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사료간과 외위군신의 게
탁주(涿州)의 극부(剋符)도인은 임제스님을 친견하였으며 기변(機辯)이 뛰어났다. 종문(宗門)에서는 4료간(四料簡)*으로 불조의 종지를 삼았는데 게를 지어 그 뜻을 밝혔다.
사람은 빼앗아도 경계는 뺏지 않는다 함은
스스로 뒤섞임과 그릇됨의 인연 때문
현묘한 뜻을 구하고자 생각하다가
헤아리면 도리어 꾸지람을 얻는 법
빛나는 여의주 광채 현란하지만
달그림자 너울너울
본체를 마주보되 어긋남이 없으면
도리어 그물 속에 갇혀버리리.
奪人不奪境 緣自帶誵訛
擬欲求玄旨 思量反責麼
驪珠洸燦爛 蟾桂影婆娑
覿體無差互 還應滯網羅
경계는 빼앗아도 사람을 빼앗지 않는다 함은
그 말뜻 찾아보니 어느 곳을 말했는지
선을 물으면 그 선은 망령이요
이치를 생각하면 그 이치 못얻는 것
햇살 내리쬐니 말쑥한 기상 담담하고
산이 아득하니 푸르른 빛 새로와라
설령 현묘한 뜻 얻었다 해도
두 눈엔 껄끄러운 티끌이라네.
奪境不奪人 尋言何處言
問禪禪是妄 究理理非親
日照寒光淡 山遙翠色新
直饒玄會得 也是眼中塵
사람과 경계 모두 빼앗는다 함은
예전부터 바른 법 행했으니
부처님 조사니 논하지 말라
성인과 범인를 어떻게 말을 하리
천하 명검을 만지려다
도리어 나무에 부딪치는 장님되는 격
앞으로 나아가 묘한 깨침 찾아
분발하여 정령(精靈)을 일신하오.
人境兩俱奪 從來正今行
不論佛與祖 那說聖凡情
擬犯吹毛劍 還如値木盲
進前求妙會 特地斬精靈
사람과 경계 모두 빼앗지 않는다 함은
생각해도 치우친 마음 없고
주인과 객의 말이 다르지 않아
주고받는 말 가운데 진리 모두 온전하니
맑은 연못 밝은 달 밟아나가고
파아란 저 하늘 열어젖힌다
묘한 작용을 밝히지 못하면
구렁텅이 빠진 몸 인연 없으리.
人境俱不奪 思量意不偏
主賓言不異 問答理俱全
踏破澄潭月 穿開碧落天
不能明妙用 淪溺在無緣
동산 오본(洞山悟本)스님은 ‘5위군신(五位君臣)’*으로 강요(綱要)의 표준을 삼고, 또한 스스로 게를 지어 그 아래에 붙였다.
‘정중편(正中偏)’이라
야반삼경 첫날 밤 밝은 달 아래
서로 만나 모르는 걸 달리 생각마오
가슴 속에 끈끈히 지난 날의 미움 생각하네.
正中偏 三更初夜月明前
莫怪相逢不相識 隱隱猶懷昔日嫌
‘편중정(偏中正)’이라
눈 어두운 노파 옛거울 마주하여
얼굴을 비춰봐도 다를 것 없어라
자기 얼굴인 줄 모르고 그림자라 잘못 알지 마오.
偏中正 失曉老婆逢古鏡
分明覿面更無他 休更迷頭猶認影
‘정중래(正中來)’라
‘없는’ 가운데 세상사 벗어날 길 있으니
오늘날의 금기사항 범하지 않는다면
전조에 혀 잘린 재사 보다야 천만번 나으리 (앞 페이지 [59. 지조의 정확한 기록/ 무진거사]편 참조.)
正中來 無中有路出塵埃
但能莫觸當今諱 也勝前朝斷舌才
‘편중지(偏中至)’라
두 칼날 부딪칠 때 피하지 않으니
그 또한 좋은 적수 불 속의 연화처럼
분명히 하늘에 솟구치는 기상 간직하네
偏中至 兩刃交鋒不須避
好手還同火裏蓮 宛然自有衝天氣
‘겸중도(兼中到)’라
‘유무’에 떨어지지 않고서 그 누가 융화하랴
누구나 보통사람보다 훌륭하길 원하지만
어거지 함을 쓰면 숯더미 속으로 돌아가오.
兼中到 不落有無誰敢和
人人盡欲出常流 折合還歸炭裏坐
임제 · 동산 두 종파[兩宗波]에서는 서로 큰 법을 밝혔으나 이 게송의 귀절은 세인들이 베껴쓰는 과정에서 수없이 뒤바뀌게 되었고,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느라 옛스님의 뜻을 잃기까지 하였다. 나는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 오다가 오늘날에야 여기에 고본(古本)을 기록하여 많은 전사본(傳寫本)의 오기(誤記)를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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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료간(四料簡 : 네가지 표준) : 주관과 객관의 차별이 무화(無化)된 평등한 경계에 이르는 네 단계. 인경(人境)의 대법(對法)을 써서 설명하는데, 인(人)은 인식주관, 경(境)은 객관대상을 말한다.
.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 : 자기를 부정하고 객관대상을 관찰함.
.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 : 바깥경계를 부정하고 안으로만 몰입함.
.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 주관 · 객관을 모두 부정하여 차별없는 경계에 이름.
.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 : 주관 · 객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 5위 군신(五位君臣: 五偏五位) : 정(正)은 이(理) · 체(體) · 공(空) 등이고, 편(偏)은 사(事) · 용(用) · 색(色) 등의 뜻이다. 여기서 이(理) · 사(事)의 대법(對法)으로 설명하자면,
· 정중편(定中偏)은 이(理)를 바탕으로 사(事)를 체현함
· 편중정(偏中正)은 사(事)를 통해 이(理)로 들어감
· 정중래(正中來)는 정위(定位)를 독립적으로 드러냄
· 편중지(偏中至)는 연(緣)에 따라 주는 편위(偏位)를 드러냄
· 겸중도(兼中到)는 이사(理事)가 동시에 없어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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