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선림보전禪林寶典

제2편 완릉록(宛陵錄) 17.

쪽빛마루 2016. 7. 2. 13:39

17. 마음이 부처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꿈틀거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불성이 있어서, 동일한 마음의 본체를 지녔느니라. 그러므로 달마스님이 인도로부터 오셔서 오직 한마음의 법만을 전하셨으니,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곧 바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깨달음이란 수행을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요, 결코 달리 구하지 말라.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지금 말하는 것이 바로 너의 마음이니라. 만약 말하지 않고 작용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모양도 없고, 또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그렇다고 그저 한결같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있으면서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조사스님께서는 '참된 성품의 마음자리[眞性心地藏]는 머리도 꼬리도 없는지라. 인연에 호응하여 중생을 교화하나니, 방편으로 그것을 지혜라 부른다'고 하셨다. 만약 인연에 호응하지 않을 때라도 있고 없음을 말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바로 호응할 때라도 또한 종적이 없느니라. 이미 이런 줄 알았을진댄 '없음' 가운데 쉬어 깃든다면 곧 모든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것이니라.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머문 바가 없이 그 마음이 난다'고 하셨으니, 모든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은 뜻으로 반연하고 분주히 조작하는 마음이 6도에서 멈추지 못하여, 마침내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유마거사가 이르기를, '교화하기 힘든 사람은 원숭이처럼 의심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법으로 제어한 다음에 비로소 조복시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일체 법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 · 천상 · 지옥 · 6도 · 아수라가 모두 마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심하기만 하면 모든 반연은 단박에 쉬게 되며 망상 분별을 내지 않으면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욕심과 성냄도 없고, 밉고 고움도 없으며, 이김도 짐도 없느니라.

 허다한 여러 가지 망상을 없애 버리기만 하면 자성(自性)은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니, 곧 깨달음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과 나란히 되는 것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설사 널리 배우고 부지런히 수행하며, 나무먹이를 먹고 풀옷을 입는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한 것이니라. 그것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고 하며 모두 다 천마(天魔) · 외도 · 물과 뭍의 여러 귀신 노름을 하는 것이니, 이같이 수행한들 무슨 이로움이 있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본래 몸은 자기의 마음이 짓는 것이어늘, 어찌 문자 속에서 구하리오?' 하였다. 지금 자기 마음을 알아서 사량분별하는 망상을 쉬기만 하면 6진의 번뇌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오직 침상 하나만 두고 병들어 누워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니라. 지금 앓아 누워서 반연을 모두 쉬어 망상이 그쳐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보리이니라.

 지금 만약 마음 속이 분분히 시끄러워 안정되지 않았다면, 너의 배움이 비록 3승 · 4과 · 10지의 모든 지위에 이르렀다 해도 아직 범 · 성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함이 옳다. 모든 행위는 끝내 덧없음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힘이 다할 때가 있기 마련이니, 마치 화살을 공중에 쏘면 얼마 안 가 힘이 다해 땅에 도로 떨어지는 것처럼, 생사의 윤회에 다시 돌아가고 만다. 이와 같은 수행은 부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요, 헛되이 쓰라린 고초를 받을 뿐이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세간에 뛰어난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대승의 법약을 잘못 먹은 것이다'고 하였다. 단지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시간 가운데서 오로지 무심함을 배우기만 하면, 분별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으며, 또한 머물러 집착할 바도 없다. 종일토록 둥둥 떠오르는 기운대로 내맡겨 둔 것이, 마치 바보와도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모른다 하여도, 일부러 알리거나 모르게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마치 큰 바위덩이와 같아서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고, 일체 법이 너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여 올연히 어디에도 잡착함이 없어야 한다. 이와 같아야만 비로소 조금은 상응할 분(分)이 있다 하리라.

