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설봉록雪峰錄

2. 설봉진각대사광록 후서

쪽빛마루 2016. 7. 12. 04:50

2. 설봉진각대사광록 후서

   (雪峰眞覺大師廣錄後序)

 

 선 공부가 생긴 뒤로 학인들은 심지어 몸을 버리고 마른 나무같이 여위는 것을 달갑게 여겨 한번 산에 들어가면 돌아오지 않기까지 하였다. 그 가운데는 간혹 저자나 마을에 달려나가 술과 고기에 푹 젖어 놀면서도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남긴 풍모를 밟아 보고 그 분들이 노니던 말류(末流)에 헤엄쳐 보면 그 경지를 대강은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둠에 싸인 허공같이 아득하고 망망하여 위로는 더할 수 없이 높고 아래로는 더할 수 없이 깊다. 찾으려 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려 해도 볼 수가 없으며 헤아려 보아도 아무 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 생사도 역시 큰 일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변하는 것이며, 고금도 오랜 세월이긴 하지만 이에 비하면 변해 가는 것이다. 이렇듯 굉장히 넓고 커서 그 꼬투리를 잡을 수 없는데, 이것을 체득해 낼 수 있다면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전기를 보면, 대략 도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만 해도 천여명에 달한다. 이 분들은 모두가 문도를 모아 무리를 이루고 문호를 열어 가문의 이름을 지어놓고 말씀과 글을 통해 뒷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스승을 따라 수행하는 어려움, 도를 봄이 더딤에도 부지런히 반복하며 쉬지 않고 애쓰다가 끝내 성취한 분을 고찰해 본다면, 나는 그러한 경우를 설봉대사에서 보았다.

 그 분은 만년에 스스로 심산유곡 깎아지른 바위와 황량한 절벽 밑, 사람의 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 몸을 버리고 들짐승과 노니면서 풀을 깎아 암자를 세워 비바람을 막고 살았다. 학인들이 그곳으로 달려가 5백명이나 되었고, 집채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즐비하게 이어졌다. 긴 숲이 하늘에 닿고 곡식더미가 구름같이 쌓여 그 길이가 몇 백리에 달하였으니, 이 곳에 몸을 기대 사는 사람은 모두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 아마도 달마스님이 동쪽에 오고 육조스님이 남쪽으로 오신 뒤로 선림이 이와같이 성대했던 적이 일찍이 없을 것이다.

 나는 복주(福州)에 온 지 2년이 되도록 아직 그 산에 가서 그 분의 탑을 한번 우러러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그래서 그 분의 진영을 가져다가 성에 들어가 절을 올렸다. 그 진영은 네 폭이었는데 설봉대사가 한가운데 반듯이 앉아 있었고 양 옆에 모시고 선 분들은 운문 문언, 현사 사비 등 모두 열 두 분이었다.

 나는 그 그림을 전해받고 나서 그곳의 학인 같아 보이는 스님에게 그 분이 산중에서 했던 선법어를 모조리 찾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이리저리 흩어지고 겨우 남아 있는 것도 고증할 수 가 없었으며, 왕문혜공(王文惠公)이 지은 어록의 서문만이 돌에 새겨 있을 뿐이었다.

 이에 다시 사방으로 찾아 구해서 중복된 부분은 삭제하고 몇몇 스님들의 자문을 얻어 함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았다. 그런 뒤 우선 순서가 잘못된 곳과 베껴쓰는 과정에서 잘못된 곳을 급한대로 차례를 잡아 놓았다. 앞으로 잘 아는 이의 고즈을 기대한다.

 

원풍(元豊) 3년(1080) 11월 28일

우사간 직집현원 지복주 주사 충복건로 병마령할 고우 손각(右司諫 直集賢院 知福州 州事 充福建路 兵馬鈴轄 高郵孫覺)이 서(序)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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