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6일 월요일
경산공원
자금성
명조와 청조의 궁전 단지로 1407년부터 있어 왔다
명조와 청조의 황제 궁전인 자금성의 건축은 1407년에 시작되었으며, 2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고생한 끝에 14년이 걸려 완공되었다. 황제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설계된 자금성은, 천제(天帝)의 거처와 동등한 지상의 등가물이라 여겨졌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황제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단지는–각 변에 주 성문이 나 있다–깊이 6m의 해자와 높이 10m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총 넓이가 약 72헥타르에 이르는 자금성 안에는 약 800채의 건물과 8,880개의 방이 있는데, 방의 개수가 좀 더 그럴싸한 숫자인 9999개라고 나와 있는 자료들도 있다. 이 건물들 중에 다섯 채의 커다란 전당과 열일곱 채의 궁전이 있었다. 자금성은 두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남쪽 구역, 즉 '전조'(前朝)는 황제가 매일의 정무를 보는 곳이었고, 황제와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곳은 북쪽 구역, 즉 '내정'(內廷)이었다. 건물의 소재로는 목재가 지배적으로 쓰였다. 자금성 안에는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모여 있으며, 지붕은 전통적인 왕의 색깔인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1644년 명나라 뒤를 이어 들어선 청나라의 열 명의 황제들은 자금성을 정부 소재지로 삼았다. 1912년, 신해혁명에 뒤이어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퇴위했고, 자금성은 결국 박물관이 되었으며 많은 보배와 진기한 물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유물들의 일부는 국공내전(國共內戰) 동안 대만으로 옮겨졌다).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완화되면서 자금성은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가 찾는 주요 명소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요일이라 자금성 휴관이라 관광이 안되어 경산공원에서 내려다 보기만 했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징산공원
중국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 북쪽에 있는 경승지로
높이는 약 43m이고, 해발고도는 88.7m이다. 베이징[北京] 중심에 있는 공원으로 자금성 안을 전망할 수 있다. 금(金) 때 이궁(離宮)을 만들면서 지금의 베이하이[北海]를 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들었으며, 원(元) 때는 궁정의 정원이었다.
명(明) 때인 1403~1424년에 자금성의 퉁쯔허[筒子河]를 판 흙을 쌓아 5봉(峰)을 만들고, 건륭제(乾隆帝)가 그 봉우리 위에 만춘정(萬春亭)을 비롯하여 산정(山亭)을 세웠다. 옛 이름은 완서우산[萬壽山]이며 명, 청(淸) 때는 자원(紫苑)이라고 불렀다.
1644년 이자성의 난 때 농민봉기군이 베이징을 공격할 때 숭정제(崇禎帝)는 동산록(東山麓)에 있는 괴목에 목을 매 자살하였다. 1655년에 징산[景山]이라고 개칭하였다. 1949년 이후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5개의 봉우리가 동서로 있는데 봉마다 정자가 세워져 있고, 가운데의 만춘정(萬春亭)은 그 당시 베이징에서 최고로 높은 봉이었다. 화원과 수황전(壽皇殿) 등 전각이 있고 서쪽 가까이에 백탑(白塔)이 솟아 있는 베이하이구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