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제록·법안록臨濟錄·法眼錄

[법안록] 2. 상당 21~35.

쪽빛마루 2015. 4. 21. 22:36

법안록

 

2. 상 당

 

21.

 스님이 다리를 앓아 한 스님이 문병을 드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군가 올 때는 움직일 수 없지는 않았는데 오고 나면 움직여지지 않는다. 말해보라. 불법에서는 이런 경우를 무어라고 해야겠느냐?"

 "스님께서는 우선 좀 기뻐하십시오."

 스님은 긍정하지 않고 스스로 그와는 달리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오늘 좀 덜하신 듯도 하군요."

 

2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티끌만치 많은 오랜 세월부터 있어온 일입니까?"

 "지금도 다 있다."

 

23.

 도생(道生)법사가 말씀하시기를, "허공을 두드리니 메아리가 일어나고 목어(木魚)를 치니 소리가 없구나" 하였는데, 스님께서 언젠가는 재(齋)를 알리는 목어소리를 듣고 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들었느냐. 조금전에 들었다면 지금은 듣지 못할 것이며, 지금 듣는다면 조금전에는 듣지 못했으리라. 알겠느냐."

 

24.

 우물 뚜껑을 열다가 모래흙이 물구멍을 막아버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구멍이 뚫리지 않는 것은 모래에 막혔기 때문이지만, 도안(道眼)이 통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에 막혔기 때문이냐?"

 대꾸가 없자, 스님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눈[眼]에 막혀서이다."

 

25.

 한 스님이 흙 나르는 것을 보고 흙 한덩이를 그 짐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대를 돕는 걸세" 하니 "스님의 자비에 감사합니다" 하였다.

 스님이 긍정하지 않자, 어떤 스님이 달리 말씀하시기를, "스님께서는 그게 무슨 심보요?" 하자, 스님은 거기서 그만두었다.

 

2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날씨가 차가운데 무엇 때문에 올라왔느냐. 말해보라. 법문을 들으러 올라와야 좋겠는가, 올라오지 말아야 좋겠는가. 한 사람은 '올라오지 않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어느 곳인들 옳지 않겠습니까. 올라와서 더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고, 또 한 사람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반드시 스님 계신 곳에 올라와야 한다'고 할 것이다. 자, 말해보라. 이 두 사람은 불법 가운데서 공부된 바가 있겠느냐. 스님네들이여, 사실상 터득하지 못했다면 결코 조금도 공부가 되었다고 인정해 줄 수 없다. 옛사람은 이를 구멍없는 철추(鐵椎)라고 불렀으니, 눈 뜬 봉사나 멀쩡한 귀머거리와 다름없다는 뜻이다.

 또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두 사람 다 옳지 않으니 어째서 그런가. 집착했기 때문이다'라고 할 것이다.

 스님네들이여, 모두들 이런 식으로 행각하고 헤아려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입술만 나불거리려 하느냐. 아니면 무슨 속셈이라도 있느냐. 무엇을 집착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무엇을 집착하려느냐. 이치에 집착하려느냐, 현상에 집착하려느냐. 색(色)에 집착하려느냐, 공(空)에 집착하려느냐. 만일 이치라면 그것을 어떻게 집착하겠으며, 현상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집착하겠느냐. 색 · 공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내가 평소에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이 항상 손을 내밀어 여러분들이 그때마다 손을 잡는다' 라고 하는 것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손을 내밀 때 어디에 내밀더냐. 그대들이 항상 손을 받아 잡는 곳이다. 그곳을 알겠느냐. 알고 잡아야 좋으리라. 만일 모른다면 오는 족족 다 잡는다고 말하지 말라.

 스님네들이여, 남의 집 살이를 하려거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세히 살펴야 할 일이지 좁은 지혜를 믿고 세월을 보내서는 안된다."

 

27.

 스님께서 어린아이에게 말씀하셨다.

 "자식을 보니 너의 아버지를 알겠구나.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냐?"

 아이가 대꾸가 없었다.

 

 법등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옷소매로 얼굴을 가릴 뿐이다."

 

 스님께서 이번에는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효자라면 딱 깨닫게 해줄 한마디를 던졌어야 하리라. 말해보라. 무어라고 했어야 했는가?"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효자이니라."

 

28.

 스님께서 「백법명문론(百法明門論)」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백법(百法)으로는 본체와 작용을 동시에 설명하였으며, 명문(明門)은 주관과 객관 양쪽 다 거론하였다. 지금 강의하는 사람[座主]은 주관이며 대중[法座]은 객관이니, 어떻게 설명해야 두 가지를 함께 거론하는 것이냐?"

 

 큰스님 한 분이 대신 말씀하셨다.

 "나라면 대중이라고 하겠다."

 

 귀종 유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님을 그렇게 귀찮게 하지 말라."

 

 설두스님은 앞의 큰스님의 말에 이렇게 달리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절의 절반을 제게 떼어 주셔야 합니다."

 

29.

 스님께서 하루는 이왕(李王)과 법담을 끝내고 함께 모란꽃을 구경하던 중, 이왕이 게송을 지으라 하자 그 자리에서 부(賦)를 읊었다.

 

붓을 들고 아름다운 꽃 마주하니

불어오는 향기는 저마다 다르구나

머리털은 오늘부터 희어지는데

꽃은 작년같이 붉었어라

짙은 단장은 아침 이슬 따르고

맑은 향기는 저녁 바람에 실려가는데

하필 잎 떨어진 뒤에야

공(空)임을 알랴.

