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머문 바 없이 마음이 나면 곧 부처님의 행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세간의 이치[世諦]입니까?"
"언어 · 문자에 얽매인 이치를 논하여 무엇하겠느냐? 본래 청정한 것인데, 어찌 언설을 빌려서 문답을 하겠는가? 다만 일체의 마음이 없기만 하면 번뇌없는 지혜[無漏智]라 부른다. 네가 모든 언행에 있어서 하염있는 법[有爲法]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말하고 눈 깜짝이는 것 모두가 번뇌없는 지혜와 같으니라. 지금 말법 시대에 접어들면서 참선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대부분 온갖 소리와 빛깔에 집착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찌 자기 마음을 여의었다고 하겠느냐? 마음이 허공같고 마른 나무와 돌덩이처럼 되어 가며, 또한 타고 남은 재와 꺼진 불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야흐로 도에 상응할 분(分)이 조금 있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지 못하다면 뒷날 모두 염라대왕에게서 엄한 문책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네가 다만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을 여의기만 하면, 마음이 마치 허공에 떠있는 햇살같아 태양이 비추지 않아도 자연히 두루 비추는 것이니, 이 어찌 힘 덜리는 일[省力事]*이 아니겠느냐?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쉬어 머물 바가 없어서, 모든 부처님이 행하시는 행을 하게 되고,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는 것이 되느니라. 이것이 바로 자신의 청정한 법신이며 무상정등정각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많은 지식을 배워
얻고 부지런히 고행수도하며 풀옷을 입고 나무 먹이를 먹는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것이니라. 이것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 하며, 정작 천마의 권속이 되는 것이니, 이런 식으로 수행을 한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지공(誌公 : 418~514)이 말하기를 '부처란 본래 자기 마음으로 짓는 것인데 어찌 문자로 인해 구해지겠는가? 설령 그렇게 해서 삼현(三賢) · 사과(四果) · 십지만심(十地滿心)의 지위를 얻는다 해도, 그것은 역시 범부와 성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다. 너는 보지 못하였느냐? '모든 행위가 무상하나니, 이것이 나고 없어지는 법이니라'고 하였으며, '힘이 다한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뜻대로 되지 않을 내생을 초래하리로다. 어찌 하염없는 실상의 문[無爲實相門]에 한번 뛰어넘어 여래의 지위에 바로 드는 것만 같으리오' 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는 이 정도의 근기가 아니므로 옛사람이 세우신 방편문에서 알음알이를 널리 배워야 하느니라. 지공이 말하기를 '세간을 뛰어넘은 명철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대승의 법약(法藥)을 잘못 먹는 것이다.'고 하였다. 네 지금 일거일동에 항상 무심(無心)을 닦아 오래오래 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역량이 부족하니 단박에 뛰어넘지는 못한다. 다만 3년이나 5년 혹 10년만 지나면 반드시 들어갈 곳을 얻어 자연히 알게될 것이니라. 그러나 너는 이렇게 해내지 못하고, 굳이 마음을 가지고 선(禪)을 배우고 도를 배워야 하니, 그것이 불법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시기를, '여래의 설법은 모두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누런 나뭇잎을 돈이라 하여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법이란 결코 실다운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 종문(宗門)의 사람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너의 본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느니라. 그래서 경에 말씀하시기를, '실로 얻을 만한 조그마한 법도 없는 것을 무상정각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만약 이 뜻을 알아낸다면, 부처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니라.
본래 깨끗하여 환히 밝아 모남도 둥긂도 없고, 크고 작음도 길고 짧은 모양도 없으며, 번뇌(漏)도 작위(作爲)도 없고 미혹됨도 깨달음도 없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항하사 대천세계(大千世界)는 바다의 물거품이요, 모든 성현들은 스치는 번개불 같도다 ' 한 것이다. 모든 것이 진실한 마음만 같질 못하니라. 법신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부처님 · 조사와 더불어 마찬가지여서 어디 떨끝만큼이라도 모자람이 있겠느냐. 이런 내 말의 뜻을 알았들었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니, 이 생을 마칠 즈음에는 내쉬는 숨이 들이쉬는 숨을 보장치 못하느니라."
問 如何是世諦닛고
師云 說葛藤作什麼오 本來淸淨이어늘 何假言說問答이리오 但無一切心하면 卽名無漏智니라 汝每日行住坐臥와 一切言語에 但莫着有爲法하면 出言瞬目이 盡同無漏니라 如今末法向去에 多是學禪道者가 皆着一切聲色하나니 何不與我心고 心同虛空去하며 如枯木石頭去하며 如寒灰死火去하야사 方有少分相應이니 若不如是면 他日盡被閻老子拷你在하리라 你但離却有無諸法하면 心如日輪이 常在虛空인달하야 光明이 自然不照而照니 不是省力底事아 到此之時하야는 無棲泊處라 卽是行諸佛行이며 便是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 此是你淸淨法身이며 名爲阿耨菩提니라 若不會此意하면 縱你學得多知하며 勤苦修行하며 草衣木食이라도 不識自心이라 盡名邪行이오 定作天魔眷屬이니 如此修行하면 當復何益이리오 誌公이 云하되 <佛은 本是自心作이어늘 那得向文字中求리오 饒你學得三賢四果와 十地滿心이라도 也祇是在凡聖內坐라>하니라 不見道아 諸行無常이라 是生滅法이니 勢力盡箭環墜라 招得來生不如意하리니 爭似無爲實相門에 一超直入如來地리오 爲你不是與麼人일새 須要向古人建化門하야 廣學知解로다 誌公이 云하되 <不逢出世明師하면 枉服大乘法藥이라>하니 你如今一切時中行住坐臥에 但學無心하야 久久하면 須實得이어늘 爲你力量小하야 不能頓超로다 但得三年 五年 或十年하면 須得箇入頭處하야 自然會去하리라 爲汝不能如是하고 須要將心學禪學道하니 佛法에 有什麼交涉이리오 故로 云 <如來所說은 皆爲化人이라 如將黃葉爲金하야 止小兒啼요> 決定不實이니라 若有實得하면 非我宗門下客이라 且與你本體로 有甚交涉이리오 故로 經에 云하사되 <實無少法可得이 名爲阿耨菩提라>하시니 若也會得此意하면 方知佛道魔道俱錯이니라
本來淸淨하야 皎皎地에 無方圓無大小하며 無長短等相하며 無漏無爲하며 無迷無悟라 了了見無一物하며 亦無人亦無佛이라 大千沙界海中漚요 一切聖賢이 如電拂이로다 一切不如心眞實이라 法身은 從古至今토록 與佛祖一般이니 何處欠少一毫毛리오 旣會如是意인댄 大須努力이어다 盡今生去에 出息이 不保入息이니라
------------------------------------------------
* 힘 덜리는 일[省力事] : 무공용(無功用)의 행을 말함.
'선림고경총서 > 선림보전禪林寶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편 완릉록(宛陵錄) 1~6. (0) | 2016.07.01 |
---|---|
제1편 전심법요(傳心法要) 16. 육조(六祖)는 어째서 조사가 되었는가? (0) | 2016.07.01 |
제1편 전심법요(傳心法要) 14. 구함이 없음 (0) | 2016.07.01 |
제1편 전심법요(傳心法要) 13. 마음과 경계 (0) | 2016.07.01 |
제1편 전심법요(傳心法要) 12.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다[以心傳心] (0) | 2016.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