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함께 다 포함하여
一空이 同兩하야 齊含萬象하야
일 공 동 양 제 함 만 상
앞에서 ‘공했다’고 하여, 아주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줄로 알아서는
크게 어긋나니 이는 단멸의 공(斷空)에 빠져 버립니다. 하나의 공이 양단과
같아서 두 가지가 다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의 공이란 차(遮)로서
부정을 말하고, 양단과 같다는 것은 조(照)로서 긍정을 말합니다.
‘양단을 버리면 하나의 공이 된다’는 것은 양단을 부정하는(雙遮)동시에
양단을 긍정한다(雙照)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둘을 버리고 하나가 되면
그 하나가 바로 둘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공이 둘과 동일하게 원융무애하므로 완전히 쌍차쌍조(雙遮雙照)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삼라만상이 하나의 공 가운데 건립되어 있다고
하는 뜻이 됩니다.
결국 우리가 변견을 떠나 자성을 깨치고 중도를 성취하면 쌍차쌍조(雙遮雙照)의
차조동시(遮照同時)가 되어 삼라만상과 항사묘용이 여기에 원만구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空)이라 해서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일체가 원만구족한 것을 공이라 하며 공이 또 공이 아니어서(不空),
일체 삼라만상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0.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不見精추어니 寧有扁黨가
불 견 정 추 영 유 편 당
앞 구절에서 ‘하나의공’이란 공공적적(空空寂寂)하여, 일체의 명상(名相)이 떨어져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공이 양단과 같으므로 일체 삼라만상 그대로가 중도 아님이 하나도 없습니다.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도 중도 아님이 없으므로, 사사무애(事事無碍)한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차별이 벌어지게 되어서 삼라만상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차별이 벌어진다고 하니 어떤 실제의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차별이 벌어져 드러났다 하여도 기기에 세밀함과 거칠음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이 곧 공이 아니며 공 아님이 곧 공이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여전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산이라느니 물이라는 생각과, 산은 높고 물은 푸르다는 등 이러한 견해가 있으면, ‘한 가지 공이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다 포함한다’는 뜻을 확실히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쌍차쌍조(雙遮雙照)하여 차조동시(遮照同時)한 무장애법계에 있어서는 세밀함과 거칠음을 볼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쪽으로 치우치고 편벽된 것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모든 상이 다 떨어져 원융무애하고 대자재한 것을 말한 것이지, 세밀함과 거칠음이나 편당(편당)을 가지고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누구든지 세밀함과 거칠음에 기우는 편당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하나의 공이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다 포함한다’는 도리는 절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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