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참된 사리(舍利)는 볼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의 몸은 하염이 없기 때문에 모든 숫자적인 개념으로 한정할 수가 없거늘, 어찌하여 부처님 몸의 사리가 여덟섬 너말이 됩니까?"
"네가 이런 견해를 낸다면, 그저 껍데기 사리만 볼 뿐 참된 사리는 보질 못하느니라."
"사리가 본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노력하여 얻은 결과입니까?"
"본래 있는 것도 아니며 노력하여 수행의 결과로 얻으신 것도 아니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부처님 사리는 그토록 잘 다듬어졌고 그토록 정교로와서, 금빛 사리가 항상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사께서 꾸짖어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서 어찌 참선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허공에 사리가 있는 것을 일찍이 보았느냐?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큰 허공과 같은데 무슨 사리를 찾는 것이냐?"
"지금에도 분명히 눈으로 사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법입니까?"
"그것은 너의 망상심이 일어나서 사리라고 보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화상께서는 사리가 있읍니까? 청컨대 내보여 주십시오."
"참 사리는 보기 어렵느니라. 네가 다만 열 손가락으로 수미산의 높은 봉우리를 한꺼번에 움켜쥐어 그것을 부수어 가루로 만든다면 비로소 참 사리를 보게 되리라."
問 佛身無爲하야 不墮諸數어늘 何故로 佛身舍利八斛四斗오 師云 你作如是見하면 祇見假舍利요 不見眞舍利니라 云 舍利爲是本有아 爲復功勳가 師云 非是本有며 亦非功勳이니라 云 若非本有요 又非功勳이면 何故如來舍利가 唯鍊唯精하야 金骨이 常存고 師乃呵云 你作如此見解하면 爭喚作學禪人고 你見虛空曾有骨否아 諸佛心同太虛어늘 覓什麼骨고 云 如今見有舍利하니 此是何法고 師云 此從你妄想心生하야 卽見舍利니라 云 和尙은 還有舍利否아 請將出來看하라 師云 眞舍利難見이니 你但以十指로 撮盡妙高峯爲微塵하면 卽見眞舍利니라
34. 일체처에 마음이 나지 않음
"대저 참선해서 도를 닦는 이는 모름지기 어디에서나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 다만 '마음의 작용을 잊으면 곧 부처님의 도가 융성하고, 사량분별하면 곧 마구니의 도가 치성해진다'하는 것만을 논할 뿐이니, 끝내는 털끝만큼한 작은 법도 얻지 못하니라."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조사께서 어떤 사람에게 법을 전하여 부촉하셨읍니까?"
"사람에게 줄 법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2조(二祖) 혜가스님이 달마스님께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청했읍니까?"
"네가 만약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2조께서는 분명히 마음을 찾아서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달마스님께서, '너의 마음을 이미 편하게 해주었노라'고 하신 것이니라. 만일 얻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생멸법으로 돌아가고 만다."
夫參禪學道는 須得一切處不生心이라 祇論忘機卽佛道隆하고 分別卽魔軍盛하야 畢竟無毛頭許도 少法可得이니라
問 祖傳法付與何人고 師云 無法與人이니라 云 云何二祖請師安心고 師云 你若道有하면 二祖卽合覓得心이요 覓心不可得故로 所以道與你安心竟이라하니 若有所得하면 全歸生滅이니라
35. 조계문하생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구경에 무명을 얻으십니까?"
"무명이란 바로 모든 부처님들께서 도를 얻으신 자리이니라. 그러므로 연기법이 바로 도량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한 티끌 한 빛깔이 그대로가 가이 없는 진리의 성품이니라. 발을 들었다 놓는 것이 모두 도량을 여의지 않나니, 도량이란 얻은 바가 없는 것이니라. 내 너에게 말하노니, 다만 이 얻은 바 없는 자리를 도량에 앉아 있음이라고 하느니라."
"무명이란 밝음입니까, 어두움입니까?"
"밝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두움도 아니다. 밝음과 어두움이란 서로 바뀌어서 갈아드는 법이니라. 그렇다고 무명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다. 밝지 않음이 곧 본래의 밝음이어서,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느니라. 이 한마디 말이 온천하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비록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사리불과 같아서, 모두 함께 헤아려 사량할지라도 부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는 허공을 벗어나 너희들의 언어 문자로는 따져볼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량과 같은 삼천대천 세계에 갑자기 어떤 보살이 출현하여, 한 번 걸터앉으매 모든 삼천대천 세계를 걸터앉아버린다 해도, 보현보살의 한 털구멍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지금 무슨 본래의 이치를 가지고서 그것을 배우려고 하겠느냐?"
