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7. 운거 효순(雲居曉舜) 선사

쪽빛마루 2015. 2. 7. 08:46

7. 운거 효순(雲居曉舜) 선사

 

 

 스님의 법명은 효순(曉舜)이다. 동산 효총스님의 법제자로 서주(瑞州) 사람이며 속성은 호씨(胡氏)다. 처음 동산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하루는 무창(武昌) 땅에 시주를 나갔다가 맨 먼저 유(劉)거사의 집을 찾아갔다. 유거사는 수행이 높은 사람으로 당시에 존경을 받았는데 마음내키는대로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하였지만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스님은 당시 나이가 어린 터라 유거사가 오래 수행한 사람인 줄을 모르고서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거사가 말했다.

 “이 늙은이에게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만일 맞추면 나에게 설법을 하셔도 좋지만 맞추지 못한다면 산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는 마침내 물었다.

 “옛 거울을 닦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옻칠처럼 새까맣습니다.”

 “닦은 후엔......”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춥니다.”

 거사는 두 손을 모아 읍(揖)하고서 “스님은 산으로 돌아가십시오”하고 소맷자락을 떨치며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스님은 부끄러워하며 돌아왔는데 동산스님이 물어서 그 일을 말하니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나에게 물어 보아라. 네에게 말해 주겠다.

 스님이 유거사의 첫 번째 질문을 하자 “여기서 한양까지는 멀지 않다”하였다.

 스님이 두 번째 질문을 하자 “황학루 앞에 앵무주.....”하는데 스님은 여기서 느낀 바 있었다.

 

 

 스님이 여산(廬山) 서현사(栖賢寺)의 주지로 있을 무렵 괴도관(槐都官)이 남강(南康) 태수로 있었는데 사사로운 감정으로 스님의 승적을 박탁하여 환속시켰다. 대각 회련(大覺懷璉)스님은 지난날 스님의 문하에 있었는데 스님이 환속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정인사(淨因寺)로 모셔와 정실[正寢]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구석진 방에서 거처하였다.

 당시 송나라 인종(仁宗)은 대각선사를 궁궐로 자주 불러들였으나 끝내 효순스님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하루는 우연히 가왕(嘉王)이 인종의 명으로 정인사에 와서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올리다가 대각스님이 효순스님의 곁에서 매우 공경히 모시는 것을 보고서 궁중으로 돌아가 이를 아뢰었다. 인종은 스님을 편전(便殿)에 불러들여 만나 보고서 “수도한 여운이 거룩하시니 참으로 산림의 훌륭한 분이다”하며 감탄하고는 부채 위에 글을 써서 스님에게 하사하면서 말하였다.

 “효순을 예전대로 승려가 되게 하고 특별히 다시 서현사 주지로 명하노라.”

 이어 붉은 가사와 은 바리때를 하사하였다.

 스님이 서현사에서 쫓겨날 때 두 하인이 스님을 가마에 태우고 가다가 나한사(羅漢寺)에 이르렀을 무렵, “이젠 우리 절의 노스님이 아니니 멀리까지 갈 게 없다”하고 가마를 버리고 돌아가버렸다.

 스님이 다시 서현사의 주지가 되자 먼저 사람을 보내 두 하인을 위로하였다.

 “너희들이 당시에 내게 한 일은 옳은 일이니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절에 이르러 상당하여 말하였다.

 “까닭없이 참소받아 억울하게 쫓겨나서 반년 속인이 되었다가 오늘 다시 삼협사로 돌아오니 기뻐할 이 몇이며 노여워할 이 몇인가.”

 

 상당하여 말하였다.

 “협산선회(夾山善會 : 805~881)스님은 ‘법석대는 저자에서 천자를 알아보고 온갖 풀끝에서 이 노승을 알아차려라’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아낙네가 베틀을 흔드니 덜거덕덜거덕하고 아이들이 입을 놀리니 왁자지껄하는구나.”

 

 

 스님은 항시 천의 의회(天衣義懷)스님이 갈등선(葛藤禪 : 어지러운 이론을 끌어들이는 선)을 설한다고 비웃어왔는데, 하루는 천의스님이 입적했다는 말을 듣고 법당에 올라가 말하였다.

 “기쁜 일이로다. 갈등의 말뚝이 넘어지고 말았다.”

 당시 원통 법수(圓通法秀)스님이 회중에 유나(維那)로 있으면서, 늘 천의스님을 욕하는 것을 보고 도반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늙은이에게 한 차례 따져보아야 하겠다.”