 3계의 경계를 툭 뚫고 지나기만 하면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셨다고 하는 것이며, 번뇌 없는 마음의 모습을 바로 샘이 없는 지혜[無漏智]라고 부른다. 인간과 천상업을 짓지 않으며, 그렇다고 지옥업을 짓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반연이 전혀 생기지 않으면 곧 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

다. 그렇게 되면 한결같이 나지 않음[不生]만은 아니어서, 뜻 따라 날[生] 따름이니라. 경에 이르시기를 '보살은 자기 뜻대로 나는 몸을 가졌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마음이 없음을 모르고 모양에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는 것은 모두 마구니의 업에 속하는 것이다. 나아가 정토의 수행[淨土佛事]을 한다 하더라도 모두 업을 짓는 것으로써, 이것을 부처의 장애[佛障]라고 하느니라. 그것이 그

대의 마음을 가로막기 때문에 인과에 얽매여, 가고 머무름에 조금도 자유로움이 없다. 왜냐하면 보리 등의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치 누런 잎사귀를 돈이라 하여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억지로 그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로 법이 있지 않음을 무상정각이라 하나니, 지금 이미 이 뜻을 알았다면 어찌 구구한 설명이 더 필요하겠느냐? 다만 인연따라 묵은 업을 녹일 뿐이요, 다시 새로운 재앙을 짓지 말라. 마음 속은 밝고 또 밝기 때문에 옛 시절의 견해를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서 「유마경」에 이르기를 '가진 것을 없애 버린다'고 하였으며, 「법화경」에서는 '20년 동안 항상 똥을 치게 하셨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마음 속에 지은 바 견해를 없애게 하는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희론(戱論)의 똥을 쳐서 없앤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본래 스스로 공적(空寂)하여 결코 한 법에라도 멈춰 머무르지 않으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의 나라도 또한 다 비었다'고 하셨느니라.

 만약 부처님의 도를 닦아 배워서 얻는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견해는 전혀 맞지가 않는 것이다. 혹은 한 기연이나 한 경계를 보이기도 하며, 눈썹을 치켜뜨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여 어쩌다 서로 통하기라도 하면 곧 말하기를, '계합하여 알았다'고 하며 혹은 '선의 이치를 깨쳐서 증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도무지 아는 게 없다가 그 사람을 대하여 무슨 도리라도 얻게 되면 마음 속이 문득 환희하여 기뻐한다. 그러나 만약 상대에게 절복당하여 상대보다 못하게 되면 속으로 섭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처럼 마음과 뜻으로 배운 선(禪)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비록 그대가 자그마한 도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한낱 마음으로 헤아리는 법일 뿐이요, 우리 종문의 선도(禪道)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달마스님께서 면벽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전혀 견처(見處)가 없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마음의 작용을 잊는 것은 부처님의 도이나, 분별망상은 마구니의 경계이다'고 하였다. 이 성품은 네가 미혹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그렇다고 깨쳤을 때에도 역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라. 천진스런 자성은 본래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으며, 온 시방의 허공계가 바로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니라. 그러니 네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허공이란 본래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라 할 것도 인위적인 작위도 없으며,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다. 그래서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고 하였으며, 털끝만큼이라도 사량분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니, 의지하여 기댈 만한 것도 없으며, 달라붙을 것도 없다. 한 줄기 맑은 흐름이 자성의 남이 없는 진리[無生法忍]이니, 어찌 머뭇거려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겠느냐! 참 부처는 입이 없기 때문에 설법할 줄 모르고, 진정으로 들음은 귀가 없으니, 뉘라서 들을 수 있겠느냐! 수고하였다. 편히들 하여라."

 

上堂云 卽心是佛이라 上至諸佛하며 下至蠢動含靈히 皆有佛性이요 同一心體니 所以로 達磨가 從西天來하사 唯傳一心法이니 直指一切衆生이 本來是佛이라 不假修行이니 但如今에 識取自心하야 見自本性이요 更莫別求니라 云何識自心고

