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대양 경현(大陽警玄) 선사
/ 942~1027
스님의 법명은 경현(警玄)이며, 양산 연관(梁山緣觀)스님의 법제자로 강하 장씨(江夏張氏) 자손이다. 스님의 둘째 삼촌이 지통(智通)이라는 스님으로 금릉 숭효사(崇孝寺)에 주지로 있었다. 스님은 그에게 가서 제자가 되었는데 「원각경」을 듣고는 그곳을 떠나 양산스님을 찾아 뵙고 종지를 깨쳤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높고 가파른 만길 벼랑, 새마저 날기 어려운 곳인데 칼날과 얇은 얼음을 누굴 믿고 밟겠는가. 종승(宗乘)의 오묘한 한마디를 말로는 하기 어려우니, 둘 아닌 법문[不二法門]으로 유마거사는 입을 다물었다. 이 때문에 달마대사도 9년 동안 면벽한 후에야 비로소 알아주는 이를 만났는데, 나 대양은 오늘도 공연한 짓거리를 했구나. 몸 조심하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병에 가득 찬 물을 쏟아낼 수는 없으나 온 누리에 굶주린 사람은 없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저쪽 성인들의 경지 밖에서 손을 뿌리치니 조사당(祖師堂)이 있는 소실봉(少室峰)에는 뿌리와 싹이 자란다. 백로가 흰 눈 둥지에 선 것은 그래도 옳다 하겠지만 다시 보니 하얀 새가 갈대꽃 속으로 날아든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그대들은 늘 그러해서 생멸이 없는[平常無生] 도리와 오묘해서 사사로움이 없는[妙玄無私] 도리와 바탕이 밝아 다함이 없는[體明無盡] 도리를 밝혀야 한다. 첫마디[第一句]에 한 가닥 길이 뚫리고, 둘째 마디에 주객이 없어지며, 셋째 마디에는 모두를 수반해 가는 것이다. 한마디에 말을 해내면 사자가 이맛살을 찡그리고 신음할 것이요, 두 마디에 말할 수 있으면 사자가 돌아서서 덤벼들 것이요, 세 마디에 말할 수 있으면 사자가 땅에 버티고 앉을 것이다. 그리하여 놓아주면 시방에 두루하고 잡아두면 단박에 그 자리에 눌러앉을 것이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소식을 통할 수 있겠는가?
대중이여! 증명해 보라. 만일 통할 수 없거든 내일 아침에 다시 초왕(楚王)에게바쳐 보아라.”*
이때 한 스님이 앞으로 나와 물었다.
“무엇이 ‘늘 그러해서 생멸이 없는 도리’입니까?”
“흰 구름이 푸른 산을 덮으니 청산의 꼭대기가 보이질 않는다.”
“무엇이 ‘오묘해서 사사로움이 없는 도리’입니까?”
“대궐에는 천자를 모시지 않는 신하가 없으나 오동을 심지 않으면 봉황이 날아오지 않는다.”
“무엇이 ‘바탕이 밝아 다함이 없는 도리’입니까?”
“손으로 허공을 가릴킬 때 천지가 빙빙 돌더니만 머리를 돌려보니 돌로 만든 말[石馬 : 貴人의 묘 앞에 세우는 호석]이 청사초롱에서 나오는구나.
“무엇이 사자가 이맛살을 찡그리고 신음하는 것입니까?”
“되돌아볼 마음이 전혀 없는데 평상심에 떨어지려하겠느냐?”
“무엇이 사자가 돌아서서 덤벼드는 것입니까?”
“주위를 맴돌며 오가는 것은 모두 아비에게 돌아가니 떠들썩하게 큰 작용을 일으키나 본체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
“무엇이 사자가 땅에 버티고 앉아 있는 것입니까?”
“오가는 기연을 딱 끊어버리면 고금에 변함이 없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한밤중에 오골계가 고니 알을 품더니만 날이 밝아 일어나 보니 늙은 황새를 낳았다. 이 새는 황새 털에 매 부리에 해오라기 몸인데, 도리어 까마귀를 짝을 이루어 높이 연기 구름 속을 날고 낮게는 수양버들 언덕을 날다가 해가 저물어 돌아오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어렴풋이 구름 속을 나는 기러기를 닮았더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한마디입니까?”
“큰 바다 밑에서 붉은 티끌이 일어나고 수미산 꼭대기에 강물이 가로 흐른다.”
