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록
2. 상 당
6.
그 뒤 스님께서는 청량원(청량원)에 계셨다.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람은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다만 시절인연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불성의 이치를 알고자 한다면 시절인연을 관찰해야 하니 그러한 방편은 고금에 적지 않다. 보지도 못했는가. 석두 희천(石頭希遷 : 700~790)스님은 「조론(肇論)」에서 '만물을 녹여 자기로 삼는 자는 성인뿐이리라' 한 대목을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인은 자기가 없기 때문에 자기 아닌 것이 없다.'
석두스님께서는 또한 참동계(參同契)*라고 불리우는 글 한편을 남기셨다. 그 첫머리에 '인도 땅 부처님 마음…' 운운 하였으니 시절인연에 대해 이보다 더한 말은 없으며, 중간부분도 시절을 따르라는 말일 뿐이다.
스님네들이여, 이제 만물을 녹여 자기로 삼으려 한다면 온누리에 아무것도 볼 것이 없어야 하리라. 또 석두스님은 그 끝에서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조금전에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다만 시절인연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으니 만일 시절을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면 바로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며, 색(色)이 아닌 것을 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님네들이여, 색이 아닌 것을 색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상황과 시절을 놓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색을 색이 아닌 것이라 이해한다면 타당한지 부당한지를.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더욱 빗나가서 헛되고 어리석게도 양갈래로 치닫게 되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스님네들이여, 분수를 지키며 시절에 따라 지내야 할 것이다. 몸 조심하라."
7.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량원의 가풍입니까?"
"다른 데 가거든 그저 청량원에서 왔다고만 하거라."
"어떻게 해야만 아무 것[法]에도 걸려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대에게 붙어 있느냐?"
"밤낮으로 부딪치는데야 어찌합니까?"
"부질없는 말이다."
"이 몸을 허깨비처럼 변해서 나타난 것이라 보고, 마음도 그렇다고 관찰할 땐 어떻습니까?"
"정말 그렇겠느냐?"
"국사께서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우선 갔다가 다음에 오너라."
"요긴한 것과 상응하면 다르지 않다[不二]고만 하면 되는데 무엇이 다르지 않은 말입니까?"
"더 이상 얼마나 보태려느냐."
"무엇이 법신입니까?"
"이것이 응신(應身)이다."
"무엇이 으뜸ㅁ가는 이치[第一義]입니까?"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는 이것이 바로 으뜸가는 이치이다."
8.
스님이 수산주(修山主 : 紹修)스님에게 물었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천지차이로 벌어진다는 말을 사형께서는 어떻게 이해하시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천지차이로 벌어집니다."
"그렇게 이해해서야 어떻게 알겠소."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천지차이로 벌어집니다."
그러자 수산주는 스님에게 절하였다.
동선 제(동선제)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산주스님이 그렇게 대꾸했을 때는 어째서 인정하지 않았으며, 다시 물었을 때 법안스님도 그렇게 대답했을 뿐인데도 그것은 옳았겠는가? 말해보라. 어디서 틀어졌겠는가? 꿰뚫어볼 수 있다면 그대에게 근거가 있다 하리라."
오조 계(五祖戒)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스님이 등줄기를 정곡으로 후려쳤다."
보령 용(保寧勇)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산주스님이 당시에 법안스님에게 '그렇게 이해한다면 어떻게 알겠는가' 라고 했어야 좋았을 것을."
경산 고(徑山杲)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스님과 수산주스님은 실낱이 오고 가듯 끊임없고 빈틈없이 지장(地藏)스님의 도풍을 지키고 일으켰으니, 눈이 부시다 하겠다. 그러나 여기 경산의 문하에서라면 다시 짚신을 사 신고 행각을 떠나야 할 것이니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천지차이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겠는가?"
9.
한 스님이 찾아와서 참례하니 스님은 발[簾]을 가리키셨다. 그러자 곁에 있던 두 스님이 동시에 가서 발을 걷으니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는 맞았고 하나는 틀렸다."
동선 제(東禪齊)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님네들이여, 어떻게 이해해야겠는가? 어떤 사람은 그가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을 걷었다 하고, 다른 사람은 가리켰던 사람은 알았다 하겠으나, 가리키지 않았는데도 거둔 사람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되겠느냐. 그렇게 이해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시 그대들에게 묻겠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이냐?"