 

擁毳對芳叢  由來趣不同

髮從今日白  花是去年紅

艷冶隨朝露  馨香逐晩風

何須待零落  然後始知空

 

 이왕은 그 뜻을 단박에 알았다.

 

30.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이렇게 잠시 모인 여기가 그대들의 큰 방이며, 잠시 모인 여기가 가장 높은 삼문(三門)이며, 잠시 모인 여기가 그대들의 요사채이다. 여기서 다시 그대들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

 법회에 있던 몇몇 노스님들이 각각 이렇게 대꾸하였다.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다 해도 이 방편을 쓰셨을 것입니다."

 "오늘 글의 뜻[章義]을 떠났습니다."

 "그대가 말하는 그곳이란 어느 곳인가?"

 "등불을 켜는 등(等) 상좌가 온 지 오래입니다."

 "어느 곳에 모일까요."

 

31.

 스님께서 문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조주(趙州 : 778~897)스님께서 '헛수고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말 좋은 말씀이다. 어째서 예전 그대로 하질 않느냐. 세간법은 문이 있는데 불법인들 어찌 문이 없으랴 하여, 이로부터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예전 그대로 하는 데서 체득했을 뿐이다. 마치 초저녁에 울리는 종처럼 실낱만큼도 차이를 보이지 않아야 좋을 것이다. 종소리가 들릴 때는 잡소리가 전혀 없는데, 그것은 때 맞춰 울리기 때문이다.

 무심(無心)스님이 말하기를, "죽는다 해도 아주 죽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옛같이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하였다.

 홀연히 때아닌 종소리가 들릴 땐 모든 사람들이 다 놀라면서 '종이 괴이하게 울린다'고 한다. '또 오늘부터 초여름[孟夏]이니 점점 무더워진다'고 한다면 옳지 않으니, 하루쯤 지나야 얼마나 더워졌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5월 초하루에 그렇게 말한다면* 거짓말이 된다.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은 실낱만큼이라도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방편으로 그대들에게 바로 그때가 아니면 속임수가 되므로 옛과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공(寶公)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잠시라도 스스로를 긍정하여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역겁(歷劫)인들 어찌 오늘과 달랐겠는가'라고 하였다. 알았느냐. 오늘이 진겁(塵劫)일 뿐이다.

 옷 입고, 밥 먹고, 행주좌와하며 아침 저녁으로 법문을 청하는 것을 모두 예전대로 한다면 바로 일 없는 사람이 된다."

 

32.

 스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보겠다는 데 목표를 두고, 그것을 알려고 노력해야 큰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3계(三界)에서 애착하는 일들을 몽땅 떨어버려야 하니,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으면 아직 덜 된 것이다.

 꿈속에서 화를 내거나 기뻐하는 것이 3계의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며, 익숙한 경계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는 것도 혼침과 산란이다. 그것은 대체로 그대들이 혼란하기 때문이니 옛사람은 이를 '허깨비를 끼도 다닌다'고 하였다.

 금은 진짜 순금이나 광석 속에 묻혀 있는데야 어찌하랴. 이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그대들의 힘이다. 한편 이렇게 관찰해내지 못한다면 정토에 있다는 누대(樓臺)와 전각이 다 무슨 소리겠느냐.

 성인이라 해서 반드시 언제까지고 그대들의 손을 잡아주라는 법은 없고, 그대들도 반드시 그것을 의지해서 가라는 법도 없으니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33.

 스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지극한 이치는 말과 생각을 잊었으니

어찌 비유로 똑같이 설명할 수 있으랴

서리 내린 밤, 달은 내려와

무심히 앞 시내에 떨어지는데

과일 익으니 원숭이 덩달아 살찌고

첩첩 산중에 길을 잃은 듯 하구려

석양 빛 보려고 머리를 드니

원래부터 서쪽에 있었다네.

 

理極忘情謂  如何有喩齋

到頭霜夜月  任運落前谿

果熟猿兼重  山長似路迷

擧頭殘照在  元是住居西

 

34.

 삼계유심(三界唯心)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삼계는 마음일 뿐이며

만법은 식(識)일 뿐이니

마음뿐이며 식일 뿐이라면

눈으로 소리를 듣고 귀로는 빛[色]을 보아야 하나

빛은 귀에 이르지 못하니

소린들 어찌 눈에 닿으랴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어야

만법을 이루리라

만법은 인연으로 된 것이 아닌데

어찌 허깨비라고 관찰하랴

산하대지 중에서

무엇이 견고하고 무엇이 변하는가.

 

三界唯心  萬法唯識

唯識唯心  眼聲耳色

色不到耳  聲何觸眼

眼色耳聲  萬法成辨

萬法匪緣  豈觀如幻

山河大地  誰堅誰變

 

35.

 화엄육상(華嚴六相)의 뜻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화엄육상의 뜻은

같은[同相] 속에 다름[異相] 있으니

다름이 같음과 다르다면

부처님 말씀과는 영판 어긋나네

부처님이 말씀하신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에

어찌 같고 다름이 있었으랴

남자의 몸으로 선정(禪定)에 들 때

여자의 몸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네

마음을 두지 않고 이름[名字]도 끊으니

만상이 분명하여 이치도 현상도 없다네.

 

華嚴六相義  同中還有異

異若異於同  全非諸佛意

諸佛意總別  何會有同異

男子身中入定時

女子身中不留意

不留意  絶名字

萬象明明無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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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여름[孟夏]은 음력 4월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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