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제록·법안록臨濟錄·法眼錄

[법안록] 1. 행록

쪽빛마루 2015. 4. 20. 08:44

법안록

 

1. 행록

 

 스님의 휘(諱)는 문익(文益)이며, 여항 노씨(餘杭魯氏)의 자손이다. 7살에 신정(新定) 지통원(智通院) 전위선사(全偉禪師)에게 머리를 깎았으며, 20살에 월주(越州) 개원사(開元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마침 훌륭한 율사(律師) 희각(希覺)스님이 명주(明州) 무산(鄮山) 육왕사(育王寺)에서 한창 법을 펴고 있었으므로 가서 참례하였다. 강의를 듣고 익혀 불도의 깊은 이치를 공부하는 한편 틈틈이 유가 경전[儒典]도 공부하여 격조있고 고상한 경계에 유유자적하게 노닐었다. 그리하여 희각스님은 스님을 우리 문하의 자하(子夏)와 자유(子游)라* 불렀다.

 그러다가 일단 발심이 되자 잡다한 일을 다 제쳐두고 지팡이를 떨치며 남쪽으로 갔다. 복주(福州)에 도착하여 장경(長慶)스님을 참례하였으나 확실히 깨닫지는 못하고, 그 뒤 소수(紹修) · 법진(法進)스님과 함께 세 사람이 영남(嶺南)을 떠나오다가 지장원(地藏院)을 지나다가 눈으로 길이 막혔다. 잠깐 화롯가에 쉬던 차에 지장[羅漢桂琛]스님이 물었다.

 "이번 길은 어디로 가는가?"

 "이리저리 행각하렵니다."

 "무엇이 행각하는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하니 가장 적절한 말이군."

 또 셋이서 함께 「조론(肇論)」을 거론하다가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자, 지장스님이 물었다.

 "산하대지가 그대들 자신과 같은가 다른가?"

 스님이 "다릅니다" 하자 지장스님은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이번에는 "같습니다" 하자 지장스님은 다시 손가락을 세우더니 벌떡 일어나서 가버렸다.

 눈이 그쳐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자, 지장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며 말씀하셨다.

 "상좌, 삼계(三界)는 마음일 뿐이며, 만법(萬法)은 식(識)일 뿐이라고 항상 말들 한다."

 그리고는 뜰 아래 돌덩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말해 보게, 이 돌이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한 덩이 돌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

 스님은 궁색하여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짐보따리를 내려놓고 지장스님의 법석(法席)에서 결판을 보려고 작정하였다. 한 달 남짓 매일같이 자기 견해로 도리를 설명해 보이자, 지장스님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불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는 이제 할 말도 없고 설명할 이치도 막혔습니다."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다."

 스님은 그 말끝에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머물려하였으나, 법진(法進)스님 등이 양자강 밖으로 총림을 두루 돌아다니려 하였기 때문에, 스님에게 함께 가라고 하였다. 임천(臨川)에 이르자 주(州)의 목사(牧使)가 숭수원(崇壽院)의 주지를 맡아달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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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子夏)와 자유(子游) : 공자(孔子)문하의 열 제자 중에 문학에 뛰어났던 두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