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황벽 단제(黃檗斷際)선사
스님은 백장스님의 법제자이며, 법명은 희운(希運)으로 민(閩) 땅 사람이다. 처음 천태산을 돌아다니다가 한 스님을 만났는데 마치 옛부터 아는 사이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을 자세히 보니 사람을 쏘아대는 빛이 있었다. 그와 동행하는 길에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나자 지팡이를 세워둔 채 걸음을 멈추고 있으려니 그 스님은 스님을 끌어당기며 함께 건너자는 것이었다.
“형 혼자 건너시오.”
그는 곧 옷을 걷어 올리고 신발을 신은 채로 땅을 걷듯 물을 건너가면서 뒤돌아보며 말하였다.
“건너 오시오, 건너 와!”
스님은 쯧쯧 혀를 차면서 말하였다.
“스스로 깨달은 체하는 놈아, 그런 줄 진작 알았더라면 네놈의 정강이를 분질러 놓았을 것을...”
그는 감탄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대승다운 근기다. 나로서는 따라갈 수가 없구나.”
말을 마치자마자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백장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느냐?”
“대웅산 아래서 버섯을 따왔습니다.”
“호랑이를 만났느냐?”
이 말에 스님이 갑자기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자 백장스님은 도끼를 집어들고 찍으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이에 스님은 백장스님에게 주먹을 한 방 날리니, 백장스님은 껄껄 웃고 돌아갔다.
상당하여 법문을 하였다.
“대웅산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으니 잘 살펴 다녀라. 나도 오늘 몸소 한 차례 물렸노라.”
스님이 남전스님 회하에 수좌로 있을 때, 하루는 바리때를 들고 남전스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전스님이 큰방에 들어서다가 보고는 스님에게 말하였다.
“수좌는 도를 얼마나 닦았는가?”
“위음왕불(威音王佛 : 최초의 부처) 전부터입니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내 손자뻘이지.”
스님은 마침내 두 번째 수좌[第二座]로 지냈다. 스님이 떠나올 때 남전스님은 산문까지 전송나왔다가 스님의 삿갓을 쳐들어올리면서 말하였다.
“장로의 몸은 헤아릴 수 없이 큰데 이 삿갓이 너무나 작다.”
“그렇지만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이 속에 있습니다.”
“이 왕노사까지도...?”
스님은 삿갓을 쓰고 곧장 떠나버렸다.
스님이 염관(鹽官)스님 밑에 있으면서 예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당나라 선종(宣宗) 황제는 사미승으로 있었는데 스님에게 물었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스님에게 집착하여 구해서도 안된다 하였는데 장로는 무엇에다 예불을 하십니까?”
“부처에게도 법에도 스님에게도 구하지 않고 항시 이렇게 예불하는 일이다.”
“예불하여 무엇하려고요?”
스님이 사미승의 빰따귀를 후려치자 사미가 말하였다.
“너무 거칠군!”
“이곳이 이딘 줄 알고 거치느니 고우니 지껄여대느냐.”
그리고는 한차례 더 때렸다. 그 후 선종이 즉위하여 마침내 그를 ‘거칠은 중[鹿行沙門]’이라 이름 붙이자 재상 배휴(裵休 : 957~890)는 이렇게 간언하였다.
“세 차례 때린 것은 삼제(三際) 번뇌를 끊어주려 함이니, 법호를 ‘단제(斷際)’로 바꾸어 주십시오.”(이런 연유로 ‘단제(斷際)’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한다.)
하루는 여섯 명의 신참승이 선사를 찾아왔는데 다섯 사람은 절을 올렸으나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좌구를 들어올려 원(圓)을 그려 보일 뿐이었다. 이에 스님은 그에게 말하였다.
“내 듣자하니 사냥개 한 마리가 있다 하던데 꽤 사납구나.”
“영양(羚羊)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영양에겐 네가 찾아올 만큼 그러한 울음소리는 없다.”
“영양의 발자국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영양은 네가 찾아올 만큼 그러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영양의 발꿈치를 따라 찾아왔습니다.”
“영양은 네가 뒤따라올 만큼 다닌 일이 없다.”
