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어록 맨끝에[雪峰語錄大尾]
대갱(大羹)과 현주(玄酒)*는 온갖 맛의 으뜸이라 담담하면서도 남는 맛이 있고, 운문(雲門)과 함지(咸池)*는 모든 소리의 왕으로서 소박하면서도 여운이 있다. 그러므로 저 기름지고 단 음식이 여러 사람의 입맛을 당기게 하는 것이나 음탕하고 지저분한 가락이 여러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과는 한자리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설봉스님의 말씀은 간결하고 옛스러우며 순수하고 진실하다. 그 담담한 맛과 소박한 소리는 여러 사람의 입에는 맞지 않고 여러 사람의 귀에는 바늘로 찌르는 듯하다. 다만 이 경계에 사는 사람만이 손가락에 물을 찍어 물맛을 보고 메아리를 듣고 그 가락을 안다.
경산(徑山)*의 은수(隱睡) 노스님이 일찍이 이 어록을 얻어 가장 깊게 이해하였다. 그리고는 이 어록을 인쇄해서 지난날 인쇄한 현사스님의 어록과 나란히 유포시키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스님께서 돌아가셔서 공연히 마치지 못한 인연이 되었는데야 어찌하랴. 불법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인들 안타깝게 여기지 않겠는가?
지금 그 분의 문도인 아무개가 그 어록을 나에게 주었으니 아마도 그것은 그의 스승이 남기신 뜻을 이 노승을 통해 싹트게 해달라는 뜻인 듯하다.
그런 까닭에 차마 나 혼자 그 맛과 가락을 보고 들을 수가 없어서 한번 검토한 다음 마침내 인쇄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이 책을 다시 찍도록 계획하였다.
설봉스님의 참된 풍모가 이 땅에 널리 퍼져서 우리 신풍(新豊 : 조동종의 별칭)의 일맥이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게 되기를 꼭 바란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유통시키려는 뜻이다.
때는 원록(元祿) 14년(1701) 용집(龍集)* 신사 6월 1일 취봉(鷹峰)의 한도인(閑道人) 만산노납(卍山老衲)*이 무릉(武陵)의 객당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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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갱, 현주 : 맑은 물
* 운문, 함지 : 악곡
* 원문의 ‘經’은 ‘徑’인 듯하다.
* 용집 : 용성(龍星 : 목성)의 성좌가 일년에 깃들이는 일로써 세차(歲次)를 말함.
* 만산노납 : 만산도백(卍山道白 : 1636~1715), 일본 승려로 일본 조동종의 중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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