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동록曹洞錄

[동산록/ 오가어록(五家語錄)] 2. 감변 · 시중 15~23.

쪽빛마루 2015. 5. 3. 04:27

15.

 용아(龍牙: 835∼923)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막야(鏌鎁)의 보검을 가지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 땐 어찌하겠습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다가가며 "와!" 하였더니, 용아스님이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하자, 덕산스님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용아스님이 그 뒤에 스님에게 와서 앞의 이야기를 거론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래, 덕산은 뭐라고 하더냐?"

 "스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노승에게 가져와 보아라."

 용아스님은 그제야 깨닫고서 바로 참회하고 인사하였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덕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군. 이 몸이 죽은 지 오래인데 구제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보복 종전스님은 염(拈)하였다.

 "용아스님은 전진할 줄만 알았을 뿐 발을 헛디딘 줄은 몰랐군."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그때 끊었어야 하는데 끊질 않았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끊으랴."

 

 동선 관(東禪觀)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검을 껴안아 몸을 다쳤으니 재앙과 허물을 자초했다 하겠다. 덕산스님은 머리 때문에 주인이 되어 다행히도 계산을 잘 하였으나 홀연히 동산스님에게 자취를 지적당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를 들켰다."

 

 용아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동구의 물이 역류하게 되면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마."

 용아스님은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다.

 

16.

 화엄 휴정(華嚴休靜)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제게는 이치의 길[理路]이 없어 알음알이[情識]의 작동을 면치 못합니다."

 "그대는 이치의 길을 보았느냐?"

 "이치의 길이 없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알음알이는 어디서 생겼느냐?"

 "사실 제가 묻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학인이 가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리 가기만 하면 되네."

 

 화엄스님이 땔감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붙들어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비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땐 어떻겠는가?"

 "엎치락뒤치락 하겠지요."

 "그대는 내 말을 기억하라. 남쪽에 머물면 천명이 되겠지만 북쪽에 머물면 300명에 그치리라."

 

17.

 흠산(欽山)스님이 스님을 찾아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대자(大慈)스님에게서 옵니다."

 "스님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색(色) 앞에서 보았느냐, 색 뒤에서 보았느냐?"

 "앞뒤가 아닌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묵묵히 계시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너무 일찍 스승을 떠나 스승의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흠산스님이 암두(巖頭) · 설봉(雪峯)스님과 앉았을 때 스님께서 차를 돌렸다. 흠산스님이 이때 눈을 감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왔느냐?"

 "선정에 들었다 왔습니다."

 "선정은 본래 문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갔느냐?"

 

 노숙(老宿)은 대신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해한 사람이 매우 많다."

 

 설두 중현(雪竇重顯: 980∼1052)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당시에 다만 암두스님 설봉스님을 지적하면서 '이 졸기나 하는 놈들아, 차나 마셔라' 했어야 했다."

 

18.

 북원 통(北院通)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주인공에 꽉 눌러앉으면 두번째 견해[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북원 통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누군가는 그것과 짝하지 않는 자가 하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 역시 두 번째 견해[第二見]인걸."

 통스님이 별안간 선상을 번쩍 들어서 엎어버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저의 혀가 썩어 문드러지면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드리지요."

 통스님이 그 뒤에 스님을 하직하고 영남(비원령)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해보게. 비원령(飛猿嶺)은 험준하니 잘 살펴 가게."

 통스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통화상!" 하고 불렀다.

 "네."

 "왜 영남으로 들어가질 않는가?"

 통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영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19.

 도전(道全: ?∼894)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벗어나는 요체입니까?"

 "그대의 발 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도전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유람하지 않았다.

 운거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끝내 '발 밑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감히 저버리지 않았군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걸음마다 현묘한 자는 즉시 효과가 나는 법이지."

 

20.

 스님께서 태수좌(泰首座)와 함께 동짓날 과자를 먹으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고 있다. 검기는 칠통 같으면서 항상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 있으나,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다 거두질 못한다. 말해보라.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움직이며 작용하는 가운데 허물이 있습니다. "

 

 동안 현(同安顯)스님이 달리 말씀하셨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시자를 불러 과자상을 물리라고 하셨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달리 수좌에게 말하였다.

 "아침이 오거든 다시 초왕(楚王)에게 헌납해 보아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판별할 수 있었으랴. 그렇긴 하나 동산스님도 한 수 부족하다."

 

 위산 철(潙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은 동산스님의 귀결처를 알았느냐? 몰랐다면 더러는 시비득실로 알고 있으리라. 내가 말하겠다. 이 과자는 태수좌만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누리 사람이 온다 해도 눈 바로 뜨고 엿보질 못하리라."

 

 운개 본(雲蓋本)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에게 허공을 찢어버릴 쇠몽둥이가 있긴 했으나 깁고 꿰맬 바늘과 실은 없었다. 그가 '움직이며 작용하는데 허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수좌는 과자를 먹어라' 했어야 했다. 거기서 태수좌가 납승이었다면 먹고 나서 토해야 한다."

 

 남당 정(南堂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판하는 솜씨였고, 태수좌는 온몸이 입이어서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위산 과(潙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었고, 태수좌는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나는 길을 가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치욕을 씻으려고 한다. 당시에 그런 질문을 들었더라면 '영산(靈山)의 수기(授記)가 이같은 데에 이르진 않았다' 하고, 대꾸하려는 순간 과자를 면전에 확 집어던졌으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숨통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후인들의 망상을 없애주었으리라."

 

 정자 창(淨慈昌)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이렇게 과자상을 물리게는 했으나 요컨데 태수좌의 입은 막지 못했다."

 

21.

 스님께서 유상좌(幽上座)가 오는 것을 보시더니 급히 일어나서 선상을 보며 뒤돌아서자 유상좌는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피하시는지요."

 "그대가 나를 못 본 줄 알았네."

 

22.

 벼를 보는데 낭상좌(郎上座)가 소를 끌고 지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소를 잘 보도록 하게. 남의 벼를 망칠라."

 "좋은 소라면 남의 벼를 망가뜨리지 않을 겁니다."

 

23.

 어떤 스님이 수유(茱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수행이라면 없지는 않지만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

 다른 스님 하나가 스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가 그때 무엇 때문에 '무슨 수행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말씀을 옮기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부처의 행이지, 부처의 행."

 그 스님이 돌아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유주(幽州)라면 그래도 괜찮을 듯한데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이다.

 

 "동선 제(東禪齊)스님은 염(拈)하였다.

 "이 말에도 의심이나 잘못이 있느냐? 있다면 말해보라. 어느 곳이 잘못 되었는지를. 없다면, 또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점검해 낼 수 있느냐? 수유스님은 '행이라면 없질 않으나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 하였고, 여기에 동산스님이 거듭 '이는 어떤 행인가' 하고 되묻게 하니 '부처의 행'이라 대답하였다. 그 스님이 알고 물었는지, 모르고 물었는지를 판단해 보라."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는 석 자(三尺), 목은 세 치(三寸)라네."

 스님은 시자더러 이 말을 가지고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삼성스님은 시자의 손 위를 손톱으로 한 번 찔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셨다.