“그렇다면 죽은 영양이 아닙니까?”
이에 스님은 아무 말 않고 내버려 두었다. 이튿날 법당에 올라 말하였다.
“어제 영양을 찾아왔다는 스님은 앞으로 나오너라.”
그 스님이 앞으로 나오자 물었다.
“이 노승이 어제 그 공안을 끝마치지 않고 그만둔 일을 어떻게 보느냐?”
그런데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나는 진짜 납승인가 하였더니 원래 교학이나 하는 중이었군!”
그리고는 그를 때려 내쫓은 뒤 대중법문을 하였다.
“너희들은 모두가 술찌끼나 먹는 놈들이다. 이따위로 행각하고서야 어느 곳에 오늘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 당나라에 선사가 없는 줄을 아느냐?”
그때 한 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지금 제방에서 문도를 가르치고 대중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禪)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선사가 없다는 것이다.”
스님의 속가는 몹시 가난하였다. 늙은 어머니는 스님이 황벽산의 주지로 있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찾아왔지만 스님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에 노모는 굶주림과 추위로 대의(大義) 강 나루터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져 죽었다. 그 후 모친은 과연 천상에 태어났으며 스님의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내가 그때 쌀 한 톨이라도 받았더라면 나는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니, 어찌 오늘이 있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두 번 절하고 사라졌다.
스님은 어느 날 주먹을 움켜주고서 말하였다.
“천하 노스님이 모두 이 주먹 속에 있다. 내 만일 한 가닥 길을 터주면 그들은 자재해지겠지만 터주지 않는다면 손끝 하나 까딱할 것이 없다.”
이때 한 스님이 물었다.
“손끝 하나 까딱할 것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넓다[普] !”
어느 날 재상 배휴가 불상 하나를 받들고 찾아와 스님 앞에 무릎을 끓고서 말하였다.
“청하옵건대 스님께서 이 부처님의 이름일 지어 주십시오.”
스님은 “배휴!”하고 부르자 배휴가 “녜!”하고 대답하니 스님은 “그대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하였다.
천경 초남(千頃楚南 : 813~888)스님이 스님을 찾아뵙자 스님이 말했다.
“3계의 영상(影像)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어떤가?”
“그렇다면 지금이 어떻게 있겠습니까?”
“있고 없고는 그만두고 지금은 어떠한가.”
“예도 아니고 지금도 아닙니다.”
“나의 법안(法眼)이 나의 몸에 있었구나.”
스님이 말하였다.
“어쩌다가 세상 일을 만나면 그 이치는 체득하지 못하고 말만 배워 가죽부대 속에 넣을 줄만 알아서는 가는 곳마다 ‘나는 참선을 아노라’고 떠벌리지만 생사를 뒤바꿔 놓을 수야 있겠는가? 늙은이 말을 가볍게 여기면 쏜살같이 지옥에 빠지리라.”
찬하노라.
거칠은 스님은
조금도 얽매임 없어
대당천자를 때리니
얼굴이 피처럼 붉고
어린아이 임제를 때리니
몽둥이가 비오듯 하였다
대웅산 아래 뛰쳐나온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이 없고
대의강 나루에서 넘어진 어머니는
은혜와 원수를 가리지 못하였네
위음왕불 이전에 도를 행하였다고 자리 다투니
평지에서 서로 물고 뜯고 하였구나
백장이 사흘동안 귀먹었단 말을 듣고
놀라서 혀를 내니 뿌리까지 뒤집혔노라
영양은 종적이 없어서
사냥개가 찾기 어려울 줄 알았고
물결 일렁대는 개울가에서
오랑캐 중놈에게 속아넘어갔다네
작은 삿갓 속에 대천세계 감추니
어느 곳에 왕노사를 찾을손가
거친 주먹으로 천하의 스님 주무르고
때때로 한 가닥 길을 터주네
천경에게 내 법안이 너에게 있다 하여
어거지로 귀신과 장물을 나누고
배상국의 불상에 이름을 붙여주니
깨끗한 몸이 더럽혀졌구나
술찌끼 핥아먹을 놈아
당나라에 선사가 없는 줄을 아느냐
노승을 업신여기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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