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한마디 말 듣고 자손을 가려냄/ 동산 효총(洞山曉聰)스님
동산 효총(洞山曉聰)스님은 소주(韶州) 곡강현(曲江縣) 사람으로, 문수 응천 진(文殊 應天眞)스님을 친견하였다. 처음 여산(廬山)을 돌아다닐 때 스님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운거 도응(雲居道膺 ?~901)스님의 법회가 가장 융성하였는데 효총스님은 그 곳의 등두승(燈頭僧 : 등불 관리자)으로 있었다.
한번은 여러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 사주(泗州)의 승가 대사[僧伽婆羅 : 479~524, 梵僧]가 양주(楊州)에 나타났다고 하자 한 스님이 “그는 사주(泗州)의 대성이신데 어째서 양주에 나타났을까?”라고 의심하였다. 이에 스님이 말하였다.
“군자는 재물을 사랑하지만 재물을 취하는 데에는 도가 있다.”
이 말에 모든 스님들은 크게 웃었다. 어느 스님이 연화봉 상암주(祥庵主 : 子祥實性)에게 갔을 때 이 이야기를 말하니, 상암주는 크게 놀라며 “운문의 자손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하고 밤중에 운거산(運居山)을 항하여 절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효총스님의 이름은 총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상암주는 봉선 도심(奉先道深)스님의 법제자였는데 지견이 매우 높고, 기세는 여러 스님을 압도하였다. 한번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이 일은 가장 급하고 간절한 일이다. 반드시 밝혀내야 비로소 되었다 하리라. 만일 밝게 깨달았다 하더라도 얽매임이 없어야 어느 곳에서나 편안하고 한가로울 수 있으며, 또한 마음을 억누르려 해서도 안되니 모름지기 자연스럽게 옛 발자취에 부합되어야 한다. 이제 겨우 공부할 단계에서 벗어나는 도리를 불법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쉬어질 수 있겠는가?”
상좌가 그만 하시라고 청하여도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임종 때에는 법당에 올라 주장자를 들어올리며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말해 보아라. 옛 부처가 여기 오셨는데 무엇 때문에 머물려 하지 않는가를.”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다시 스스로 말하였다.
“그들이 가는 길에 힘을 얻지 못하였도다.”
또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는 주장자를 어깨 위에 비껴 얹으면서 말했다.
지팡이 비껴 메고 사람 돌아보지 않은 채
천봉만학(千峯萬壑) 깊은 곳으로 들어가오.
榔標橫擔不顧人 却入千峯萬峯去
말을 마치고 열반하니, 아! 오늘날의 학인들은 식견과 취향이 옛분들과 어쩌면 그렇게도 동떨어지는지.
상암주는 효총 등두(燈頭)의 한 마디 말을 듣고서도 그가 운문의 자손임을 알았으며, 뒷날 그의 예언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오늘날엔 얼굴을 마주하고 일생 동안 논변을 하면서도 삿된지 바른지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마저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스님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처럼 초연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사실로 미뤄보아 평소에 드높은 수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법통을 계승한 자가 없다.
상암주는 서봉 운활(西峯雲豁)스님과 형제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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