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감변 · 시중
1.
운암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어떤 집 아이는 물었다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이 나오더니 질문하였다.
"그의 집에는 상당한 경론들이 있겠군요."
"한 글자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습니까?"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 도리어 말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원주(院主)가 석실(石室)*에 갔다오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석실로 들어가더니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느냐?"
원주가 대꾸가 없자 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차지한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 하겠느냐?"
스님이 말하였다.
"인정을 끊어서는 안됩니다."
운암스님이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아버지는 살아계시는가?"
"계십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가?"
"팔십입니다."
"그대에게는 나이 팔십이 아닌 아버지가 있는데 알겠느냐?"
"아마도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닐런지요."
"오히려 손자뻘이지."
스님(동산)이 말하였다.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니라 해도 손자뻘이지."
2.
스님이 제방을 돌아다니다가 노조(魯祖 :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였다. 절하고 일어나 곁에 섰다가 이내 나와서 다시 들어가자 노조스님이 말하였다.
"이럴 뿐이며, 이럴 뿐이니, 그러므로 이러하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래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걸요."
"어떻게 해야만 그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스님은 절하고 여러 달을 시봉(侍奉)하였다.
한 스님이 노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말 없는 말'입니까?"
"그대의 입은 어디 있느냐?"
"입이 없습니다."
"무얼 가지고 밥을 먹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3.
스님이 남원(南源 :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고 법당에 올라갔더니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전에 만났던 사람이군."
스님은 바로 내려가버렸다. 다음날 다시 올라가 물었다.
"어제 벌써 스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만 언제 저와 만났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마음 마음이 쉴 틈 없이 성품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을 많이 배워 널리 이익 되게 하라."
"불법을 많이 배우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짓는 것입니까?"
"무엇 하나도 어기지 말라."
4.
스님이 서울에 도착하여 흥평(興平 :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에게 절하였더니 흥평 스님이 말하였다.
"늙고 썩은 몸에 절하지 말라."
"저는 늙거나 썩지 않은 것에다 절하였습니다. "
"늙고 썩지 않은 자는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스님이 되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바로 그대 마음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목각인형에게나 물어보게."
"저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모든 부처님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어디 말해보게."
"제가 아닙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흥평 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흐름을 따라 정처 없이 가렵니다."
"법신(法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보신(報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결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진 않습니다."
그러자 흥평 스님은 손뼉을 쳤다.
보복 종전(保福從展: ?∼928)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달리 말하였다.
"몇 사람이나 찾을까."
5.
스님이 밀사백(密師伯 : 神山僧密의 존칭)과 함께 백암(百巖)스님을 참례하였더니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호남에서 옵니다."
"그곳 관찰사(觀察使)의 성은 무엇이던가?"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어라 하던가?"
"이름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사(政事)는 보던가?"
"그에게는 낭막(郎幕 : 부하관료)이 있습니다."
"출입도 하던가?"
"출입은 하지 않습니다."
"왜 출입하질 않지?"
스님은 소매를 털고 바로 나와버렸다.
백암스님은 다음날 아침 큰방에 들어가 두 스님을 부르더니 말하였다.
"어제 그대들을 상대한 문답이 서로 계합하지 못하여 하룻밤 내내 불안했다. 지금 그대들에게 다시 한 마디 청하네. 만일 내 뜻과 맞는다면 바로 죽을 끓여 먹으며 도반이 되어 여름을 지내겠네."
"스님께서는 질문을 하십시오."
"왜 출입을 하지 않는가?"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이지요."
백암스님은 이에 죽을 끓여 먹으며 함께 여름 한철을 지냈다.
천동 함걸(天童咸傑: 1118∼1186)스님은 말하였다.
"명암이 투합하고 팔면이 영롱하여 그 자리를 범하지 않고 몸 돌릴 길 있으니 조동(曹洞) 문하에서는 구경거리가 되겠으나, 가령 임제스님의 아손이었더라면 방망이가 부러진다 해도 놓아주지 않았으리라. 당시에 그가 '성을 모른다'고 했을 때 등허리에 한 방을 날려 여기에서 부딪쳐 몸을 바꿔 깨쳤더라면 죽을 끓여 맞이 했을 뿐 아니라 높은 스님을 모시는 밝은 창문 아래 모셨으리라. 알겠느냐, 알겠어!"
"악! 칠통(漆桶)아, 법당에 가서 참례하거라."
