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원조 종본(圓照宗本) 선사
/ 1020~1099
스님은 천의스님의 법제자로 법명은 종본(宗本)이며 상주 관씨(常州管氏) 자손이다. 처음 천의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천의스님이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일 때는 어떻게 되는가?”
“살인 · 방화를 한들 무슨 난리가 나겠습니까?”
그 후로 스님의 명성은 알려지게 되었다. 원풍 연간(元豊 : 1078~1087)에 조운사(漕運使) 이복규(李復圭)의 명으로 서광사(瑞光寺)에서 법을 펴니 법회가 나날이 성해졌으며, 항주태수 진양(陳襄)이 승천사(承天寺)와 흥교사(興敎寺) 두 사찰 가운데에서 마음에 드는대로 주지하도록 하니 소주(蘇州)사람들은 더욱 간절히 만류하였다. 또한 정자사(淨慈寺)에서 간곡히 청하면서 한편으로는 승속에 글을 보내 말하기를 “딱 3년만 스님을 빌려 이곳에 복을 심으려 하니 감히 오랫동안 독점하지 않을 것이다”하니 모든 사람들이 비로소 그 말을 따랐다.
원풍 5년(1082), 신종(神宗)은 조칙을 내려 상국사(相國寺) 64개 사원을 8원(八院)으로 병합 개편하되 선원(禪院) 둘, 율원(律院) 여섯으로 하고 스님을 혜림선원(慧林禪院)의 제1조(第一祖)로 맞이하였다. 스님이 혜림선원에 도착하자 신종은 사신을 보내 문안 위로하고, 그 이튿날 정화전(廷和殿)으로 초청하여 도를 물으며 좌석을 내려주자 스님은 서슴없이 가부좌하고 앉았다. 신종이 물었다.
“경은 어느 절에서 수업하였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승천영안(承天永安 : 승천사 영안사를 뜻하는 동시에 천자를 영원히 편안하게 받들겠다는 뜻이 되기도 함)”
신종이 몹시 기뻐하여 차를 내리자 스님은 찻잔을 받아들고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 물을 부어 마시기까지 하니, 신종은 스님의 천진함을 좋아하며 “선종을 일으켜 잘 인도하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스님이 “폐하께서 선종이 있음을 알고 계시니, 이는 하늘의 태양이 온 누리를 내리비추는 것과 같은 일인데 신(臣)이 어째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하고 자리를 물러나자 신종은 눈길을 떼지 않고 전송한 뒤에 가까운 신하에게 “참으로 복과 지혜를 모두 지닌 스님이구나!” 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한신(韓信)이 조정에 돌아온 것이다.”
“중간 이하의 무리들은 어떻게 이해하면 됩니까?”
“만리에 시체가 널려 있다.”
“오늘과 같은 줄 진작 알았더라면... 애당초 조심하지 않았던게 후회스럽습니다.”
“삼황(三皇 : 요임금, 순임금, 우왕)의 무덤 위에 잡초가 무성하구나.”
상당하여 말하였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옛 모습이 뚜렷하고 대장부의 의기는 수미산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 바닷 물을 밟아 뒤집어버리니, 제석천왕과 용왕이 몸 둘 곳이 없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뽑아들고 “이 주장자에 와서는 도리어 빠져나가려 하는구나 쯧쯧! 네 멋대로 신통을 부리도록 내버려 두었더니만 결국 이곳으로 돌아왔느냐!” 하고는 주장자를 한 차례 내려쳤다.
원우 원년(元祐 : 1088)에 노령을 이유로 주지 사임을 청하자, “그대 편할대로 여러 고을을 행각하되 억지로 주지를 시킬 수 없다”라는 칙명을 받았다. 이에 스님은 북을 울려 대중과 고별하며 말하였다.
“본디 집없는 나그네인데 어찌 편할대로 노닐 수 있겠나. 순풍에 노를 저으며 선자화상은 양주 땅으로 내려가노라.”*
스님이 도성을 떠날 때 송별하는 왕공 대신들의 수레와 말이 줄을 이었는데 떠나면서 말하였다.
“세월이란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이라 늙고 병든 몸 다시는 여러분과 기약할 수 없으니, 오직 부지런히 수행하여 게으름이 없는 것만이 참으로 서로가 위하는 길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모두 눈물을 흘렸으니 스님께서 참다운 자비심으로 인도하여 사람을 감복시킴이 이와 같았다.
스님은 만년에 소주(蘇州) 영암사(靈巖寺)에 주석했는데 문도들이 절 왼편에 진신탑을 세웠다.
찬하노라.
참으로 복과 지혜를 지닌 스님
대장부의 기상을 타고나
까만 지팡이에 기대신 옛 모습 뚜렷하고
맑은 이야기 펼칠 때 봄바람 훈훈하였다
남전스님의 의심없는 경지에 이르러
번쾌(樊噲)는 홍문관 잔치에서 칼춤을 추었고
소실봉(달마) 첫 근원을 다하니
한신이 조정에 임하였어라
큰 바다를 짖밟아 뒤집어놓으니
용왕이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기고
수미산을 걷어차 넘어뜨리니
제석천왕은 몸둘 곳이 없구나
원조당(圓照堂) 앞의 밝은 빛은
조사의 마음을 꺼내 보이심이요
삼황의 무덤 위에 수북한 풀은
봄 소식을 전함이로다
기연 하나 내려서 살길을 가르쳐 주니
그 대용(大用) 우뢰처럼 달리고
3년만 선사 빌려 이 곳에 복을 심겠다 하니
미워하는 소리 물끓듯 하는구나
지팡이 하나로 만년에 산림으로 돌아오니
작은 절에 아무런 마음없이 구름속에 잠자고
일곱 줄 거문고 벽 위에 높이 걸고서
금대(琴臺)에 달 밝으면 가을 강을 뒤집는 음곡을 나타내는구나
마음이 곧 부처이니
살인 방화인들 무슨 난리 나겠는가
선자화상 양주로 내려가는데
무슨 까닭에 사람을 감동시켜 눈물짓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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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자 덕성(船子德誠 : 약산유엄스님의 법제자)스님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네주다가 임종게를 전하고는 양자강에 몸을 던져 종적을 감추었다는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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