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법안종
1. 청량 법안(淸涼法眼) 선사
/ 885~958
스님의 법명은 문익(文益)이며, 여항노씨(餘杭魯氏) 자손이다. 머리깎고 개원사 각율사[希覺律師]를 찾아가 구족계를 받았으며, 각율사가 사명산(四明山)에서 교화를 크게 일으키자 스님도 그곳에서 율의(律儀)를 익히고 문장에 힘썼다. 각율사는 스님을 대단하게 여기고 ‘불교문중의 자유(子遊) 자하(子夏)’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일단 발심을 하자 잡다한 일을 다 버리고 지팡이를 떨치면서 남쪽으로 갔다. 복주(福州)에 이르러 처음 장경 혜릉(長慶慧稜)스님을 찾아뵈었으나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도반 법진(法進) · 소수(紹修) 두 스님과 함께 호외(湖外) 지방으로 행각을 떠나려 하였는데 때마침 비를 만나 잠시 복주 서편 지장원(地藏院)에서 쉬게 되었다. 큰방에 들어가 땅화로 곁에 앉아 있는 암주를 뵙자 암주가 스님에게 물었다.
“이번 길에 어디로 가려 하느냐?”
“행각을 떠나는 길입니다.”
“행각이 무엇이냐?”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말이 가장 가까운 말이다.”
이 세 사람이 하롯불을 쬐면서 이어 승조(僧肇)법사의 「조론(肇論)」을 거론하게 되었는데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며.....”라는 구절에서 지장원 암주가 물었다.
“산하대지와 자신과 같은 것인가?”
소수스님이 말하였다.
“같습니다.”
지장원 암주는 손가락 두 개를 세우고 뚫어지게 쳐다보니 동행했던 두 스님이 문득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비가 그쳐 떠나려 하는데 지장원 암주는 이들을 보내면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늘상 ‘3계는 오직 마음이다’라고 말한다지!”
그리고는 뜰 아래 있는 돌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한번 말해 보아라. 저 돌은 마음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하는 사람이 무엇에 집착하여 돌덩이를 마음에 두느냐!”
스님은 할말을 잃었다. 마침내 보따리를 풀고는 일행이 모두 결택을 구하였다. 한달 남짓 자신의 견해를 올리고 도리를 말하니 암주가 말하였다.
“불법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처지에서는 할말도 궁하고 이치도 끊어졌습니다.”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보이는 그대로이다.”
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쳤다.
그후 스님은 임천(臨川) 숭수사(崇壽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왔는데, 개당 법회에서 지장원 계침(桂琛)스님께 향을 올리니 자방(子方)이라는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오랫동안 장경선사를 친견했는데 지장원주의 법을 잇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장경스님의 ‘만상 가운데 홀로 몸을 드러냈다’ 하신 설법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방스님이 불자를 들어보이자 스님이 말하였다.
“삼라만상을 헤쳐보이는 것인가? 헤쳐보이지 않는 것인가?”
“삼라만상을 헤쳐보지 않은 것입니다.”
“홀로 몸을 드러내보이면...”
“만상을 헤쳐보이는 것입니다.”
“만상 안에 있구나.”
자방스님은 이에 종지를 깨쳤다
두 스님이 찾아왔는데 스님이 주렴을 가리켰다. 두 스님이 함께 주렴을 걷어올리니 스님은 말하였다.
“하나는 맞았고 하나는 틀렸다.”
대중에게 말하였다.
“온 시방세계가 밝고 밝아 실오라기 하나도 없다. 만일 실오라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실오라기 하나인 것이다.”
금릉(金陵) 보은사(報恩寺) 현칙(玄則)스님은 처음 청봉(靑峰)스님을 찾아 뵙고 물었다.
“무엇이 학인 자신입니까?”
“병정동자(丙丁童子)가 불을 찾는구나.”
현칙스님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뒤에 스님을 찾아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느냐?”
“청봉스님에게서 왔습니다.”
“청봉스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던고?”
현칙스님이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니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병정(丙丁)은 불에 속하는 것인데 다시 불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을 가지고 자신을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해해서야 어떻게 깨칠 수 있겠는가?”
“저는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대가 나에게 물어 보아라. 내가 대답해 주겠다.”
현칙스님이 지난번 물음을 다시 묻자, 스님이 말하였다.
“병정동자가 불을 찾는구나.”
이 말에 현칙스님은 깨쳤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한 권 경입니까?”
“제목이 분명하다.”
스님은 어느 날 이왕(李王)과 도를 논하다가 모란꽃이 핀 것을 보고서 스님에게 게송을 지으라 하니 그 자리에서 송을 지었다.
붓을 들고 꽃떨기 마주보니
원래부터 그 향기 저마다 다르구나
머리칼은 이제부터 희어만 가는데
꽃은 작년처럼 붉기만 하다
짙은 단장은 아침 이슬 따르고
싱그러운 향기는 저녁 바람에 실려가는데
하필 꽃잎이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공(空)임을 알랴.
擁毳對芳叢 由來趣不同
髮從今日白 花是去年紅
艶冶隨朝露 馨香逐晩風
何須待零落 然後始知空
이왕은 이 송을 듣고 깨침을 얻었다.
스님이 게송을 지었다.
그윽한 새소리는 대피리 가락이요
버들가지 흐느적거리니 황금 실이 길구나
구름 돌아가니 산골짜기 고요하고
바람은 살구꽃 향기를 실어 보낸다
긴긴날 고요히 앉아 있노라니
맑은 마음에 온갖 생각 다 잊었네
말하려 해도 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숲 속에서 생각하기 매우 좋구나.
幽鳥語如篁 柳搖金線長
雲歸山谷靜 風送杏花香
永日簫然坐 澄心萬慮忘
欲言言不及 林下好商量
위의 게송은 백법(百法)에 밝은 문으로 유식(唯識)의 강령을 노래한 것이다.
찬하노라
어려서 현기(玄機)를 발하여
사방을 두루 찾아다니다가
소승의 근기 각율사를 떠나서
나쁜 원수 계침과 맞부딪쳤네
한 조각 돌멩이 마음속에 두었다가
기연만나 부숴졌지만 오히려 가랑비에 젖어들고
온몸을 만상 중에 드러내니
힘을 다하여 붙잡았으나 변함없이 무력한 사람이었네
두 스님에게 주렴을 걷게 하였지만
맞았는지 틀렸는지 분명치 않고
병정동자가 불을 찾으러 온 줄을 간파했으나
시비를 결정짓기 어렵구나
대피리 가락같은 그윽한 새여!
산림에 둔 뜻은 남다른 풍류요
붓을 휘어잡고 꽃떨기 마주하니
‘모란송’은 누구의 문체를
조계의 한 방울 물이라 하였지만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어 우연히 이룬 문자이며
무엇이 학인의 한 권 경이냐고 물어보니
파리가 종이를 뚫음에 나갈 곳이 전혀 없다 하였네
유심(唯心)과 유식(唯識)이여
석두산성(石頭山城) 가는 길이 천만갈래 갈라지고
법도 없도 없고 사람도 없음이여
통현봉(通玄峰)의 구름은 첩첩한 묏뿌리에 가로놓였네
온 시방세계는 밝고 밝아 실오라기 하나 없건만
이곳에서는 백법의 밝은 문도 거두어다 묻어버려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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