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92. 염불참회/ 연경 홍준(延慶洪準)스님

쪽빛마루 2015. 1. 12. 09:30

92. 염불참회/ 연경 홍준(延慶洪準)스님

 

 연경 홍준(延慶洪準)스님은 계림(桂林) 사람으로 여러 해 동안 황룡 혜남스님과 교류하였다. 타고난 천성이 순수하고 지극하여 일찌기 남의 마음을 거슬리는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착한 점을 이야기 들으면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좋아하여 양미간에 기쁜 기색이 돌았다. 한편 다른 사람의 나쁜 일을 들으면 반드시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 깊은 참회에 잠긴 듯하니,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의 참다운 성의는 이와같이 시종 한결같았다.

 만년에 사중의 일을 맡아보지 않고 한계사(寒溪寺)에 주석하였는데 그 당시 나이는 이미 80세가 넘었다. 스님은 평소 아침 저녁으로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먹고 잠자는 이외에는 오로지 범음(梵音)을 외며 관세음보살을 부를 뿐이었다. 임종 때에는 문도들은 모두 음식공양하러 떠나버리고 머슴 한 사람만 있었다. 스님은 경쇠[磬]를 들고서 토지신을 모신 사당 앞에 앉아 「공작경(孔雀經)」을 한 차례 외우고 결별을 고했다. 그런 뒤 편히 앉아 눈을 감았는데 사흘 동안 앉은 그대로 몸이 기울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친견하자 스님은 갑자기 눈을 뜨고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면서 땅에 앉으라 하였다. 얼마 후 문도들이 들어오자 스님이 그들을 불러 오른편에 서게하고 손을 잡으니 마치 끊는 밥처럼 뜨거웠다. 한참 후 고요하기에 살펴보니, 스님은 벌써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러나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양볼이 붉어 마치 산사람 같았다. 이에 문도와 속인들은 스님의 소상(塑像)을 만들어 감실(龕室)에 봉안하였다.

 나는 지난날 스님이 살던 토굴을 지나는 길에 찾아 뵙고 일생동안 남모르게 수행하고 은밀히 도를 펴면서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는 고매함에 감탄하였는데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이와 같이 초연하니, 참으로 대장부이다.

 8지(八地)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아 일체 만법을 허공처럼 관하여도 이는 오히려 무심을 점차로 증득한 점증무심(漸證無心)이고, 10지(十地)의 경지에 이르러도 두 가지 번뇌[二愚]가 남아 있으며, 등각(等覺)에 들어가서도 조금도 무명(無明)이 다하지 않고 가느다란 실연기처럼 남아 있기에 아직 참회를 하는 것이다. 홍준스님께서 염불을 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른 것 또한 스스로를 다스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