 빌려오지는 말아야 하리라" 하노라. 보지 못했는가? 명초사(明招寺) 독안 용(獨眼龍)이 국태 심(國泰深)선사에게 묻되 "옛사람이 이르기를 '구지는 겨우 석 줄의 주문을 외우고 문득 모든 사람을 뛰어넘는 명성을 얻었다' 하는데 그 석 줄의 주문은 어떻게 외웁니까?" 하니, 국태가 한 손가락을 세우자, 명초가 말하되 "오늘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같은 고향 사람[瓜州客]을 알 수 있었으리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설사 병증세가 다르다 하여도 먼저 그 근본을 치료해야 한다" 하노라.

 참동계(叅同契)에 이르되 "말에 따르는 데는 모름지기 뜻을 이해해야 하나니 / 스스로가 규구(規矩)를 세우지는 말라" 하였으니, 이른바 "밤이 깊어도 오던 길을 분명히 안다면 날 밝기를 기다리지 않고 문득 관문을 나선다" 한 것과 같다 하노라. 불국(佛國)이 송하되 "기연(機緣)을 문답하는데 어찌 쉽사리 대답하랴? / 돈이 없으면 멋진 풍류객이 되기는 어려우니라 / 마음속에 일이 있어도 말할 길 없어 / 그저 바쁜 가운데서도 손가락만 세운다" 하였으니, 만일 멋진 풍류객이 되어 마음속의 일을 홀연히 털어놓고자 한다면 다시 천동화상께 참문하라.

 

송고

 구지노자(俱胝老子)의 일지두선이여,

 -당나귀가 발굽을 오무렸나?

 

 30년 동안 써도 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쳐들은 손을 어지러이 내리고 있다.

 

 실로 도인은 방외(方外)의 기술이 있어

 -그것에 물들지 않게 하라.

 

 끝내 속된 물건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좀 부족한 것이 흠이다.

 

 얻은 바는 심히 간결하고

 -건곤을 꽉 막았다.

 

 법을 펼침은 더욱 너그러우니

 -손가락 한 번 튕길 필요조차 없다.

 

 대천세계와 화장찰해를 털끝에 머금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비늘 달린 용 끝없는데 누구의 손에 떨어질꼬?

 -천동이 아직 남아 있는데…….

 

 낚싯대를 잡은 임공(任公)이여, 안녕히 가시라.

 -사람을 놀라게 하는 솜씨라 해도 무방하지 않는가.

 

 선사가 다시 한 손가락을 세우고 이르되 "보라" 하였다.

 -사람 창피하게 만드는군!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만고에 항상한 허공이 하루아침의 풍월이거니 어찌 30년 동안 써도 다하지 않을 뿐이겠는가? 「장자(莊子)」 대종사편(大宗師篇)에서 공자(孔子)가 이르되 "저이는 방위의 밖[方外]을 다니는 이다" 하였으니, 만일 방위 밖의 기술이 없으면 어찌 세간과 출세간을 완전히 한 손가락 위에서 끝까지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옛 시에 이르되 "눈앞에 속된 물건이 없으니, 병이 많아도 몸이 가볍다" 하였는데, 천동은 가까이 몸에서 찾아, 오직 한 손가락의 간편한 도만을 쓰니 요긴해서 번거롭지 않다.

 「유마경(維摩經)」에서는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킨다" 했으니, 작은 불사의경[小不思議經]이라 하고, 「화엄경」에서는 "티끌이 법계를 머금는다"고 했으니, 큰 불사의경이라 한다. 「능엄경」에서는 "한 터럭 끝에 시방의 국토를 두루 머금는다" 하였고, 또 이르되 "한 터럭 끝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타내고 미진 속에 앉아서 큰 법륜을 굴린다" 하였다.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임공자(任公子)가 커다란 갈고리와 긴 낚싯줄을 만들고 소 50마리로 미끼를 삼아 회계(會稽)에 쪼그리고 앉아 동해에다 낚싯대를 담그고 아침마다 낚았다. 해가 바뀌어도 고기를 얻지 못하더니, 어느날 아침에 큰 고기가 걸려 큰 갈고리를 끌고 꾸부정거리며 내려갔다. 깜짝 놀라 고기를 낚아채니, 흰 파도가 산 같고 바닷물이 끓듯이 진동하는데, 소리가 귀신의 곡성 같고 번쩍이는 빛이 천리를 비쳤다. 임고이 그 고기를 얻고는 썰어 저미고 스스로 분배하니, 절강(浙江)의 동쪽과 창오(蒼梧)의 북쪽 사람들이 그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하였으니, 이른바 낚싯대가 쪼개져버리면 다시 대를 가꾸되 수고를 아끼지 않다가 뜻을 이루고야 그만둔다는 격으로 마침내는 손가락을 끊는 동자를 얻은 것이다.

 국태 도(國泰瑫)는 별봉(別峰)에서 구지를 만났고 가산(嘉山)은 올 때에 도원(桃源)을 잘못 들렀는데, 오늘의 천동은 송한 뒤에 또 한 손가락을 세우고 이르되 "보라" 하였으니, 백산 대은(柏山大隱)화상이 이르되 "알량한 천동이 남의 발꿈치나 따라 달린다" 하였다.

 오조 연(五祖演)화상이 들되 "어떤 승이 투자(投子)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십신조어(十身調御)입니까?' 하니, 투자가 선상에서 내려와서 '섰다'고 하니, 다시 어떤 승이 노승에게 묻되 '선상에서 내려오기까지 하셨는데 어찌하여 다시 본에 의해서 고양이를 그리려 하십니까?' 하매, '내게 좋은 계교가 생기거든 그대에게 말해주리라' 하였다 한다. 이로써 보건대 구지의 손가락은 한 번은 물을 마시게 하고, 한 번은 딸꾹질을 하게 하는 것임은 알겠으나, 달리 만송으로 하여금 별달리 어떤 방법[向當]을 택하게 하는 것인가는 모르겠다" 하고는 주장자를 던지고, 이르되 "제방에서 마음대로 점검케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