황룡 청(黃龍淸)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스님은 마치 막야(鏌鎁)의 보검을 손에 쥔 듯 죽였다 살렸다를 자재하게 하였다. 두 스님이 동시에 발을 거뒀다. 자 말해보아라. 누가 맞고 누가 틀렸겠느냐. 알겠는가? 세상 일은 공정한 법으로 판결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둥근 달처럼 되기가 어렵구나."
10.
운문(雲門 : 864~949)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강서(江西)에서 옵니다."
"강서의 큰스님들은 몽땅 잠꼬대를 하더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뒤에 한 스님이 법안스님께 묻기를 "운문스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스님께서는 "형편없는 운문스님이 이 스님에게 속을 들켰구나" 하셨다.
11.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도량(道場)에서 옵니다."
"밝음을 깨달았느냐, 어두움을 깨달았느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12.
스님이 한 스님더러 흙을 가져와서 연꽃화단을 돋우라고 하여 흙을 가져오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리 동쪽에서 가져왔느냐, 다리 서쪽에서 가져왔느냐?"
"동쪽에서 가져왔습니다."
"정말이냐, 거짓말이냐."
13.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보은(報恩)에서 옵니다."
"대중 스님들은 편안하더냐?"
"편안합니다."
"차나 마시게."
14.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사주(泗州)에서 대성(大聖)*을 친견하고 오는 길입니다."
"금년에 대성이 탑에서 나왔느냐?"
"나왔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불쑥 곁에 있던 스님에게 물었다.
"말해보라. 그가 사주에 갔었겠느냐, 가지 않았겠느냐?"
부산 원(浮山遠)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스님이 사주에 가긴 갔으나 대성을 뵙지 못했을 뿐이다."
도장 전(道場全)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스님이 대성을 보긴 보았으나 법안스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동선 관(東禪觀)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스님이 사주에도 갔었고 대성도 보았으며 법안을 알아보기도 했으나, 다만 자기를 찾았으나 보지 못했을 뿐이다."
15.
스님이 보자(寶資) 큰스님께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산하대지는 막힘이 없어 밝은 빛이 어디에나 사무친다' 하였는데 무엇이 어디에나 사무치는 밝은 빛입니까?"
"동쪽 언덕에서 바라를 치는 소리입니다."
귀종 유(歸宗柔)스님은 보자스님과 달리 말씀하셨다.
"그대 스스로 막고 있구나."
16.
스님이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보이느냐?"
"보입니다."
"대나무가 눈으로 들어오느냐, 눈이 대나무까지 가느냐?"
"둘 다 아닙니다."
스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무슨 숨넘어 가는 소리냐."
법등(法燈)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서 당장 스님에게 눈을 빼주었어야 하리라."
귀종 유스님은 달리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저를 영 못믿으시는군요."
17.
한 거사가 병풍 하나를 드리자 스님은 보고 나서 물었다.
"그대는 솜씨가 교묘한가, 마음이 교묘한가?"
"마음이 교묘합니다."
"무엇이 그대의 마음인가?"
거사는 대꾸가 없었다.
귀종 유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저는 오늘 쉽게 해냈습니다."
18.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겹쳐 보이는 달[第二月]입니까?"
"삼라만상이지."
"그러면 무엇이 진짜 달[第一月]입니까?"
"만상삼라이지."
1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시방세계를 비추도록 밝은 경계에는 실오라기 하나 없다.
만일 실오라기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실오라기 하나이다."
법등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실오라기 하나가 있다 해도 그것은 실오라기가 아니다."
20.
스님께서 의자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의자를 알 수 있다면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 것이다."
운문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자를 알았다 해도 한참 멀었다."
설두(雪竇)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드넓은 호수에 산을 숨기니, 이리가 표범을 굴복받는구나."
원오(圓悟)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두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그를 밝히는 말인지, 점검하는 말인지, 칭찬하는 말인지, 깎아내리는 말인지를 모르겠다."
경산 고(徑山杲)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자를 알았다면 머리 깎고 발을 씻어도 좋으리라. 그렇긴 하나 잘못 이해한 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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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동계(參同契) : 7언 44구 220자로 된 장편의 고시(古詩)
* 남양 혜충(南陽慧忠 : ?~775)국사가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대답하였다. 이렇게 세 차례 반복하더니 국사가 말하였다.
"내가 너를 저버린다 하였더니 네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 사주(泗州)의 보광왕사에 오래 계셨던 승가대사(僧伽大師)는 열반한 후에도 육신을 탑에 모셨는데, 그 후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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