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단하 자순(丹霞子淳) 선사
/ 1064~1117
스님은 부용스님의 법을 이었고 법명은 자순(子淳)이며 검주 가씨(劍州賈氏) 자손이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덕산 선감(德山宣鑑)스님은 ‘우리 종문에는 말과 문자가 없고 사람들에게 줄 아무 법도 없다’고 하였다. 덕산스님의 이 말씀은 풀 속에 들어가 사람을 찾을 줄만 알았지 자기 몸이 온통 진흙투성이인지는 모른 것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한 쪽 눈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 종문에는 말과 문자가 있는데 금칼로 쪼개도 벌어지지 않으며, 깊고 깊은 현묘한 뜻은 석녀가 밤에 아이를 가졌다’ 하리라.”
대중에게 말하였다.
“승조(僧肇)법사가 ‘하늘과 땅, 우주의 사이 그 가운데 보배 하나가 있는데 형산(形山)에 감춰져 있다’하였는데, 승조법사의 이 말은 자취만을 가리켜 말할 줄 알았지 아직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이 단하가 오늘 우주를 제쳐 열고 형산을 깨부수어 여러분에게 꺼내 보일 것이니, 눈 있는 자들은 살펴보아라.”
주장자를 한 차례 내려치고 말을 이었다.
“보이느냐?
해오라기가 눈 속에 서 있으나 같은 색이 아니오, 밝은 달에 갈대꽃은 서로 같지 않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보배 달은 휘영청 흐르고 맑은 연못에 달 그림자 비치나 물은 달을 맞이할 뜻이 없었고 달은 여러 곳에 나눠 비출 마음이 없으니 물과 달을 모두 잊어야 바야흐로 끊었다 할 것이다. 옛말에도 ‘하늘에 오르는 일이라면 곧 바로 올라가야 하고 10성(十成 : 완전한 것)의 일은 곧바로 떠나야 하니, 땅에 집어던져 쨍그랑 쇠소리가 나도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하였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비로소 ‘다른 류 가운데에서 행한다[異類中行]’는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이쯤되면 여러분들은 모두들 자세히 알겠느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길을 갈 때는 인간의 발걸음을 들지 말아라. 털을 쓰고 뿔 돋힌 축생이 진흙수렁에 뒤섞여 있으니...”
상당하여 말하였다.
“높다란 한낮의 태양도 반쪽은 그늘져 있고 고요한 야반삼경의 달도 완전히 둥글지는 않다. 여섯 집[六戶 : 여섯 감각기관 즉 신체]에서는 한번도 새벽이 오는 뜻을 알지 못하고 항상 달이 밝기 전에 오가고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우두법융(牛頭法融 : 594~657)스님이 사조도신(四祖道信 : 580~651)스님을 친견하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노란 국화꽃 피자 벌들이 다투어 꿀을 모은다.”
“친견한 후에는 어떻습니까?”
“잎새가 마르고 꽃잎이 지니 전혀 의지할 곳이 없다.”
진헐청료(眞歇淸了)스님이 찾아오자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공겁(空劫) 이전의 자기 모습인가?”
진헐스님이 대답하려는데 “네 마음이 시끌법석대는구나. 가거라!”하였다.
어느 날 진헐스님이 바루봉(鉢盂峰)에 올라갔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절에 돌아와 스님을 모시고 서 있자 스님은 그의 뺨을 치며 말하였다.
“나는 네가 뭔가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진헐스님은 얼른 절을 올렸다.
그 이튿날 상당하여 말하였다.
“햇살이 비치니 외로운 봉우리 푸르고, 달이 뜨니 시냇물 차갑구나. 조사의 현묘한 비법을 한 조각 마음속에 넣어두지 말아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자 진헐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오늘 법좌에 오르셔서는 다시 저를 속일 수 없습니다.”
“한번 말해 보아라. 내가 오늘 법좌에 올랐던 일을.”
진헐스님이 한참을 잠자코 있자 스님은 말하였다.
“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무슨 경지를 본 줄 알았다.”
그러자 진헐스님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굉지정각(宏智正覺)스님이 찾아오자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공겁 이전의 자기 모습인가?”
“우물 안 청개구리가 달을 삼키니 야반삼경에도 야명주 주렴을 빌리지 않습니다.”
“아직은 안된다. 다시 말해 보아라.”
굉지스님은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은 불자로 한 대 후려치며 말하였다.
“빌리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말해 봐라.”
굉지스님은 이 말끝에 크게 깨쳤다.
찬하노라.
빛나는 진주가 조개 속에 있고
학이 닭의 무리에 섞여 있도다
목불(木佛)을 태웠던 유풍(遺風)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복조부(鵩鳥賦 : 賈誼의 글)를 가보(家譜)에서 몸소 들었네
마음의 빛 점찍어 낸 꽃 촛불은
등주(鄧州)에서 온 것이며
번뜩이는 살기 서린 검문관(劍門關)에는
구름다리와 누각이 구름에 이어졌네
옥녀(玉女)가 임신하기는 야반삼경이면 족하나
현묘한 종지는 깊고 얕음을 가리기 여려우며
흰 백로가 눈속에 서 있으나 같은 색이 아니라
형산(形山)의 보배는 한푼 값어치도 안된다
물과 달, 모두 잊으면
하늘에 오를 일은 처음부터 바람타고 내려왔어야 하고
티끌과 진흙이 뒤섞였으니
다른 류[異類] 가운데에서 정성을 아끼지 말라
달빛이 분명치 않을 때
육호(六戶)가 새벽이 오는 뜻을 모르는 줄 알았고
우두가 사조를 만난 후에는
가여워라, 난만한 백화가 어지럽게 떨어지는구나
어둠속에 금 북을 던져 동산(洞山)의 고풍으로 실을 짜내니
울리는 베틀소리 가볍고 가볍구나
가느다란 옥실을 늘어놓고 조산(曹山)의 비단을 열어보니
촘촘한 무늬결을 이루어냈구나
위음불(威音佛) 이전에
보살의 백호광 모두 거둬 한 손바닥에 넣고
야명주 주렴을 빌리지 않고서도
공자의 필진(筆陣)을 사로잡아 천군을 소탕하였다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도
정중묘(正中妙)를 지니고 있으니
설령 황금칼로 면밀한 곳을 쪼갠다 하여도
변함없이 공훈(功勳)의 차별상에는 떨어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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