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천의 의회(天衣義懷) 선사
/ 992~1064
스님의 법명은 의회(義懷)이며, 설두 중현스님의 법제자로 영가 진씨(永嘉陳氏) 자손이다. 대대로 고기잡이로 살아왔는데 그의 어머니가 별이 지붕 위에 떨어져내리는 꿈을 꾸었으며, 태어날 때 상서로운 징조가 많이 나타났다.
어릴 때 아버지의 고깃배 뒷전에 앉아 있었는데, 아버지가 고기를 잡아 꿰라고 건네주면 차마 꿰지 못하고 몰래 강물 속에 넣어 살려 주었다. 그의 아버지가 화가 나서 꾸지람을 했으나 달갑게 받고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자라서는 서울에 가서 경덕사(景德寺)에서 사미승이 되었고, 천성 연간(天聖 : 1023~1031)에 승과를 거쳐 도첩을 얻고 금란 유선(金鑾惟善), 섭현 귀성(葉懸歸省)스님 등을 찾아뵈었으나 모두 기연이 맞지 않았다. 낙양 땅을 거쳐 용문산에 이르렀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종풍을 이어볼까 생각하였으나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는데 생각치 않게 법화 지언(法華志言 : ?~1048)스님을 만나니 지언스님은 스님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운문종의 임제[雪竇重顯]를 찾아가라.”
그리하여 동쪽으로 고소산(姑蘇山)에 이르러 취봉사에서 명각(明覺 : 설두)스님을 뵙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실(入室)하였을 때 설두스님이 물었다.
“이렇게 할 수도 없고 이렇게 안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그것도 할 수 없다.”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설두스님은 때려 쫓아내버렸다. 이렇게 서너 차례 거듭하다가 얼마 후 수두(水頭 : 물 관리하는 스님)가 되었는데 어느 날 물을 지고 가다가 물지게가 부러지는 바람에 갑자기 깨닫고 ‘투기송(投機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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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길 산봉우리 끝에 한 쪽 발로 서 있네
검은 용 턱밑의 여의주를 빼앗으니
한마디에 유마힐을 감파했구나
一二三四五六七 萬仞峯前獨足立
奪得驪龍頷下珠 一言勘破維摩詰
설두스님은 이를 보고서 책상을 치며 좋다고 칭찬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가 철불사(鐵佛寺)에 주지하였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기러기가 허공을 지나갈 때 그림자가 찬 물 속에 잠기나 기러기는 발자취를 남길 뜻이 없었고 물 또한 기러기 그림자를 맞이할 마음이 없었던 것과 같다. 만일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른다면 비로소 ‘다른 류 가운에서의 수행[異類中行]’을 깨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오리의 짧은 다리를 이어주느라 학의 긴다리를 자를 게 없으며 산을 무너뜨려 산골짜기를 메울 것이 없다. 놓아주면 온갖 추태가 나오고, 거둬들이면 주먹을 꼭 쥐고 떨고 있다. 이를 쓰면 감히 팔대용왕(八大龍王)과 부를 겨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반푼어치도 안된다. 참구하라!”
다음에 평강(平江) 천복사(薦福寺)에 주지가 되어 혜림 약충(慧林若冲), 혜림 종본(慧林宗本), 법운 법수(法雲法秀), 장로 응부(長蘆應夫)스님을 배출하였고, 뒷날 방장실에다 ‘팽금로(烹金爐 : 쇠를 달구는 풀무)’라고 써 붙였다. 무위거사(無爲居士 : 楊傑)는 이를 찬하여 “충본수부(冲本秀夫) 네 사람은 네 분의 달마스님인데, 그 가운데 앉은 이는 쇠를 달구는 풀무이다”라고 하였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종사(宗師)가 되려면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자의 밥을 뺏앗아 먹어야 하며 미천한 사람을 만나면 귀해지고 귀한 사람을 만나면 미천해져야 한다.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으면 그의 곡식을 풍년들게 하고, 굶주린 자의 밥을 빼앗으면 그의 허기를 영원히 없애주며, 미천한 사람을 만나 귀해짐은 흙을 금으로 만드는 일이며, 귀한 사람을 만나 미천해짐은 금을 흙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 노승은 아직까지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은 일도 없고 굶주린 자의 밥을 빼앗아 먹은 일도 없다. 무엇 때문일까? 밭가는 농부의 소가 나에게 무슨 쓸모가 있겠으며 굶주린 자의 밥 또한 어떻게 먹겠는가? 나는 또한 흙을 금으로 만들지도 않고 금을 흙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금은 금이요 흙은 흙이며, 옥은 옥이요 돌은 돌이며, 중은 중이요 속인은 속인이며, 고금에 변함없는 천지 일월 산하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대산관(大散關)을 타파해야 하니 몇 사람이나 헤매다가 달마를 만났을까?”