6.
스님이 밀사백과 함께 용산(龍山 :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찾아가 문안을 드렸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그대들은 어디로 왔느냐?"
"길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스님께선 어디로부터 들어 오셨는지요?"
"나는 운수(雲水) 따라 오지 않았다."
"스님께서 이 산에 머무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세월은 신경 쓰지 않는다."
"스님께서 먼저 계셨습니까, 이 산이 먼저 있었습니까?"
"모르겠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나는 인간 · 천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스님께선 어떤 도리를 얻으셨기에 이 산에 안주하십니까?"
"나는 진흙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다."
스님은 비로소 몸가짐을 가다듬고 절하였다.
7.
스님이 행각 할 때 마침 한 관리가 말하였다.
"삼조(三祖 : 승찬)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제가 주석을 낼까 합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고 「신심명」에서 말하였는데 어찌 주를 내려 하느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주를 내지 않겠습니다."
8.
스님이 과거에 행각 할 때 길에서 물을 걸머진 한 노파를 만났었다.
스님이 마실 물을 찾았더니 그 노파가 말하였다.
"물을 마시는 것은 무방합니다만 제게 질문이 하나 있으니 먼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물에 티끌이 얼마나 있습니까?"
"티끌이 없습니다."
노파는 말하였다.
"내가 걸머진 물을 더럽히지 말고 가십시오."
9.
스님이 늑담(泐潭)에 있으면서 초수좌(初首座)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신통하다. 정말 신통해. 불가사의하도다. 부처님 세계여, 도의 세계여!"
그러자 스님은 질문하였다.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는 묻지 않겠소.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말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초수좌는 한참 말이 없더니 대꾸를 못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빨리 말하지 않느냐?"
"언쟁해서는 안됩니다."
"하라는 말도 못하면서 무슨 언쟁은 안된다고 말을 하는가."
초수좌가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모두가 언어이니, 교(敎)를 인용해 보지 않겠는가?"
"교에서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뜻[意]을 체득하고서는 말을 잊는다 하였네."
"그래도 교의(敎意)를 가지고 마음에서 병을 만들고 있군요."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설명하는 병은 어느 정도이더냐?"
초수좌는 또 대꾸가 없더니 다음날 홀연히 죽어버렸다. 그리하여 스님은 당시 '질문으로 수좌를 죽인 양개(良价)'라고 불리웠다.
10.
스님이 신산 밀사백(神山密師伯)과 물을 건너게 되었을 때 물었다.
"어떻게 물을 건너야겠습니까?"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야지."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대는 어떻게 건너려는가?"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지요."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면서 말하였다.
"발을 잘못 딛지 마십시오."
"잘못 디디면 건너지 못할걸세."
"잘못 디디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는 것이지."
스님이 하루는 신산스님과 함께 차밭에서 김을 매다가 괭이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저는 오늘 기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기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였군요."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홀연히 흰 토끼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신산스님이 말하였다.
"잘 생겼군."
"어떤데요?"
"서민이 재상에게 절이라도 하는 것 같군."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대대로 벼슬을 하다가 잠시 권세를 잃은 것 같습니다."
신산스님이 바늘을 들고 있는데 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바느질을 한다네."
"바느질하는 일은 어찌해야 합니까?"
"땀땀이 서로 같아야 하네."
"20년을 같이 다녔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어찌 이렇게 공부하십니까?"
"그대라면 어찌 하겠는가?"
"땅에서 불이 일어나는 듯한 도리입니다."
신산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지식(知識)으로 알 수 있는 것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네. 그러니 '곧장 끊는 경지[徑截處]'에 대해서는 스님이 한 마디 해 주시게.”
"사형께서는 어떻게 공부를 하려 하십니까?"
신산스님은 여기에서 단박 깨닫고 일상과는 다른 응대를 하였다.
그 뒤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스님이 먼저 건넌 뒤 외나무다리를 들고서 말하였다.
"건너 오십시오."
신산스님이 "양개화상!" 하고 부르자 스님은 외나무다리를 놓아주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의 절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안에 심성(心性)을 설하는 자가 있답니다."
신산스님은 말하였다.
"누굴까?"
"사형께 질문 한 번 받고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마음을 설명하고 성품을 설하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죽음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 석실(石室) : 담주(潭州) 유현(攸縣)에는 석실(石室)이 있어 은자들이 살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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