스님은 나이 80이 되었는데 법을 이을 제자가 없음을 한탄하였다. 그리하여 게송을 짓고 아울러 가죽신과 승복을 법원(法遠)스님에게 맡기면서 법통을 이을 만한 인물을 찾아 전하도록 하였다.
양광산(楊廣山)의 풀은
그대에게 부탁하여 좋은 값을 기대하노니
기이한 풀싹들이 우거진 곳에
신령한 뿌리를 깊고 빽빽하게 굳혀 주소서.
楊廣山前草 憑君待價焞
異苗蕃茂處 深密固靈根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의 법통을 이을 사람은 10년 동안 대중 속에 묻혀 살아야 비로소 법을 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스님은 절하고 이를 받아 놓았다.
스님은 조산 본적(曹山本寂)스님의 ‘세 가지 빠져들어감[三種墮]’이라는 법문에 주석을 붙였다.
“이를 알려면 전위(轉位 : 洞山五位를 轉換하는 일)를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물소(水牯牛)가 되는 것이다. 이는 부류에 따라 빠져들어감[隨類墮]이니 사문이 몸을 바꾸는 일이며 다른 부류 가운데에서 수행하는 일이다. 만일 이 뜻을 깨닫지 못하면 막히는 것이 있을 것이요, 한 생각에 사사로운 마음이 없으면 몸을 빼낼 길이 있을 것이다.
둘째는 밥을 받지 않음[不受食]이니 이는 존귀에 빠져들어감[尊貴墮]이다. 반드시 저쪽을 밝게 깨치고서 이쪽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만일 이 지위를 비우지* 못하면 곧 존귀에 앉게 될 것이다.
셋째는 소리와 모습을 끊지 못함[不斷聲色]이니, 이는 가는 곳마다 그곳에 빠져들어감[隨處墮]이라 한다. 소리와 모습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가는 곳마다 그곳에 떨어지는 것이니 소리와 모습 속으로 들어가면 그 곳에 빠져나오는 길이 있을 것이다. 무엇이 소리와 모습 밖의 도리인가? 소리는 자체가 소리가 아니오, 모습은 자체가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끊지 못한다 하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가리키라 하면 어떤 손바닥을 가리킨단 말인가?”
부산 법원스님은 스님의 초상화에 찬(贊)을 썼다.
검둥개는 은빛 발이 빛나고
하얀 코끼리를 검둥이가 타고 간다
이 두 가지에 막힘이 없으니
목마(木馬)가 불꽃 속에서 울도다.
黑狗爛銀蹄 白象崑崘騎
於斯二無碍 木馬火中嘶
찬하노라.
악독한 종자에서
이처럼 꽃다운 아이가 나오다니
한양 나루터에서 뱃속을 가로채 나왔고
지통사에서 유난히도 걸림없이 살았네
원각경 강당을 뒤집어놓고
말로 미치지 못하는 곳에 뛰어들어
해묵은 옛 거울을 깨뜨려
부모에게서 낳기 전의 모습을 비춰 보았노라
말로는 참으로 설명키 어려워
선종의 깊은 법문, 흙에다 재를 섞어버렸고
병에 가득 찬 물을 쏟아내지 않으니
온 누리 사람이 허기를 참고 굶주림을 삼키노라
일천 성인의 경계 밖에서 손을 뿌리치고서
갈대꽃 속으로 웃음지며 백마타고 들어가네
대궐 안에 천자를 모시는 신하 없는데
오동을 심었으니 어이 봉황이 살지 않겠나
소식 이미 통했으나
애석하게도 사자는 발톱으 갖추지 못하고
기연이 맞지 않아
청산에서 부자가 서로 엇갈리게 되었다
수미산 꼭대기에 강물이 가로 흐르니
법신을 꿰뚫어도 의심덩이 깨지 못하고
양광산 꼭대기에 풀이 무성하니
유언을 전하는 늙은 얼굴엔 눌물이 얼룩졌네
양산 노스님에게 많은 설움 받음을 괴로워했으나
오골계가 고니 알을 낳았고
원록공의 얼버무림을 적지않게 받았으나
검둥개는 발이 은빛처럼 빛났다
성색(聲色)더미 위에서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억지를 피우니
어설픈 좌주가 아닌 바에야
누가 그대의 떨어진 가죽신과 너털거리는 납의를 받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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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卞和)라는 이는 보배구슬을 갖고 있었는데 초왕에게 바쳤으나 믿어주지 않아 형벌만 당하고 쫓겨나서 다음날 다시 바쳤다......
* ‘비우지[處] ’는 ‘자리하지[處]’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卍 속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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