"말씀대로 배워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가지만, 방편에는 여러 문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무명의 참 성품이니,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성품이니라. 또 방편에 여러 문이 있다는 뜻은, 성문들은 무명이 생겼다 없어진다고 보며, 연각들은 다만 무명이 없어지는 것만을 보고 무명이 생기는 것은 보지 못하여 생각마다 적멸을 증득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종일 생겨나나 그 남이 없음을 보시고, 또 그것이 종일 없어지지만 그 없어짐이 없는 것임을 보아서,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음이 곧 대승의 최고 과(果)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과(果)가 가득 차면 깨달음이 원만하고, 꽃이 피면 세계가 일어나서, 한발짝 드니 그대로가 부처요, 한발짝 내리니 그대로가 중생이도다'고 하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을 양족존(兩足尊)이라 부르는 것은 이(理)의 측면에도 구족하시고, 사(事)의 측면에도 구족하시며, 나아가 중생에도 구족하시고 나고 죽음에도 구족하시며, 모든 것에 다 구족하시니 구족하시므로 구할 것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지금 생각생각에 부처는 배우려 하면서 중생을 싫어하니, 만약 중생을 싫어하면 이것이야말로 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똥치는 그릇을 들고 희론의 똥을 제거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만 너희들에게 옛부터 알음알이로 배워서 알려는 마음과 도를 보려는 마음을 없애려고 그러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마음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나면 희론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며, 또한 똥을 내다버린다고 하느니라. 이는 다만 너희로 하여금 마음을 내지않게 하시는 것이다. 또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저절로 큰 지혜가 완성된다는 것은,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분별을 결코 내지 않아서 일체를 모두 분별치 않아야만 비로소 우리 조계의 문하에 들어오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옛부터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을 조금은 행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때문에 행함 없음[無行]이 나의 법문(法門)이니라. 오로지 한 마음의 문일 따름이니, 모든 사람이 이 문에 이르러서는, 모두 감히 들어오지는 못하나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다만 얻은 사람이 적을 뿐이니, 얻은 자는 곧 부처이니라.
편히 하여라."
問 佛窮得無明否아 師云 無明은 卽是一切諸佛得道之處니라 所以緣起是道場이라 所見一塵一色이 便合無邊理性이니라 擧足下足이 不離道場이니 道場者는 無所得也라 我向你道호되 祇無所得이 名爲坐道場이로다 云無明者는 爲明가 爲暗가 師云非明非暗이라 明暗是代謝之法이니 無明은 且不明이며 亦不暗이니 不明은 祇是本明이라 不明不暗이니라 祇這一句子가 亂却天下人眼하니 所以道호대 <假使滿世間이 皆如舍利佛하야 盡思共度量하나 不能測佛智>니 其無礙慧가 出過虛空하야 無你語論處로다 釋迦量等三千大千世界에 忽有一菩薩出來一跨하야 跨却三千大千世界하나 不出普賢一毛孔이니 你如今에 把什麼本領擬學他오 云 旣是學不得이면 爲什麼하야 道歸源性無二요 方便有多門이라하나 如之何오 師云 歸源性無二者는 無明實性이니 卽諸佛性이요 方便有多門者는 聲聞人은 見無明生見無明滅하고 緣覺人은 但見無明滅이요 不見無明生하야 念念證寂滅하며 諸佛은 見衆生이 終日生而無生이요 終日滅而無滅하야 無生無滅이 卽大乘果니라 所以道호되 <果滿菩提圓이요 華開世界起하야 擧足卽佛이며 下足卽衆生>이니라 諸佛兩足尊者는 卽理足事足과 衆生足生死足과 一切等足이니 足故不求라 是你如今에 念念學佛호대 卽嫌著衆生이니 若嫌著衆生하면 卽是謗他十方諸佛이니라 所以佛出世來하야 執除糞器蠲除戲論之糞이로다 祇敎你除却從來學心見心하야 除得盡하면 卽不隨戲論이며 亦云搬糞出이라 祇敎你不生心이니 心若不生하면 自然成大智者는 決定不分別佛與衆生하야 一切盡不分別하야사 始得入我曹溪門下니라 故自古先聖云 <少行我法門이라>하니 所以
無行爲我法門이라 祇是一心門이니 一切人到這裏하야 盡不敢入하나 不道全無하라 祇是少人得이니 得者는 卽是佛이라 珍重하라
36. 계급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어떻게 해야 수행의 등급에 떨어지지 않겠읍니까?"
"종일토록 밥을 먹되 일찌기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으며, 종일토록 걸어다니지만 일찌기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러할 때에 나와 남 등의 구별이 사라져, 종일토록 갖가지 일을 하면서도 그 경계에 현혹되지 않아야만 비로소 자유자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생각생각 모든 모양을 보지 않아서 앞뒤의 3제(三際)를 헤아리지 말라. 과거는 감이 없으며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으니, 편안하고 단엄하게 앉아 움직이는 대로 내맡겨 얽매이지 않아야만 비로소 해탈했다고 할 수 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 이 문중의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서도 오로지 서너명만이 얻었을 뿐이니라. 만약 도 닦기를 일삼지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힘을 다하여 모름지기 금생에 도업을 마칠 것이
요, 뉘라서 누겁토록 나머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느니라."
스님께서는 당(唐) 대중(大中 ; 847~859)년간에 본주(本州) 황벽산에서 세연을 마치셨다. 선종(宣宗) 황제가 단제선사(斷際禪師)라고 시호를 내리고 탑호는 광업(廣業)이라 하였다.
問 如何得不落階級고 師云 終日喫飯호대 未曾咬著一粒米며 終日行호대 未曾踏著一片地니 與麼時에 無人我等相하야 終日不離一切事호대 不被諸境惑하야사 方名自在人이니라 念念不見一切相하야 莫認前後三際하라 前際無去하며 今際無住하고 後際無來하야 安然端坐하야 任運不拘하야사 方名解脫이니 努力努力하라 此門中도 千人萬人에 祇得三箇五箇요 若不將爲事면 受殃有日在니라 故云 <著力今生須了却이요 誰能累劫受餘殃가>하니라
師於唐大中年中終於本山한대 宣宗敕謚斷際禪師하고 塔曰廣業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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