 야참법문 때에 스님이 또다시 천의스님을 욕하자 법수스님이 큰소리를 지르면서 대중 속에서 나아가 “듣지도 못했습니까 「원각경」에 이르기를......”하는데 스님은 갑자기 “오랫동안 서 있느라 수고가 많았다. 대중들아! 부디 몸조심 하라” 하고, 곧장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이에 법수스님은 말하였다.

 “이 늙은이는 온몸이 눈이라 천의선사를 욕할 만하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여러 총림에는 뱀 대가리를 가지고 노는 사람도 있고 호랑이 꼬리를 뒤적거리는 사람도 있고 큰 바다를 뛰어넘거나 칼날 속에 몸을 감추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곳 운거산 총림에서는 날씨가 추우면 더운 물에 발을 씻고 밤에는 속옷을 벗고 잠을 잔다. 이른 아침에는 돌아앉아 행전을 매고 바람에 울타리가 넘어지면 사람을 불러 대나무를 쪼개 울타리를 묶어 세울 뿐이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견고하고 비밀스런 몸이 티끌 세상 어디에나 나타나니 청개구리와 지렁이도 제각기 구멍이 있고 까막까치와 비둘기 뱁새 또한 둥지가 있다. 바로 이러한 때 어떤 사람을 위하여 설법한다는 말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하였다.

 “하는 일은 유(類)에 따라 모이게 되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 나누어진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나는 참선을 알지 못한다. 발 씻고 침상에 올라가 그저 잠을 잘 뿐. 동과(冬瓜)는 곧으나 아무 맛도 없고 조롱박은 꼬불꼬불 굽었구나.”

 

 

 스님은 어느 날 염관 제안(鹽官齊安 : ?~842)스님이 시자를 불러 “나의 물소뿔 부채(犀牛扇)을 가져오라!”고 말한 화두를 들어 염송하였다.

 “삼복더위에는 바야흐로 부채가 필요한데 시자가 되어 이 일을 몰랐구나. 비록 그렇다지만 염관스님도 너무 째째하지, 큰스님이 되어 어찌 시자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는지 당시 염관스님이 ‘부채가 이미 망가졌다면 내 물소를 돌려다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더라면 곧 그에게 ‘이미 쓰레기통 속에 집어넣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찬하노라.

 

 

험한 가시밭 속을 걸어왔으나

밝은 영성(靈性)은 어둡지 않다

 

하늘을 찌를 듯한 깊은 사원의 기다란 대나무며

눈 서리 이겨낸 바위에 차가운 전나무로다

 

삼협사(三峽寺)에 돌아왔을 때

오로봉에는 노여워할 이 몇이런가

앵무주에 걸터앉아

옛 거울 때려부수니 온갖 잡동사니가 부서졌구나

 

아낙네는 철거덕 철거덕 베틀을 당기는데

법석대는 저자에서 천자를 알아보더라는 진짜가 아니고

어린아이는 왁자지껄 입을 놀리나

풀끝마다 노승을 알아차릴 줄 모르네

 

온몸이 눈이라서

천의스님 갈등 말뚝이 넘어졌다 기뻐하였고

평지에 흙더미 생겨나니

괴도관이 억울하게 환속시킨 죄 우스워했구나

 

발 씻고 속옷 벗고 그저 잠만 자니

격식을 벗어난 생활이란 애당초 없고

사람불러 대나무 쪼개 울타리 세우니

이 또한 일상의 살림살이일 뿐이네

 

까막까치는 둥지를 틀고 청개구리 구멍에 사는데

견고하고 비밀한 몸은 티끌 속에 나타나며

동과는 아무 맛도 없고 조롱박은 꼬불꼬불한데

조사선은 말 밖을 멀리 벗어났도다

 

뱀 대가리 갖고 놀고 범 꼬리 뒤적거리며

여러 총림은 칼날 속에 그림자를 드러내며 몸을 숨기게 하고

망가진 부채로 물소에 물 끼얹으며

염관스님에게 똥무더기 위에서 둥근 덩이를 만드는구나 하였네

 

도의 운치는 거룩하여

산림의 훌륭한 이는 이름을 얻었고

합포(合浦)에 구슬 되어 돌아오니*

용 쟁반에 굴려보아도 아무런 흠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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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포(合浦)는 관동성 해동현(海東縣)으로 진주가 많이 났었는데 탐관오리들이 약탈하여 없어졌다가 후한 때 맹상군이 태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자 다시 돌아왔다는 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