 卽如今言語者가 正是汝心이니라 若不言語하고 又不作用하면 心體如虛空相似하야 無有相貌하며 亦無方所하며 亦不一向是無라 有而不可見故로 祖師云하되 <眞性心地藏이 無頭亦無尾라 應緣而化物하니 方便呼爲智라>하니라 若不應緣之時에 不可言其有無요 正應之時에도 亦無蹤跡이니 旣知如此인댄 如今에 但向無中棲泊하면 卽是行諸佛路니라 經云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라>하시니 一切衆生이 輪廻生死者는 意緣走作心이 於六道에 不停하야 致使受種種苦하나니라 淨名이 云하되 <難化之人은 心如猿猴故로 以若干種法으로 制禦其心然後에 調伏이라>하니라 所以로 心生하면 種種法이 生하고 心滅하면 種種法이 滅이니 故知一切諸法이 皆由心造며 乃至人天地獄 六道 修羅가 盡由心造니 如今에 但學無心하면 頓息諸緣이요 莫生妄想分別하면 無人無我하며 無貪瞋하며 無憎愛無勝負니라 但除却如許多種妄想하면 性自本來淸淨이니 卽是修行菩提法하야 佛等이니라 若不會此意하면 縱你廣學勤苦修行하며 木食草衣라도 不識自心이라 皆名邪行이며 盡作天魔 外道 水陸諸神이니 如此修行이 當復何益이리오 誌公이 云하되 <本體是自心作이어늘 那得文字中求리오>하니 如今에 但識自心하야 息却思惟妄想하면 塵勞自然不生이니라 淨名이 云하되 <唯置一牀하고 寢疾而臥라하니> 心不起也라 如今臥疾하야 攀緣이 都息하고 妄想이 歇滅하면 卽是菩提니라 如今에 若心裡紛紛不定하면 任你學到三乘四果十地諸位라도 合殺祇向凡聖中坐니라 諸行이 盡歸無常이라 勢力이 皆有盡期니 猶如箭射於空하면 力盡還墜인달하야 却歸生死輪廻하나니 如斯修行은 不解佛意요 虛受辛苦니 豈非大錯이리오 誌公이 云하되 <未逢出世明師하면 枉服大乘法藥이라>하니 如今에 但一切時中行住坐臥에 但學無心하면 亦無分別하며 亦無依倚하며 亦無住着이라 終日任運騰騰하야 如癡人相似니 世人이 盡不識하되 你亦不用敎人識不識이니라 心如頑石頭하야 都無縫罅하며 一切法이 透汝心不入하야 兀然無着이니 如此하야사 始有少分相應하리라 透得三界境過하면 名爲佛出世요 不漏心相이 名爲無漏智니 不作人天業하며 不作地獄業하며 不起一切心하고 諸緣이 盡不生하면 卽此身心이 是自由人이라 不是一向不生이니 祇是隨意而生이니라 經에 云하사되 <菩薩은 有意生身이라>하심이 是也니라 忽若未會無心하고 着相而作者는 皆屬魔業이며 乃至作淨土佛事라도 並皆成業이요 乃名佛障이니 障汝心故로 被因果管束하야 去住無自由分이니 所以로 菩提等法이 本不是有니라 如來所說은 皆是化人이라 猶如黃葉으로 爲金하야 權止小兒啼故며 實無有法이 名阿耨菩提니 如今에 旣會此意인댄 何用區區리오 但隨緣消舊業이요 更莫造新殃하라 心裡明明이니 所以로 舊時見解를 摠須捨却이니라 淨名이 云하되 <除去所有라>하며 法華에 云 <二十年中에 常令除糞이라>하시니 祇是除去心中作見解處며 又云 <蠲除戱論之糞이라>하시니 所以로 如來藏은 本自空寂하야 並不停留一法故로 經云 <諸佛國土도 亦復皆空이라>하시니 若言佛道를 是修學而得이라하면 如此見解는 全無交涉이니라 或作一機一境하며 揚眉動目하야 祇對相當하면 便道하되 <契會也라>하며 <得證悟禪理也>라하며 忽逢一人하여 不解便道하고 都無所知라가 對他若得道理하면 心中이 便歡喜하며 若被他折伏하야 不如他하면 便卽心懷惆悵하나니 如此心意學禪이 有何交涉이리오 任汝會得少許道理라도 祇得箇心所法이요 禪道에는 摠沒交涉이니라 所以로 達磨面壁은 者不令人으로 有見處니 故로 云하되 <忘機는 是佛道요 分別은 是魔境이라>하니라 此性이 縱汝迷時에도 亦不失하며 悟時에도 亦不得이라 天眞自性이 本無迷悟하며 盡十方虛空界가 元來是我一心體니 縱汝動用造作이라도 豈離虛空이리오 虛空이 本來無大無小하며 無漏無爲하며 無迷無悟라 了了見無一物하며 亦無人亦無佛하며 絶纖毫的量이니 是無依倚며 無粘綴이라 一道淸流가 是自性無生法忍이니 何有擬議리오 眞佛은 無口라 不解說法이요 眞聽은 無耳라 其誰聞乎아 珍重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