상당하여 말하였다.
“수미산 꼭대기에서는 금종을 치지 않고 필바라(畢鉢羅 : 부처님이 좌선하던 바위) 바위에는 모여드는 사람이 없는데, 이 산승은 법당을 거꾸로 타고 여러분은 짚신을 뒤집어 신고 아침에는 단특산에서 놀다가 저녁에는 나부산을 찾아가니 주장자와 침통을 저마다 가져간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밤사이 찬 서리에 몹시 추워서 황하수에 얼음 얼고 섬부(陝府)이 무쇠소는 허리가 부러졌다. 모든 사람이 상고시대 여와씨(女媧氏)가 돌을 구워 구멍난 하늘을 막는다 말하지만 서천 한 모퉁이의 구멍은 어찌 하겠는가? 지금에 와선 내 여와씨와 함께 그곳을 막아볼까 하지만 온 누리 사람들이 숨쉴 곳이 없을까 두렵구나. 그래서 한 구멍은 그대로 두고 온 누리 사람들에게 숨을 쉴 수 있게 하였다. 참구하라!”
한 스님물었다.
“우두 법융(牛頭法融)스님이 사조 도신(四祖道信)스님을 친견하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만리장강은 유월이 따로 없다.”
“친견한 후에는 어떻습니까?”
“봄은 일년에 한 차례 온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소쩍새는 밤마다 울어대고 사막 꾀꼬리는 밤새껏 지저귄다. 원통문을 활짝 열어쳤는데 어인 일로 구름은 가로막혀 있을까.”
세상을 하직하며 말하였다.
“붉은 태양은 동쪽 나라를 비추고 찬 구름은 화악(華嶽)을 감쌌는데 야반삼경에 철갑산을 지나다가 검은 용의 뿔을 부러뜨렸다. 유리알 같은 두 개울의 달빛이 비취산 열 봉우리의 구름에 부셔져 내리며 하늘을 말끔히 쓸어주니 그곳이 나의 경계다.”
찬하노라.
염화미소의 정법안을 갖추시고
눈 위에서 팔을 자른 바탕이 있어
일찍이 서울에서 승과로 도첩얻고
삼거(三車 : 三乘)타고 스스로 두려움을 채찍질하며
오랫동안 취봉사에서 부처될 씨앗을 길러
구성(九成 : 韶蕭九成이라는 순임금의 풍악)을 연주하니 날마다 바닷새가 날아든다
큰 입에 낚싯바늘 물렸으니
꼬리 붉은 잉어를 몇 마리나 낚았는가
쇠를 정선하여 달구어 뛰게 하니
상서롭지 못하다. 네 사람의 달마여!
차가운 물 거울처럼 맑기만 하니
하늘이 잠겨있고 기러기 그림자 가라앉는다
물지개의 양쪽 목발 부러질 때
검은 용의 턱을 도려내어 여의주를 빼앗았네
눈에 눈동자 있는 사람이면
애당초 흙으로 금을 만들거나 소를 빼앗거나 밥을 낚아채지 않고
자신이 다른 류에서 자재행을 하는데
무엇하러 산을 깍아 골짜기를 메우고 학 다리를 잘라 오리에게 붙여주랴
뼈속에 사무치는 가난으로
감히 용왕과 부를 겨루고
한마디 말로 감파하니
어찌 유마힐의 명성과 모습을 그릴 수 있겠나
학인에게 짚신을 뒤집어 신기고서
저녁에는 나부산, 아침에는 단특산에 노닐게 하고
어느 스님이 가볍게 등을 어루만져주자
급히 설두스님 찾아 멀리 고소산에 이르렀네
야반삼경 찬 서리에
화수 얼음어니 섬부 무쇠소는 허리가 부러지고
일년에 한 차례 봄이 오는데
우두스님 이끌어 사조스님 뵙게 하니 마른나무에 꽃이 피네
꾀꼬리 밤새 지저귀고 소쩍새 우는데
원통문은 자물쇠를 활짝 열고
비취가 구름 쓸고 유리는 달을 쪼개니
천의스님 경지는 한 폭의 그림일세
숲을 나온 사자요
대지를 누빈 천리마라
철위산을 달려가도 찾아볼 수 없고
조주스님 동쪽 벽에 호로병을 걸어 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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